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리스 에반스와 에그마요 샌드위치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by 웅숭깊은 라쌤

민리스 에반스는 나의 마지막 담임 반, 3학년 1반 반장이었다. 물론 민리스 에반스는 본명은 아니다. 방금 생각해낸 이름이다. 그와 가장 닮은 할리우드 배우는 누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캡틴 아메리카>에서 캡틴 아메리카 역할을 맡았던 크리스 에반스가 떠올랐다. 외모는 절대 아니다. 그의 됨됨이가, 닮았다.

민리스 에반스는 맨날 실실대며 웃고 다녔다. 가끔 보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잘 웃었다. 그렇다고 그가 바보인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민리스 에반스야 말로 진정한 천재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참, 그에겐 형이 있었다. 민리스 에반스를 만나기 5년 전, 똑같이 고3 담임을 맡았던 그 녀석. 그런데 민리스 에반스를 ‘그 녀석의 동생’이라 부르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녀석이 ‘민리스 에반스의 형’이 되어 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큰 존재가 되었단 말인가. 그에게서 뻗어 나온 의심의 뿌리를 파헤치기 위해, 그가 담긴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꺼내어 한 장 한 장 살펴보았다.


그가 학급 반장으로 선출된 직후 가장 걱정스러웠던 건, 그가 가진 ‘리더십의 부재’라는 측면이었다. 이전까지 알던 민리스 에반스는 누군가를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존재는 아니었기에, ‘담임인 나에게 피곤한 한 해가 될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어김없이 웃고 있었다.

학기 초엔 전달할 이야기가 많기에 틈틈이 교실에 올라가 아이들을 만나야만 했다. 그때마다 민리스 에반스는 놀랍게도, 웃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향한 웃음은 아니었다. 앞으로, 옆으로, 뒤로, 사방으로 웃음을 퍼뜨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고3’이란 단어는 이제 고유명사가 아니던가? 그 고유명사는 부담과 긴장, 우울함과 고통이라는 부정적 단어들을 내재하고 있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이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심리적 억압 속에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민리스 에반스였다! 민리스 에반스는 억압에 밀려 땅속 깊이 꺼져있던 이들을 지면 위로 끌어올려 놓았다. 그는 정말 힘이 센 사람이었다.

그날 오후, 종례 시간이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담임이 오든 말든 교실은 시장통이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남학생이 그러하진 않겠으나, 매일 내 눈앞에 앉아있던 이 서른여섯 명의 건장한 남성들은 비교적 사고 회로가 단순한 편이었다. 수업이 끝났다는 건 억압된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무려 9시간을 버틴 후 얻게 된 해방감은 그들에겐 그 어떤 탄산음료보다 청량감을 주었을 것이다. 담임의 등장 여부는 자신들의 감정 컨트롤에 큰 의미가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정적을 뚫는 외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언어들은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야, 조용히 앉아!”


3학년 1반이란 영화 속 시나리오에, 이런 대사가 있을 것이라고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적잖은 충격이었다. 어떤 작가가 써 내려간 대사인가, 고개를 든 순간 또 한 번 놀라야만 했다. 민리스 에반스였다! 그는 교실이 잠잠해진 것을 확인한 후 다시 나와 눈이 마주쳤고, 어김없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내 머릿속에 ‘리더란 말야’라고 시작되는 긴 글을 새겨주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서른여섯 명의 리더였고,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민리스 에반스가 선사한 최고의 장면은 어느 봄날의 오후였다. 실제로 기온이 가장 높은 시점보다 체감되는 더위가 더 크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미처 예상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한 틈을 타 겨울이 사라진, 어제까진 추웠는데 봄이 갑작스레 등장하는 그런 날 말이다. 그때 보통의 아이들은 대부분 기절하듯 쓰러지거나 극심한 짜증을 내곤 한다. 날씨에 굉장히 예민한 녀석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히어로 민리스 에반스는 그들에게 달려드는 온갖 악귀들을 막아선다. 비장祕藏의 검을 뽑아 적들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얘들아, 웃자!”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대단한 말 같지 않다고? 봄날의 오후 대한민국 고3 학생들을 만나보지 못했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웃으라는 예리한 칼날은 비단 ‘응원’이라는 이름으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고, 이는 삶의 자세에 대한 ‘성찰의 기회’ 같은 것이었다. 티베트 속담에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처럼 고작 날씨로 인해 골을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이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꼴이지 않을까? 민리스 에반스는 타인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곤 했다. 그게 이 시대 진정한 히어로의 모습인 것이다!


민리스 에반스에게 보답하기 위하여 사소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전해주기로 했다. 마침 근무하는 학교가 천주교 재단이라 부활절을 기념하여 삶은 달걀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고, 이 타이밍에 10년 자취 경력을 자랑하는 담임 교사는 숨겨왔던(사실은 별 볼 일 없는) 요리 기술을 뽐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게 바로 에그 마요 샌드위치 이벤트. 에그마요 샌드위치만큼 이벤트에 적절한 메뉴도 없다. 여럿이 모여 함께 만들고, 정을 나누고,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런 메뉴!

전날 미리 오이 10개를 깨끗이 씻어 난도질하듯 다져놓았다.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었으나 참 역설적이게도 무언가를 다질 땐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 직장 동료들을 떠올리는…… 아니, 난 분명 아무 생각 없이 오이를 다졌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양파도 대여섯 개 다졌다. 거기에 마요네즈 두 통과 식빵 열 봉지, 소금, 후추, 설탕, 식빵 같은 식재료를 챙겼고, 거대한 스테인리스 대야와 위생 장갑 한 통, 샌드위치 포장지도 준비했다.

아이들 몇몇과 담임 교사는 함께 삶은 달걀 껍데기를 까고, 으깨고, 미리 준비한 재료들을 몽땅 넣어 버무려주었다. 한 명은 야무지게 식빵에 샐러드를 발랐고, 한 명은 더 야무지게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주었다. 그리고 민리스 에반스는 예쁜 포장지에 담아주는 역할! 모두가 웃으며 이벤트를 즐겼다. 틈틈이 유머 감각을 발휘한 민리스 에반스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민리스 에반스뿐이겠는가. 삶이라는 긴 여정에 동참하는 이들 개개인은, 분명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를 외면한 채 굳이 심리적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당신이 내게 그러하듯, 민리스 에반스는 내게 축복이다.


그러고 이제, 나도 당신의 축복이 되고 싶다.

민리스 에반스와 에그마요 샌드위치.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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