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현미밥, 경상도식 소고기뭇국, 치즈 불닭, 배추김치, 그리고 참나물무침. 여름방학 보충수업 기간 중 마주한 급식 메뉴였다. 현미밥은 밥이니까 일단 논외로 하고, 나머지 찬들은 조금씩은 자극적이다.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은 얼큰한 국물에 콩나물, 무, 대파를 듬뿍 넣어 육개장처럼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나도록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치즈 불닭은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닉값’을 아주 제대로 하는 메뉴이다. 입에서 불이 나는, 매운맛의 끝을 보여주는 음식. 배추김치가 맵고 짠 음식이라 말할 순 없지만, 고춧가루를 기본양념으로 하는 반찬이니 알고 보면 모두가 다 시뻘겋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식단에 없어선 안 될 가장 소중한 반찬은 다름 아닌 참나물무침이다. 때론 참나물무침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맵고 칼칼한 삶에 개운함을 전해주는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로.
참나물무침은 여름이란 계절을 대표하는 그야말로 ‘제철 음식’이다. 물에 소금을 살짝 넣고 줄기 끝을 잘라낸 참나물을 짧게 데쳐낸다. 너무 오래 삶으면 질겨질 수 있으므로. 얼른 건져서 찬물에 헹궈내고, 다진 대파와 간마늘, 간장, 설탕,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넣고 버무려주면 완성. 통깨를 살짝 뿌려주면 보기에도 참 좋다. 가끔은 사과와 함께 샐러드로 만들어도 별미다. 무더운 계절을 이겨내라고 여름 산이 직접 부친 한 통의 편지였을까. 게다가 급식이란, ‘남이 만들어준 밥상’이지 않은가. 급식실에 들어선 순간 푸른 신록이 가득한 산림욕장이 펼쳐졌다! 나는 그저 조리사님들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었고, 몸 안팎의 열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모두에게 인정받는 메뉴는 아니다. 있어서 있구나, 정도이지 참나물이 주메뉴인 적은 결코, 없다. 아마 아이들은 손도 안 대는 그런 메뉴일지도. 하지만 언젠간 참나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입안의 텁텁함을 알 나이가 되면 그땐 스스로 참나물무침을 찾게 되겠지.
두사부, 아니 군사부일체라는 말도 있었다. 뭐, 그런 것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교사의 삶은 언제부턴가 참나물무침에 뿌려진 깨소금 정도로 비참해졌다. 글쟁이의 글은 솔직해야 하니 글쟁이의 글답게 솔직하게 논하자면, ―특히 요즘 세상을 보면― 특정 직업군은 금전적인 대우는 물론 예외적인 법적 혜택까지 받는 것과 달리 사회적으로, 교사는 아예 천대받는 직업이 되어 버렸다. 애초에 돈을 잘 버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돈을 잘 벌기 위해 선택한 직업인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교사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참나물무침처럼 사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이긴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 참나물무침이라고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다. 상하기도, 질겨지기도 했을 테니. 적당히 데쳐지기 위하여, 스스로 노력해야 함을 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텁텁함을 지워낼 방법으로 자극적이고 매콤 칼칼한 맛들만 찾는다. 빨간 국물과 불닭이 아니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양, 심지어는 참나물이 무침이 되기도 전 무참히 짓밟고 짓이겨버리는 이들도 존재한다. 이래서야, 참나물무침처럼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다! 자문자답이 다소 의아하겠지만 세상 모든 진리가 그러하다. 스스로 물음을 던지면 ―누군가 들었다는 듯― 어디선가 반드시 답이 돌아온다. 글이 한창 채워져 가던 와중 지루했던 여름방학이 끝이 났다. 방학이 끝났을 뿐 여름이 끝난 것은 아니고, 또 방학이 지루했단 것이지 싫었다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 도착한 뒤 적어도 지루함은 확실히 없어졌다. 지루하긴, 온갖 업무와 수업, 그리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는걸? 정말이지 대단한 녀석들! 아이들에겐 방학 후유증이나 지친 기색 따윈 없었다. 교실에서 마주한 아이들의 잡담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어디에나 있는 까불이들의 장난도 멈춤이 없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마법과도 같은 녀석들.
이 까불이들이, 내게 답을 준 것이다. 내 삶에도 남부럽지 않은 혜택이 존재하고 있음을. 한여름 땡볕을 막아주는 산림욕장의 그늘과도 같은, 티 없이 맑은 그들의 웃음이 있어 맵고 칼칼한 삶의 텁텁함이 지워진다는 것을 방학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의 참나물무침처럼 살고자 하였으나 내 곁에도, 분명 참나물무침 같은 이들이 곳곳에 머무른다.
여름날의 참나물무침이 모두에게 인정받는 메뉴는 아니다. 있어서 있구나, 정도이지 참나물이 주메뉴인 적은 결코, 없다. 아마 아이들은 손도 안 대는 그런 메뉴일지도. 하지만 언젠간 참나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입안의 텁텁함을 알 나이가 되면 그땐 스스로 참나물무침을 찾게 되겠지.
다행히 이 글을 쓰는 동안 바깥은 아직 여름이다. 여름이란 계절은 길고 지루하며 때론 괴롭기도 하지만, 여름이 있어 ―혹은 여름방학이 있어― 삶은 언제나 봄날임을 깨닫는다. 도망가기 전,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 내 삶의 모든 참나물무침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