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은 라면도 있을까?

가장 보통의 레시피 - 소박한 식탁 위 발칙한 잡담들

by 웅숭깊은 라쌤

물 500mL를 끓인 후, 면과 분말 스프, 플레이크를 넣고 4분 30초간 더 끓인다. 불을 끈 후 후첨 양념분말을 넣어 잘 저어 준다. 그리고 맛있게 먹어준다. 이는 요즘 꽤 인기 있는 특정 라면 봉지 뒤에 적힌 기본 레시피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면을 공기에 마찰시켜 더 쫄깃하게 만들어준다든가, 잘게 썬 대파와 날달걀을 넣어주는 개인 취향에 따른 추가 레시피도 가능하긴 하겠다.

라면은 원래 몸에 좋지 않다. 동물성 기름에 튀긴 면과 과다한 염분에 탄수화물까지. 심지어 컵라면 용기엔 환경호르몬 유발 물질도 있다고 한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알지만, 그래도 라면은 쉽사리 포기하기 힘든 음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당신을 위로해주기에, 라면은 알고 보면 몸에 좋은 음식이기도 하다.

지구인들은, 정확히는 술을 좋아하는 지구인들은 각자 나름의 해장 방법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짬뽕, 콩나물국, ―심지어 이름도― 해장국 따위로 속을 달래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독특하게 햄버거나 피자, 짜장면 같은 기름진 음식으로 해장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세계로 시야를 넓혀보면 굉장히 낯설고 기상천외한 음식들이 소개된다. 일본은 우메보시, 중국은 녹차, 그리스는 버터, 이탈리아는 에스프레소, 몽골은 삭힌 양 눈알을 넣은 토마토 주스로 해장을 하는가 하면 푸에르토리코에서는 겨드랑이에 레몬즙을 바르기도 한단다. 레몬즙 바르기는 정말 궁금한 방법이지만 그다지 시도해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 시도해보고 알려줬으면……. 그나저나 나에겐, 최고의 해장음식은 단연 라면이었다. 컵라면을 박스째 쟁여놓고 술을 마신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해장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 그렇게 한 그릇 뚝딱하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몸엔 생기가 돌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루틴과도 같았달까.

언젠가 수업 시간, 그 전개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쌤, 어른들은 대체 술을 왜 마셔요?”


그야말로 호기심 가득한 질문이었다. 원래 아이들은 접해보지 못한 어른들의 세계에 대단한 환상을 지니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기분 좋은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술을 마셔.”

“쌤은요? 쌤도 그래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도 궁금했다. 내가 왜 술을 마시는 건지. 그런데 그게 막 어렵고 복잡한 답을 요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곧장 입 속의 검은 잎은 말을 뱉었다.


“난, 그냥 마셔.”


그냥, 마셨다. 기뻐서도 마시고, 슬퍼서도 마시고,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늘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해장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 그렇게 한 그릇 뚝딱하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몸엔 생기가 돌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루틴과도 같았달까. 같았으나, 그 루틴은 이제 많이 달라졌다. 철이 든 부분이라 해도 될까? 그냥은 안 먹는다. 견디거나, 삶에 맞서 싸워야 할 때, 그리고 잘게 잘게 썰리지 않은 덩치 큰 불행이 한꺼번에 쏟아질 때,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다. 마실 땐 잘 모르지만, 다음 날 아침 쓰린 속을 부여잡고 힘겹게 끓인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면 분명 위로가 날 토닥거린다. 언제나 지척에 머물며 날 지지해주는 라면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것이야말로 라면의 역설이 아닌가! 그냥 먹는 라면은 몸에 좋지 않지만, 아플 때 먹는 라면은 몸에 좋을 거라는. 당신은 아마 이 말을 비정상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조금은 그렇게 느껴지는 걸 보면 몸에 좋은 라면은, 이제 없어야만 한다.


당신은 알까?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하여 내가, 당신의 그 사소한 안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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