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대화
명.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아이들에게 숫자 송을 아냐고 물으면 곧장 ‘1초라도 안 보이면, 2렇게 초조한데’라는 가사가 들려오겠지만, 숫자 송의 원조는 사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셋이면 셋이지 넷은 아니야 넷이면 넷이지 다섯 아니야 랄라랄라 랄라랄라 랄랄라’이다. 혹시나 이 구절을 읽자마자 자연스레 멜로디를 흥얼거린 당신이라면, 우린 같은 세대임이 분명하다. 1990년 KBS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영심이>의 삽입곡이니까!
<영심이>의 주인공 영심이는 정말 말괄량이다. 엉뚱한데 심지어 괴팍한 구석도 있다. 그렇지만 여느 여중생처럼 꿈 많고 가족, 친구들의 소중함을 아는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참, 그 시절의 영심이 같던 소녀가 나의 학생 중에도 있었다. 영심아, 보고 있니?
사회 초년생이자 철없는 20대 교사이던 (지금도 철은 없다) 그 시절, 1학년 5반 수업에 들어가면 젤 먼저 눈에 띄는 친구가 바로 영심이었다. 어쩜 그리 해맑을 수 있는지 늘 웃으며 사람을 대하는 녀석을 미워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영심이는 내가 지도 교사였던 연극부 부원이기도 했으니, 다른 학생들보다 교류하고 소통할 기회가 훨씬 더 많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말괄량이 성향이 강한 아이들과 대화할 땐 조금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대화의 깊이가 얕거나 혹은 주제가 너무 가볍게 흘러가는 경향 때문이다. 음악에도 강, 약, 중강, 약이 있듯 대화에도 다채로움이 있어야만 그 참된 맛이 살지 않을까? 진지하게 대화를 끌고 가기가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영심이와의 대화는 조금 달랐다. 영심이는, 그저 말괄량이에 불과한 그런 친구가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영심이로부터 ―녀석은 모르겠지만― ‘교사의 올바른 대화법’을 배웠다. 영심이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기본적인 태도와 방식을 갖추고 있었고, 유달리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잦았던 덕에 난 틈틈이 그 방법을 하나하나 배워나갈 수 있었다.
인근 중학교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행사 전날, 연극부 아이들과 해당 학교로 가 리허설을 진행했다. 낯선 환경에서 동선을 맞추고 장비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우린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모두가 걸어서 다시 우리 학교로 향하는데 가장 뒤에 서 있던 내 곁으로 영심이가 철썩 달라붙었다. 요 녀석 또 무슨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나, 생각했는데 영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에 들어가면 꾸중을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너무 밤이 늦었지? 어머니한테 혼나려나? 아니면 아버지?”
“그게…….”
영심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밝은 표정으로 답을 이었다.
“헤헤, 저 아버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안 계셔요. 지금은 엄마랑 할머니랑 살고요.”
영심이는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 그렇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굳이 불편해할 필요가 없음에도 무언가를 자꾸 감추려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심지어는 자기 삶의 어두운 면면을 늘어놓으며 동정심을 유발해 무기처럼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영심이는 마음을 먼저 열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주길 원했고 나 역시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대화를 건넬 수 있었다. 그날 그렇게 이어진 우리의 대화 주제는 ‘문학’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는 ‘미소’였다. 별거 아닌 듯하지만 대화의 시작은 미소 짓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누구지?) 알고 그랬던 것인지 몸에 배어 있는 것인지 영심이는 늘 미소로 상대를 대해주었고 덕분에 누구든 ―나 역시도― 항상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미소는 그저 호감에만 머물지 않음을 깨달았달까? 그렇게 주고받는 말들은 신뢰, 배려, 용기, 위로 따위를 끌어모아 우리의 대화의 깊이를 더욱 깊어지게 했다.
내가 영심이에게 배운 마지막 대화법은 네트형 경쟁 스포츠에서 여러 번 랠리가 이어져야 멋진 득점 장면이 완성되듯 우린 계속해서 듣고, 답하고, 묻고, 다시 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어른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대화가 아이의 내면을 완전하게 확인시켜 줄 테니까. 영심이도 그랬다. 겉으로는 ―진짜 영심이처럼― 말괄량이처럼 보였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어른스럽고, 다정하며, 따뜻한 존재라는 걸 오랜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까불거리며 장난치기를 좋아했던, 그리고 평소 시를 가까이하며 문학소녀로서 꿈을 키우던 그녀, 영심이는 지금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다. 내게 그러했듯 그녀의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사이자 어른으로서 세상의 진리와 올바름에 관하여 온전한 전달을 이뤄내고 있겠지? 다만, 내가 그러했듯 그녀 역시도 그녀의 아이들에게 배우려 애썼으면 좋겠다. 아이들만큼 많은 가르침을 주는 존재가 없으니까. 알겠지? 영심아, 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