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반전, 닭가슴살 치킨가스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by 웅숭깊은 라쌤

억울하지 않은가. 찌는 건 금방 찌는데 빠지는 건 여간해선 잘 안 된다. 그렇다고 먹는 행복을 포기할 순 없어서, 찌는 걸 용인하며 빠지는 걸 포기했던 때가 있다.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턱선이 사라지고, 옷이 타이트해졌으며, ‘몸이 커졌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별생각은 없었다. 그땐 거울을 최대한 안 보면 된다. 굳이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잖아!

문제는 2년 주기로 반드시 받아야 하는 건강검진이었다. 피를 뽑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난 뒤, 거울엔 담기지 않는 몸속 수상한 비밀들이 너무도 쉽게 드러나 버렸다. 이를 어째, 의사 선생님에 의하면 답은 운동과 식단 조절뿐. 역시나, 억울할 뿐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헬스장에 등록하여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던가. 무거운 무언가를 밀고 당기고 하는 행위는 귀차니즘의 아이콘 같은 나에겐 참 버거운 것이었다. 그저 살기 위해서라고, 최대한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더불어 식단 조절. 영양학적 지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뭘 할 수 있을까.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고 알려진 닭가슴살을 양껏 주문했고, 최대한 건강 식단 위주로 끼니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닭가슴살. 먹어본 이들은 안다. 맛이 없어도 너무 없다. 퍽퍽하고 밋밋한 녀석이지만 건강을 위해서라고, 심지어 닭가슴살을 갈아서 셰이크 형태로 마시는 사람도 있다고, 몸이 우락부락한 유튜버들은 자꾸만 인내를 강요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놀랍게도, 한점 오차도 없는 사실이었다. 몸은 점점 활기를 찾아갔고, 체중은 10kg 가까이 감량되었다. 못 입던 바지를 다시 꺼내 입었고, 가출했던 턱선이 귀환을 알렸다. 인내가 써야 열매가 달다는 걸 새삼 깨달았던 그때, 내 안에는 한 점의 억울함도 남아있지 않았다.


머리 검은 짐승은 은혜를 모른다고 하더니만 단기간에 건강을 되찾는데 기여한 닭가슴살을 향한 고마움은 어디 가고, 맛대가리 없다고 구박하며 냉동실에 방치해버렸다. (양심은 있어서 버리지는 않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냉동실이 폭발 직전이라는 걸 깨달은 후에야 이 애물단지의 처리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왜 그리 많이 사놨는지…… 역시나 지구인은 항상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후회해서 뭐 해.
어쨌든, 정말이지 정직한 방법으로는 섭취하고 싶지 않았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계속 맛없게 먹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 되면 누가 책임질 거야! 그리하여 치열한 사투 끝에, 닭가슴살 치킨가스라는 새로운 메뉴를 영접하게 된다.


닭가슴살을 사정없이 두드려 얇게 펴준 다음 소금, 후추 간을 해주고 밀, 계, 빵, 옷을 입힌다. 뭐야, 그런 다음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올려 앞뒤로 싹 튀겨주면 끝. 정말 끝? 끝이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닭가슴살을 변신시킬 수 있다니! 게다가, 맛도 놀라웠다. 겉.바.속.촉.의 진가가 배어있는 음식이랄까? 겉을 둘러싼 튀김옷을 씹었을 땐 산골 소년의 외침이 메아리쳐 들려오듯 바삭한 소리가 입 안 가득 울려 퍼졌다. 곧장 위아래 치아가 숨어있던 부드러운 닭가슴살을 뚫고 들어가자 물풍선에 구멍이 난 듯 육즙 폭탄이 터지며 입 안 곳곳이 흠뻑 젖어 들었다. 역시 튀긴 음식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야 제맛. 누군가 치킨가스의 성지가 어디인지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우리 집 부엌을 보게 하리라!


사실 닭가슴살로 치킨가스를 만들어 먹기까지는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엔 닭가슴살을 역시 얇게 펴서 그 안에 치즈를 넣고 돌돌 말아 치즈말이를 시도했는데, 안쪽 면이 자꾸 익지 않아 오래 구워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오래 구웠더니 육즙이 빠져나가 닭가슴살 ‘본연의 퍽퍽함’이 제대로 구현되기도……. 그래서 새롭게 시도한 것이 닭가슴살 패티. 닭가슴살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대파, 마늘, 소금, 후추, 밀가루 반 컵을 넣고 갈아버렸다. 그리고 반죽을 치댄 후 얇게 펴서 구워주면 끝. 쉽고 간편해서 조리 시간이 짧고 맛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역시나, 그냥 먹는 닭가슴살과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적었달까? 금세 물려버리고 만다.

실패는 과정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실패는 참 싫었다. 음식은 기분 좋게 먹어야 하는데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게 얼마나 고되던지. 가끔은 내 머리에 닭 볏이 자라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참 우스운 건, 그 덕에 치킨가스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는 거다. 첫 시도에 치즈말이나 패티가 아닌 치킨가스에 도전하여 곧장 성공적 결과를 얻었다면, 치킨가스에 대한 감흥은 그리 크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만족했고, 그 오랜 사투가 싫지 않았으며, 내 안에는 한 점의 억울함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해냈잖아!

지구인이라면 응당 골칫거리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걸까? 마치 그것이 지구인의 생존 조건인 것처럼 끊이지 않고 우릴 찔러대는 뾰족한 문제들 덕에 우리 삶은 절대 지루할 틈이 없다. 늘어나는 살덩이, 냉장고에 방치된 식재료뿐만이 아니다. 가족과 연인, 친구와 동료, 돈과 시간, 옷과 집…… 하나부터 열까지 해결해야 하는 것투성이다.

그런데 말이다. 해방을 꿈꾸는 이가 가만히 앉아 바라기만 한다면 우리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지나가던 외계인이 초능력을 선사한다거나 램프 속 지니가 나타나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는 일이 벌어질까? 그럴 리 없다. 망설이는 건 오히려 스스로 삶의 무게를 더욱 늘리는 꼴이 될 게 분명하다. 나아가긴커녕, 가라앉고 말겠지.

도전하자! 살은 결국 빠지고 내 입맛에 딱 맞는 최고의 음식도 결국은 완성될 테니까. 위대한 반전을 원한다면, 도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어차피 지구인은 이상을 좇아 살아가는 존재 아니던가? 실패하더라도, 그 덕에 더욱 맛난 성공을 맛보게 됨을 기억하며 우리 함께 나아가보자.


앗,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그렇다면…… 될 때까지 하면 된다! 원래 기우제도 비 내릴 때까지 계속 드렸다고 역사 수업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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