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래 동무들에게 돼지갈비 김치 조림을 보여주갓소!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by 웅숭깊은 라쌤

경기도 안성에는 ‘하나원’이라는, 북한 이탈 주민들의 정착 지원을 위한 통일부 산하 기관이 있다. 그곳에도 10대 청소년들이 있으며 그들을 위한 학교, ‘하나둘 학교’도 운영된다.

코로나로 인해 북한이라는 국가의 국경이 완전히 막혀버린 후 이탈 주민 자체가 없어 하나둘 학교는 현재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못하지만, 2020년 이전에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와 하나둘 학교 학생들 간 교류 행사도 종종 진행되었다. 이름하여 ‘남북 청소년 어울림 한마당’! 그리고 행사 참가 학생들의 인솔 교사였던 난, 하나둘 학교 학생 ‘청미’를 만나게 된다.


청미는 북한에서 건너온 17살의 참으로 해맑고 고운 소녀였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대화 상대자도 함께 밝아지는 그런 긍정의 기운을 잔뜩 가지고 있던 소녀는, 하나둘 학교를 수료하고 우리가 아는 일반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해주었다. 남한 친구들도 사귀고 사회에도 빠르게 적응하여 어른이 되었을 땐 크게 성공하고 싶다는 포부도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말도 굉장히 똑 부러지게 잘하고 무엇보다 아는 지식이 참 많았다. 이 아이가 북쪽이 아닌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처음부터 시작을 같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기대감에 젖어있는 청미의 모습에 걱정도 조금 되었다. 이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것인데……. 어리고 순수한 이 소녀가 적응하기엔 우리의 삶은 꽤나 삭막하고, 거친 모습을 지니고 있으니까.

청미는 남한에서의 생활 중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로 음식을 꼽았다. 고기반찬이 매일 나오는 게 너무 신기했다며. 북에도 육류 음식이 많지만, 일반인들에겐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고기는커녕 끼니 챙기기도 힘든 하루가 넘쳐났기에, 그래서 목숨을 걸고 힘겹게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다. 청미가 북에서 먹어 본 음식 중 가장 맛난 메뉴로 언급했던 건 ‘돼지고기구이’였는데, 그것도 제대로 맛봤다기보단 동네 잔칫날 한 조각 얻어먹은 게 전부였다고 했다. 한입 먹고 오랫동안 그 맛을 잊지 못했다는 청미의 말에 가슴이 쓰라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통해 청미의 언어로만 전해진 북한식 돼지고기 요리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한식대첩>, 시즌 2!


<한식대첩>은 서울, 강원, 충남, 충북, 경남, 경북, 전남, 전북, 그리고 제주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명인들의 우리나라 전통 음식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그 참가팀 중에는 ‘북한팀’도 있었다. 경연마다 새로운 주제가 주어지는데, 처음 시청했을 때의 주제는 ‘김치를 활용한 요리’였다. 북한팀은 ‘돼지갈비 김치 조림’이라는 음식을 준비했고, 음식의 주요 재료는 돼지갈비와 북한식 배추김치였다. 물론 청미가 언급했던 그 메뉴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반가워서 그 순간부터 <한식대첩>을 정주행하게 되었으니…….

이후에도 수많은 북한 음식을 만날 수 있긴 했는데, 그래도 가장 처음 보았던 ‘북한식 돼지갈비 김치 조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난이도나 재료가 그나마 도전해볼 만한 점도 물론 있었다) 내래 동무들에게 돼지갈비 김치 조림을 보여주갓소!


우선 돼지갈비를 잘 해동하여 양념해주는데, 그 양념은 간장 베이스였다. 딱히 구체적인 비율이나 들어가는 재료들에 대한 설명은 없었기에 우리가 흔히 아는 간-설-파-마-후-깨-참을 적당히 넣고 버무려주었다. 다음 과정은 ―백종원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없애는 북한만의 조리 비법인데, 양념이 어느 정도 배었을 때 돼지갈비를 뜨거운 기름에 빠르게 튀겨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기름에 튀기고 나면 불순물이 빠져나가게 되고, 튀긴 돼지고기를 건져 다시 찬물에 씻어내면 남아있던 불순물마저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과정을 해보긴 했는데 역시나…… 음식은…… 많은 정성이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름이 무섭게 화를 내버리는 바람에……. 여하튼 첫 과정 이후 양념에 갈비와 김치를 졸여주어야 하는데, 여기서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집엔 북한식 김치가 없잖아? 우리 어무이는 갱상도 분이신데여? 우짜지요? ―북한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프로그램에 소개된 북한식 배추김치는 김치소에 명태와 오징어가 들어가고 명태 육수로 깊고 개운한 맛을 냈다고 하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최면을 거는 수밖에! 여기는 북한이다, 이것은 북한 김치다, 갱상도가 아이다, 내래 동무들에게 지옥을, 아니 돼지갈비 김치 조림을 보여줄 것이우다!

튀겨낸 돼지갈비, ‘북한식’ 김치, 그리고 갑오징어(사실 냉동 해산물로 대체함)를 넣고 이번엔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기본으로 하여 물을 자작하게 넣고 졸여준다. 그렇게 갈비가 잘 익기만 하면 오늘의 요리 완성.

사실 재료나 방식이 고유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기에 그다지 북한 음식이란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냥, 맛있게 잘 먹었다. 다만 먹는 내내 음식의 맛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다. 북에서 건너온 한 어린 소녀가 떠올랐고, 지구 안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라는 지구인들이 떠올랐을 뿐.

정말 솔직히 말해 북한 문제에 관심이 그리 크진 않았다.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런 사회문제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기나 했을까. 그런데 북에서의 고된 삶에 관하여, 희망을 찾아 목숨을 걸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넜던 순간에 관하여, 당신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나처럼 인식이 바뀔지 모른다.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통일이란, 찬반으로 양립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당위성을 지닌, 반드시 성사되어야 하는 가치라는 걸. 더불어 우리 사회가 순수한 이들에게도 삶이 허락되는 깨끗한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걸.


지금 청미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저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녀의 삶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길, 그리고 무엇보다 돼지고기만큼은 마음껏 먹고 있길,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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