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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에 충성하는 자, "급식, 충"

프롤로그

by 웅숭깊은 라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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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뭍 사람임에도 굳이 섬에 있는 학교로 통학을 했다. 매일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일이 그땐 그리 힘이 들지 않았다. 섬은 무척이나 신비롭고, 찬란했으니까. 서해? 남해? 아니다, 서울이다!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 여의도. 남들은 벚꽃과 불꽃으로 그 섬을 기억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건 오히려 섬에 대한 부정적 단면이다. 축제 다음 날 통학길에 쌓여있던 쓰레기 더미를 잊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산, 산이었다!

어쨌거나, 그 섬이 아름다웠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섬 곳곳에 자리한 ‘맛집’ 때문이었다. 여의도 토박이 부자 친구는 어느 날 저녁, 고기가 통으로 들어간 설렁탕 한 그릇을 대접했고 안 그래도 남의 살을 좋아하던, 한창 식욕이 왕성하던 그 시절의 소년은 마침 며칠 전 국어 시간에 만난 김수영 시인께서 이 설렁탕을 맛보았다면 그래도 과연 주인에게 욕을 날리셨을지를 궁금해했다. 한창 코를 박고 뚝배기에 빠져들어 있던 내게 친구는 ‘여의도엔 직장인이 많아서 맛집도 많다’란 말을 했다. 그래서인지 여의도엔 ‘별다방’만 무려 일곱 개가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덕분에 아주 잠시, 여의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미래를 그리기도 했으나 그것은 정말이지 아주 잠시뿐이었다. 계산대 앞에서 설렁탕 한 그릇 가격을 들은 순간 아주아주 어릴 적 ‘눈높이’에 맞춰 풀었던 수학 학습지의 효과가 비로소 발동되어 버렸고, 한 달 출근 일수와 한 끼 식사비가 재빠르게 계산되며 고교 졸업과 동시에 다시는 여의도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설렁탕 한 그릇 정도는 능히 낼 수 있는 수입이 생겼고 여전히 섬은 신비롭고, 찬란하다. 그보다 더 다행인 건 이젠 별다방이 스무 개가량 늘어난 그 섬의 인류들과는 달리, 나의 점심엔 한 치의 고민이 없다는 것. 여의도에서 90km 남짓 떨어진 시골 마을의 어느 작은 학교에서 난, 급식을 먹는다. 김수영 시인의 설렁탕과 찰진 욕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그렇다, 이 글은 인류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급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게 또 급식에 관한 이야기라기엔 급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그러니까 결국 먹는 얘길 하겠다는 것이고, 먹는 얘기라면 결국 사는 얘기와 이어질 테고, 아무튼 급식은 거들 뿐, 우리네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속셈 아니겠나.

내꺼_사진_20250731_1.jpg 글과 이미지는 전혀 관련이 없으나 하여간에 제가 먹는 급식이긴 합니다


비록 이 글과, 글쓴이와, 급식이란 소재는 당신과 같은 일류에겐 터무니없이 먼 세계에 존재하는 하찮은 대상으로 여겨질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일류’라 해도, 누구나 ‘인류’이지 않은가. 어쩌면 이건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니, 속는 셈 치고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인류의, 인류에 의한, 인류를 위한 지극히도 평범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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