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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퍼먹으면 안 되는 게 맞지만

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by 웅숭깊은 라쌤

맘대로 퍼먹으면 안 되는 게 맞지만

: 배식과의 전쟁?



從今處世學甯愚 이제부터 영우의 처세를 배우고자 하나

大廈誰將一木扶 어느 누가 큰 집을 기둥 하나로 지탱할 수 있으랴.

已知代斲徒傷手 서투른 목수가 대신 하려다 손만 다침을 이미 깨닫고서

縮首山菴作腐儒 목 움츠리고 산에 들어 썩은 선비가 되었네.

-송사 기우만


증조부는 의병장이셨다고 한다.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나주에서 동료들과 의병을 일으켰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을 땐 직접 소 疏를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증조부는 결과적으로 본인의 목적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위 시는 현실과 포부의 괴리로 인한 좌절감이 담긴 호소력 짙은 작품이다.

가문의 집밥 레시피가 전해진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식지 않는 끓는 피가 전해진 것인가. 어릴 때부터 유독 승부욕이 강했다. 친구들이랑 축구 시합을 할 때면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늘 다툼이 벌어졌고, 그 중심에 늘 내가 있었다. 싸움도 못 하면서 여기저기 달려들다 두들겨 맞기 일쑤였던 모지리. 지금이야 무식하게 주먹질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시절의 면모는 버리지 못하고 있다. 눈을 감고 넘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다혈질의 사내는 불의는 못 참는다. 특히 관리자, 높은 사람이 부정을 저지르는 걸 견딜 수가 없다. 매일이, 전쟁이다.


아이들의 세상에도 전쟁은 끝이 없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펼쳐지는 등교 전쟁, 해가 갈수록 더욱 거세지는 입시 전쟁. 게다가, 점심시간 되면 먼저 혹은 많이 먹으려는 ‘배식 전쟁’까지 펼쳐진다. 학교는 가야 하니 등교 전쟁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이건 사실 매일 아침 선생님도 하는 전쟁이야……. 늦게 일어난 우리 탓이란다, 얘들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겠지? 입시 전쟁, 이건 대한민국의 못난 어른으로서 사과할게. 너희들 탓이 아니란다. 힘을 키우지 못한 선생님이 무슨 할 말이 있겠니. 그런데 말이다, 배식 전쟁. 그건 꼭 그랬어야만 속이 시원했냐? 굳이 그렇게까지 전쟁을 펼쳐야만 하겠냐? 응?

자, 여기서 배식 전쟁이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배식받는 순서. 먼저 받아 먼저 먹겠다는 것인데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 게 사실 조금 늦게 간다고 어마어마하게 늦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줄이 밀리는 때를 피해 여유 있게 가서 천천히 먹고 오는 것도 방법인데, 그럼에도 늘 격한 질주가 펼쳐진다.

두 번째는 역시나 배식의 양. 좋아하는 반찬을 많이 퍼먹겠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전쟁이다. 조리 실무사님들을 피해 몰래 산더미처럼 반찬을 퍼 가는 녀석들도 있다. 수량이 정해져 있는 튀김 같은 경우엔 덜 하지만, 메뉴에 따라 불가피하게 배식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 아니, 한창 키 클 나이엔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할 텐데 왜 자꾸만 편식을 하는 거냐고요! 게다가 반찬의 총량은 정해져 있으므로 앞에서 다 퍼가면 뒤에 오는 친구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말이다. 이건 충분히 학생들끼리 논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서로를 위해 캠페인을 펼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나부터 스스로 타인을 배려한다는 마음을 갖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배식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공식적인 민원이 들어오곤 한다. 심지어 교육청 신문고를 통해서. 고작 배식 때문에 민원이라니!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이 아이들이 아프리카 난민들이나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은 알기나 할까? 아픔과 고통 속에 놓인 인류에 대한 관심은 눈곱만큼이라도 가지고 있을까? 배식 민원이나 넣는 이들이 대학을 가고, 나라를 이끌 인재가 된다고? 알고 보면 학교 안 모든 전쟁은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으며 자기 이익을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체 이 나라 교육은 어딜 향해 가고 있는가.


5.jpg 글과 이미지는 전혀 관련이 없으나 하여간에 제가 먹는 급식이긴 합니다


배식 전쟁, 더는 방관할 수 없다. 이제는 종전 終戰이 필요하다! 종전을 위해선 전쟁의 원인을 살피고 근본적인 접근을 통해 완벽한 문제 해결을 도출해야 하는데, 어라? 원인은 어른들이었다. 왜냐고요?

선생님 중에는 유독 나라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좋게 말해서 나라 걱정이지 본인의 정치적 신념에 대한 ‘의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솔직히 꽤 불편한 장면이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에겐 굉장히 비교육적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을 전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힘을 키워주는 게 올바른 교육의 방향일 텐데 말이다. 게다가 이건 또 알고 보면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 교사는 바빠서 정치나 논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그러니까 업무적으로 한참 편한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사치’임이 분명하다.

사치꾼들은 정작 본인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비리, 뻔히 보이는 부정에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더불어 변화하는 교육과정에 발맞춘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괜히 추가적인 업무가 생겨 피곤해지기 싫은 탓일지도. 그런 이들이 나라 걱정을?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음치가 노래 잘하라고 핀잔하는 셈이다. 과연 그런 모습이 아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비칠 수 있을까? 정말 목소리를 내야 할 사안에 침묵하고 사치나 부리는 어른들의 행태가 우리 아이들을 고작 배식 때문에 민원을 넣는 지경으로 만든 게 아닐까.


언제나 목소리를 높이기 전 반드시 돌아보곤 한다. 나의 외침이 고작 나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눈치 볼 것 없이 과감히 있는 힘껏 함성을 뱉을 것이다. 세상에 타협하고 불의를 외면하는 건 그 시절 친일파들의 행태와 다름이 없을 테니까. 이 글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식지 않는 끓는 피가 내 안에 흐르고 있음을 기억하며, 아이들의 심장도 늘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도록 바른길을 가르치겠다. 비록 나의 외침이 좌절감에 휩싸인 하찮은 시가 될지라도, 끝까지. 어디 한 번 덤벼봐라, 세상아!


5. 배식전쟁.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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