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선 붓글씨 쓰기의 명인이셨다. 심지어 방과 후 수업으로 붓글씨 수업을 개설하셨고, 자녀가 산만함이란 단어와 멀어지길 바라는 많은 학부모들은 그 수업에 강제로 자신의 아이를 등록시켰다. 우리 어머니도 그 학부모 중 한 분이셨고, 그 아들은 밖에서 공을 차고 뛰어노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억지로, 억지로 수업에 참여했다.
선생님은 하얀 종이 위에 옆으로 누운 ‘한 일’ 자를 수십, 아니 수백 번 쓰게 하셨다. 그냥 옆으로 찍 하고 긋는 것이 아니다. ‘한 일’자의 양쪽 끄트머리가 살짝 두껍게 그려지도록 전체 글자의 3분의 1지점에서 왼쪽 끝으로 갔다가 회전을 시켜 다시 오른쪽 끝으로 돌아가게 한다. 오른쪽에서도 끝에서 다시 붓을 돌려 자연스러운 두께감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아주 천천히, 느리게, 여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급하게 속도를 내면 모양이 제대로 나오질 않기에. 심지어 팔꿈치를 책상에 붙이면 안 된다. 적당히 팔을 들고 아주 정성껏 글자를 완성하는 것이 서예의 기본자세이자, 마음가짐이다.
자녀가 산만함이란 단어와 멀어지길 바랐던 어머니께선 아들이 꾸준히 수업에 참여할 거라 믿으셨으나, 그 아들은 끝내 붓글씨 쓰기를 포기했다. 아마 아들의 사전엔 인내라는 단어가 없었나 보다. 도통 차분하게 앉아 있지를 못했다. 가만히 한 가지 동작을 반복하거나 차분하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위는 아들과는 거리가 참 멀었다. 그렇게 아들은 덩치는 산처럼 자라지 못하고 정신만 산만한, 작디작은 어른이 되었다.
인내를 아는 어른이 된 건 요리를 시작하고부터다. 더 정확하게는 ‘동파육’을 직접 만든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동파육은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다른 요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인내의 음식이었다.
동파육 정통 레시피를 완벽하게 구현하기엔 여러 어려움이 따르기에, 조금 약식으로 진행해보았다. 중식 셰프들은 ‘삶튀졸찐’이라 하여 돼지고기를 삶고, 튀기고, 졸이고, 찌는 과정을 거쳐 동파육을 완성하는데, 기름에 돼지고기를 튀겼다가 돼지고기 껍질 부분이 펑펑 터지는 경험을 한 뒤로 튀기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하고 있다. 그럼 삶졸찐?
통삼겹살은 요즘 마트, 심지어 인터넷에서도 아주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쉽게 구매한 통삼겹살은 예쁜 모양, 기왕이면 정사각형 모양으로 썰어준다. 그리고 본격적인 1단계는 삶기. 대파와 팔각을 넣고 10분 정도 짧게 삶아준다. 그래야 잡내가 제거된다. 그리고 2단계가 튀기기인데, 자기 팔도 함께 튀겨질 용기가 있다면 모든 면을 고르게 누런빛이 나도록 튀겨주면 된다. 기름이 사방으로 튈 테니 각오하는 것이 좋다.
3단계는 졸이는 과정이다. 대파를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냄비 바닥에 깔고, 튀겨진 통삼겹살을 껍질이 위로 가도록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그리고 다음, 괜히 넣어야만 할 것 같은 재료들을 모조리 넣어 버린다! 굴소스, 흑설탕, 간장, 생강 등등. 원래 정통 레시피에선 ‘소홍주’라는 중국술도 양껏 넣어주는데 집에 맛술이나 소주가 있으면 그걸로 대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노두유라는 중국 간장을 넣어주면 색이 진하게 나오고 이건 인터넷에서 금방 찾을 수 있는데, 귀찮으니 그냥 진간장을 써도 되지 않을까.
이제부터 진정한 인내의 과정이 시작된다.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다섯 시간 이상 센 불로 끓여줘야 하므로. 점심 식사 후 마음먹고 시작한 요리가 저녁 식사 때도 완성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인내를 제대로 배우기 전, 허기짐을 참지 못하고 중간에 그냥 꺼내 먹어 버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때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식당에서 먹었던 살살 녹고 간이 잘 밴 그런 동파육을 상상했으나, 중간에 꺼낸 고기는 맹물에 넣고 삶은 고기 느낌만이 날 뿐이었다. 기왕 공을 들일 거라면 끝까지 참고 버텼어야 하는데, 보람 대신 후회의 감정으로 채워진 밥상이라니…….
동파육을 재도전하던 날, 정말 굳은 다짐을 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3단계 과정에 서너 시간이 ‘순삭’되었다. 깔끔한 맛을 위해 중간중간 기름을 걷어내 주기도 했고, 거기에 예쁜 플레이팅을 위한 청경채도 준비했다.
4단계는 마지막 찌는 단계. 무려 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있어야만 육질의 부드러움을 최상으로 끌어낼 수 있으므로, 꼭 필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 한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모든 작업 종료. 이제 흰 쌀밥에 올려 양껏 먹어주면 된다.
동파육을 만드는 과정은 그야말로 마라톤이다. 모든 코스를 완주한 뒤 느껴지는 성취감은 마라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마라톤을 직접 뛰어본 적은 없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자식을 차분하고 인내심 가득한 어른으로 만들고 싶다면 일찍부터 동파육을 맛보게 하고 직접 동파육을 만들게 하면 될 것이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는데, 난 애초에 이 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쉬지도 못하고 달려야 한단 말인가 싶어서. 그런데 동파육을 성공한 뒤 이 참뜻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여기서 내가 어마어마한 해석을 늘어놓을 거라 기대하겠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인생은 마라톤이긴 한데, 마라톤을 여러 번 뛰어야 한다. 인생이 마라톤 단 한 경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인생은, 마라톤 수십 번을 뛰는 것과 같다.
이건 완주의 기쁨을 그만큼 여러 번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쁜 게 아니다. 생각해보면 우린 삶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새 늘 달려야만 할 테니, 기왕이면 어떤 경기에서든 꼭 완주해낼 것이라 믿어보자. 종점까지 달려 나갈 수 있는 우린, 덩치가 ‘산만한’ 어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