관찰레와 함께 버무린 원조 리얼 카르보나라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by 웅숭깊은 라쌤

우리나라에선 카르보나라 파스타를 하얀 크림소스에 버무려진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정통 카르보나라를 표현할 땐 꼭 ‘리얼’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카르보나라는 얼마나 억울할까. ‘진짜’ 카르보나라라니. 크림소스에 버무려진 그 가짜 카르보나라 앞에 ‘크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자기 정체성을 빼앗긴 피해자가 원조 元朝 행세를 하는 이들에게 농락당한 꼴이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남산 돈가스’ 관련 원조 논쟁을 본 적이 있는데, 딱 그 상황이 아닌가 싶다. 세계는 거꾸로 돌아간다. 원조가 져야 하는 이상한 세계. 허나, 결국에 승리하는 건 원조일 것이다. 그렇게 믿자. 그래야 혼탁한 이 세계를 살아낼 수 있을 테니까.


여하튼 이 진짜 카르보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육 공방에 ‘관찰레’를 주문해야 한다. 관찰레. 돼지고기 볼살이나 턱살을 염장한 이탈리아 정통 햄을 관찰레라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져서 생각보다 구하기가 수월해졌다. 그 짭짤한 풍미를 맛보면 당신도 다른 파스타는 쉽사리 손대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조리법도 아주 간편하고 쉽다.

달걀노른자 두 알에서 세 알 정도를 야무지게 풀어주고 파마산 혹은 페코리노 혹은 그라노 파다노 치즈를 더 야무지게 갈아준 다음 잘 섞는다. 후추도 “후추후추!” 소리를 내며 잘 뿌려주기! 그리고 잠시 대기. 관찰레를 잘게 썰어 팬에 열심히 굽는다. 그리고 삶은 파스타면을 팬에 함께 넣고 잘 볶아준다. 이때 면수를 한 국자 퍼서 팬에 부어주면 팬에 눌어붙은 관찰레의 맛이 잘 풀어지게 된다. 누룽지에 물 붓는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전문 용어로는 이러한 요리 기법을 ‘디글레이즈’라고도 하는데, 여하튼 면수가 있어서 볶기도 훨씬 수월하다. 물론 유튜브 조회 수 2,000만 회를 기록한 안토니오 칼루치오 할아버지의 영상에선 면수를 붓는 과정이 생략됐지만, 할아버지! 저는 이게 더 편하더라고요. 죄송해요!

이제 요리는 거의 끝을 향해간다. 면이 잘 볶아졌다면 가스 불을 끄고 살짝 한 김 식힌 다음 아까 만든 달걀 소스를 부어 면과 섞어준다. 주의! 너무 뜨거우면 달걀 소스가 익어서 스크램블드에그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불 끄는 거 잊지 않기! 그리고 이제 다시 치즈를 갈아 간을 맞춰주고 마지막엔 꼭 후추를 다시 한번 “후추후추!”하며 뿌려주면 완성. 후추는 이 요리의 핵심이다. 원래 카르보나라라는 말이 광부들이 음식을 먹는데 몸에 붙은 석탄 가루가 접시에 떨어진 것에 착안해서 아예 통후추 가루를 으깨서 뿌려 먹은 데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맛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만큼이나 강렬한 첫맛이 입안 가득 퍼지고 나면 당신은 곧장 침묵하게 될 것이며 당신이 있는 그 공간엔 후루룩 쩝쩝하는 소리만이 머물게 될 것이다. 더불어 리얼 카르보나라를 맛보면 왜 우리가 원조를 찾는지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그 꾸덕꾸덕함과 짭짤함이 먹고 있는 중에도 계속 입맛을 돋우는 매력이 있다. 난 즐기지 않지만 와인과 그렇게 찰떡궁합이라고들 하더라. 역시 원조는 다르다. 아무리 흉내 내려 해도 따라 할 수 없는 원조만의 깊이가 있다.


종종 생각한다. 나는 원조 元朝가 될 수 있을까. 원조라는 말은 어떤 일을 처음으로 시작한 존재를 뜻한다. ‘원조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처럼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이들에게 우린 ‘원조’라는 위대한 칭호를 부여한다. 그리고 나는, 대체 어디에서 원조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갈 용기라는 게 내게 있기는 할까.

없었다, 그럴 용기가.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원조 리얼 카르보나라를 맛본 뒤 왜 원조에게 원조라는 수식어가 붙는지 알게 된 지금의 나로서는 원조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고자 한다. 그리고 세계로부터 승리할 것이다!

어디에서 뭘 할 거냐고? 직장을 때려치우거나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찾아볼 생각이다. 그 길이라는 게 꼭 직업의 전환을 의미하는 건 아닐 테니까. 일단은 파스타를 잘 만드는 국어 선생님? 이것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스트를 떠올리며 그의 말을 되뇌어 본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도 —혹시나 당신이 실의에 빠져 현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애써봤으면 좋겠다. 당신도 행복과 낭만이 있는, 그간 가지 않았던 길을 새로이 선택할 수 있음을 기억해주길.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우리가 지나온 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당신에게 원조 리얼 카르보나라를 대접할 것이다. 그땐 꼭 나도 와인을 마실 것을 약속한다. 우린 그렇게, 서로를 축복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관찰레와 함께 버무린 원조 리얼 까르보나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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