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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말고 도시락 싸 가던 시절이 있었어!

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by 웅숭깊은 라쌤

급식 말고 도시락 싸 가던 시절이 있었어!

: 너네 그거 알아? (1)



‘우리 학교 클라스’라는 커뮤니티가 있었다. 그곳엔 자기 학교 급식을 자랑하는 사진들이 올라오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급식은 학교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어 버렸다. 자랑을 위해 올리기도 하지만 반대의 의미로 올리는 경우도 있기에, 급식은 단순히 영양과 건강 증진이란 의미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우리 학교의 ‘클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홍보 수단, 급식!


놀랍게도 급식의 역사는 조선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성균관에서 유생들에게 끼니를 제공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정말이지 먹는 것엔 진심인 우리 민족이 아닌가! 일제 강점기에도 점심을 제공하는 소학교가 있었으며 광복 직후 UN의 지원으로 초등학교에 분유나 콩, 우유 등이 지급되었다. 하지만 1977년 9월, 급식을 먹은 서울 시내 초등학교 아동 7,862명이 집단 식중독을 일으키는 사고가 발생한다. 미리 만들어 공급한 크림빵이 원인이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포도상구균이 검출되었고 심지어 이 사고로 학생 1명이 사망하기에 이른다. 결국 급식 전면 중지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1980년대 이르러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 핵가족의 증가로 다시 학교 급식의 필요성이 언급되었고, 점진적으로 다시 급식을 운영하는 학교는 늘어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정에선 급식만큼 균형 잡힌 식단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90년대에는 전국 초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급식이 운영되었고 점차 중·고등학교까지 확대되었으며, 이젠 급식을 운영하지 않는 학교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 그러니 전국 모든 학교에서 급식을 운영하는 지금의 세상은 인류가 더 행복해지고 있다는 방증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체 왜, 도시락 싸다니던 그 시절의 정이 왜 이토록 그리운 걸까.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워낙 좋으셨고, 동네에서 그 솜씨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나의 도시락은 늘 인기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메뉴는 삼겹살 수육이었는데, 도시락에 수육이 가능하냐며 모두가 달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난 고작 한 점밖엔……. 그래서인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어머니표 돼지고기 수육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어머니께 조금은 평범한 메뉴를 부탁드리기도 했지만, 내게 달려든 친구들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의 솜씨가 무척 자랑스럽기도 했다.

메뉴는 둘째치고 거짓말처럼, 아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꼭 한 명씩 도시락을 두고 온 친구가 있었다. 거짓말처럼, 아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꼭 한 명씩 도시락은 챙겼지만 수저를 두고 온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을 챙겼다. 앞뒤 책상을 붙여 넓은 테이블을 만들고, 도시락 뚜껑에 밥을 한 숟갈씩 담고, 소위 ‘포크 숟가락’을 가진 이가 젓가락을 건네면, 도시락 하나가 없어도, 수저 한 벌이 없어도 부족함은 없었다. 서로의 어머니 음식 솜씨를 찬양하며, 식사 이후의 놀거리를 논하며, 그렇게 점심시간은 아름답게 채워지곤 했다. 그리고 이건 비단 우리나라의 정 情을 논하는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가난한 소년의 점심시간’이란 제목의 노르웨이 공익광고가 있다. 가난하여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소년은 몰래 수돗가에 가서 물로 배를 채웠는데, 교실로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엔 비어있던 도시락이 온갖 음식들로 채워져 있었다. 사랑, 배려, 나눔과 같은 것들은 모든 인류의 공통적인 가치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러한 가치가 변함없이 머물고 있기는 할까?


6.jpg 글과 이미지는 전혀 관련이 없으나 하여간에 제가 먹는 급식이긴 합니다


무상 급식이 전면 시행되기 전엔 학교에선 급식 지원 사업이라는 것이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제도였으나 그걸 조사할 땐 반드시 ‘다른 친구들이 모르게 하라’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그걸 알면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었는데, 문득 궁금해진다. 가난이 왜 놀림감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아이들은 가난을 놀림거리로 삼는다. 심지어는 ‘휴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휴거,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 주공아파트에 사는 이들을 비하하는 표현인데, 여기서 또 궁금증이 생긴다. 아이들은 어쩌다가 주공아파트가 저렴한 아파트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요즘 아이들은 뉴스에 밝아서? 아, 부모들이 워낙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경제교육을 체계적으로 잘 시켰기 때문인가? 주공아파트라고 무조건 값이 저렴한 것도 아닐뿐더러 입주 환경이나 조건은 단순히 가격만으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편견인 셈.

아이들의 잘못된 정서를 만드는 나쁜 어른들이 있다. 지나친 경쟁과 이기심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바람에 그 시절 우리가 나누었던 도시락의 미학은 잊히고 있다. 아니, 그 도시락의 미학을 직접 경험했던 이들이지 않은가! 왜 자녀에겐 그 가치를 꼭꼭 숨기고 있단 말인가!


공익광고는 곧 휴머니즘이며, 인간다운 삶을 함께 영위하자는 제안의 메시지이다. 이 글 역시도 한때 도시락을 통해 아름다운 인류애를 공유하던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그 시절 그 마음을 이어가자는 ―공익광고와도 같은― 한 통의 편지가 되었으면 한다. 인류는 모두, 함께, 같이,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떠올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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