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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치고 밥 먹던 시절이 있었어!

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by 웅숭깊은 라쌤

칸막이치고 밥 먹던 시절이 있었어!

: 너네, 그거 알아? (2)



인류는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당황했다. 팬데믹이 전 세계를 집어삼켰고 처음 겪는 상황에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린 우리의 삶을 되찾았고 이제 그것조차 한때의 추억이 되었다. 물론 그 시절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던 이들도 존재하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분명 우리는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멸망하진 않았으니까.

학교에서도 나름 원활한 대처를 해냈다. 학생이 없는 학교에서, 교사들은 온라인 클래스를 열고 수업을 이어나갔고 집단지성의 힘이 무엇인지를 마음껏 보여주었다. 각종 교사들의 커뮤니티에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교육이 멈추지 않도록 온갖 지혜와 아이디어가 쏟아졌으며 시도 때도 없이 연수가 이어졌다. 다들 새로운 업무가 늘어났음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수업뿐 아니라 급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칸막이’의 존재였다. 특히 식사 시간엔 바이러스가 퍼질 가능성이 컸으므로, 이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테이블이 좁아지고 삭막한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다들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모두를 위한 결정이었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방역을 위해, 코로나 종식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우린 이겨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나고 다시 칸막이를 치웠을 때,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이들 앞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왜 그리 부끄러웠던지. 역시나, 이젠 칸막이도 하나의 추억이다. 언젠간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겠지? 야, 칸막이치고 밥 먹던 시절이 있었어!


7.jpg 글과 이미지는 전혀 관련이 없으나 하여간에 제가 먹는 급식이긴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문과는 하향세이다. 인기가 식을 대로 식어 아주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가 무형의 가치가 외면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문과, 그러니까 인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 추구하는 건, 예를 들어 ‘철학 공부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이끈다’, ‘역사 공부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는다’, ‘국어 공부를 통해 사고력과 비판력을 신장한다’와 같은 것들이다. 지혜, 사고력과 같은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당장 눈앞의 이익이 보여야 하는, 확실한 보장이 있어야만 하는 사회로 접어들면서 아무래도 문과와 인문학이 외면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의대 쏠림현상이 지나칠 정도인데, 사실 많은 이의 목표는 결국 ‘돈’이다. 그저 추측성 발언이 아니다. 실제로 물음을 던지면 의사의 직업적 가치보다 경제적 보상을 중요하게 판단하는 학생들이 많다. 아, 그런 판단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돈 많이 버는 게 어때서요? 저도 부자가 되고 싶은걸요? 부정할 수 없지만, 오직 의사만 돈을 잘 버는 건 조금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다양한 직종에서 충분한 경제적 성과가 이뤄져야 세상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음에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유독 의사만을 고집한다면, 우리 사회의 인센티브 구조가 잘못된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문과와 인문학 역시도 이 사회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스마트폰, 그리고 스티브 잡스에 관하여. 그전까지 모든 기술은 속도, 용량, 소위 말하는 ‘스펙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졌다. 2G부터 5G까지, 순식간에 빨라진 세상을 우린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잡스는 ‘왜 인간이 휴대폰을 사용하는가?’,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처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덕분에 인류 최대의 발명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완성될 수 있었던 거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의 힘이랄까? 그리고 말이다, 급식실의 칸막이도 결국 인문학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코로나19로 전 인류가 고통 속에 놓였을 때 과학기술, PCR이나 mRNA 발현 기술을 통한 백신 개발이 인류를 구원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건 유독 선진국에서 ‘방역 성적표가 낮았다’란 점이다. 바이러스는 과학의 영역이지만, 방역은 ‘인간의 영역’이다. 법과 정치, 사회적 합의와 같은 측면에서는 오히려 선진국이 선진국이 아니었던 것.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과학기술만 발전해선 답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래서, 문과와 인문학의 중요성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이 글에서 메인 메뉴는, 바로바로 ‘융합형 인재’! 앞으로의 세상이 원하는 인재상이다. 문과적 지식과 이과적 지식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지식으로 창조해 낼 수 있는 존재야말로 진정 새 시대를 이끌 참 지식인이 될 것이다. 이는 얕은 지식에서 비롯된 하찮은 판단이 결코 아니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문과와 이과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대학에서도 자유전공학부 인원을 늘림으로써 고교 시절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관심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학습을 장려하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단 더 많은 세상을 감싸고 안아줄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차수수밥, 소고기미역국, 춘천닭갈비, 콩나물무침 그리고 배추김치까지. 오늘도 어김없이 급식으로 왕창 배를 채웠다. 닭갈비 양념으로 밥을 야무지게 비벼서 한 술 크게 뜬 뒤 콩나물무침이나 배추김치 한 점을 올려 먹으면 이십년지기 친구와 하이 파이브를 하는 것처럼 아주 찰떡이다. 거기에 미역국 한 숟갈을 후루룩 흡입하면 이십 년 전 그때 그 친구를 처음 만났던 풋풋한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만큼 개운하게 모든 걸 씻어준다.

급식이 참 좋은 이유는 균형 잡힌 식단을 맛 좋게 골고루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이 뛰어난 산해진미를 차려놓더라도 ‘골고루’보다 좋은 식단은 없을 테니까. 오늘도 급식 덕분에 조금 더 건강해졌겠지? 골고루 먹듯 골고루 듣기 위하여 더욱 잘 먹고 키가 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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