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에 충성하는 자, "給食, 忠"
들어, 있다! 어느 날 급식 메뉴판에 이름을 올린 뒤 전교생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 랍스터 만두. 그 안엔 랍스터가 실제로 들어있었고, 붕어빵에 오랜 시간 길든 우리 인류에겐 적잖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보기 전까진 다들 믿지 않았다. 그건, 랍스터의 단가 때문이었을 거다. 그 비싼 랍스터가 만두 속에? 아니나 다를까, 랍스터 만두는 실재했으나 그것이 ‘실재했다’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씹었을 때 랍스터의 질감은 그저 ‘느껴지기만’ 했다. 랍스터라니, 굳이 왜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한단 말입니까? 물론 랍스터 만두의 성공 사례가 어느 날 뉴스를 도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두의 사방 면에 랍스터의 머리와 꼬리, 양 집게발이 달려있으며 몸통도 실제 랍스터 크기만큼 큼직하게 출시되지 않는 이상 랍스터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지닌 소비자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하긴 힘들 것이다. 설령 이게 현실화된다고 해도 가격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것이며 이것이 만두가 맞긴 한 것인지의 여부도 논란이 될 수 있겠다. 그러니 결국엔, 비현실적이다.
알다시피 중국엔 딤섬이 있고 일본엔 교자가 있지만 만두는 동아시아 3국에만 국한된 문화는 결코 아니다. 만두야말로 전 인류가 함께 즐기는 위대한 음식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이탈리아에선 특히나 조리법을 음식 이름으로 연결 짓는 경우가 흔한데, 예를 들면 인볼티니 involtini는 ‘말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자, 얇게 썬 채소나 고기 속에 소를 넣고 말아서 만드는 음식을 칭하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의 만두는? 그렇다, ‘둘러싸다’란 뜻의 라비올리 ravioli는 이젠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라비올리는 얇은 파스타 반죽에 속을 채운 사실상 파스타의 일종이라고 하지만, 우리 눈엔 그저 색과 모양이 특이한 만두일 뿐?
으깬 감자로 속을 채워 삶은 폴란드의 피로기, 촉촉한 육즙의 양고기를 채우고 겉은 바삭바삭한 페이스트리로 감싼 러시아의 삼사, 다진 고기나 해산물을 넣어 굽거나 튀긴 스페인의 소울 푸드 엠파나다, 말고도 인도의 사모사, 태국의 뽀삐아, 몽골의 보쯔 등도 익숙한 듯 낯선 만두의 종류이다. 하지만 그 어떤 만두를 들이밀어도 나의 ‘원픽’은 오직, 김치만두일 것이다.
9월은 수시 모집으로 인해 고등학교 3학년 교무실의 열기가 한여름의 그것보다 훨씬 더 뜨거운 시기다. 많은 이가 울고 웃는 이 처참한 현실에서, 우린 그저 감정에 동요되어 함께 울고 웃는 데서 그쳐선 안 된다. 누가, 왜, 어떻게 울고 웃게 되었는지 그 차이에 관한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사실 입시 지도를 오래 하다 보면 학생들의 생활기록부에서 그래도 얼추 ―개개인의 목표에 따른― 학생부 종합전형 합격 가능성의 여부가 판단되곤 하는데, 제대로 된 만두는 좀처럼 보기가 쉽지 않다. 죄다 랍스터 만두들뿐. 그러니까 여기서 랍스터 만두란 무엇이냐? 겉만 번지르르하고 까보면 별것 없는, 허투루 채워진 기록들이란 거다.
김치만두가 전 인류의 사랑을 받는 비결이 뭘까? 보편적으로 만두, 특히 찐만두는 부드러운 식감, 입안 가득 퍼지는 육즙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김치만두는 여기에 김치 자체의 아삭거리는 식감과 다른 재료가 가지지 못한 매콤함과 짭짤함을 더해주어 다른 소스 없이 만두 자체만으로도 맛의 완성도를 높이었다. 라붐이 ‘상상더하기’란 노래를 통해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하였듯 김치만두는 기존 만두가 가진 장점에 장점에 장점을 더한 셈이다. 더 좋은 만두가 되기 위해선 만두 고유의 특징을 놓쳐선 안 되는 법. 그런데 학생들의 생활기록부에는 학생의 본분 대신 ‘진로 역량’만이 가득하다. 국어 수업 시간에 갖춰야 할 기본 역량은 당연히 ‘국어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잘 한다’여야 하지만 관련 기록엔 의대, 공대 등 본인들이 목표로 하는 학과에 대한 활동들만이 가득하다. 그것도 ―대학 교수님들이 보시기에― 고등학생으로서 수행했다고 신뢰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지식이 요구되는 것들로만 말이다. 영어에도, 사회에도 심지어 예술이나 체육 과목에도 전부 마찬가지. 어디서 주워듣고 검색해서 알게 된 겉핥기식 치장 때문에 단단히 지켰어야 할 본질 자체를 훼손한 셈이랄까? 랍스터 만두라 하여 기대하고 열어 보았으나 막상 씹어보면 식감도 별로, 간도 별로, 그렇다고 화려한 무언가를 느끼기도 어렵다. 만두면 다 만두인가, 만두다워야 만두이지.
랍스터 만두는 실재했으나, ―다시 말하지만― 그것이 ‘실재했다’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씹었을 때 랍스터의 질감은 그저 ‘느껴지기만’ 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저렴한 새우살을 탱탱하게 채우는 편이 육즙도 풍부하고 씹는 맛도 있지 않았을까. 이럴 거면 뭣 하러 이런 사치를 부린단 말인가.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만두 중 으뜸은 ‘김치만두’ 아니겠는가. 비비고 K-만두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었으며, 2024년 CNN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만두 중 하나가 바로 김치만두이기도 했다. 진짜 명품은, 결국엔 다들 알아보기 마련이다.
우린 밝게 빛나기 위해 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나다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이 만두라면 만두다움을, 인간이라면 인간다움을. 도전엔 늘 풍파가 있기 마련이니, 고통에 흔들려 본질마저 깨어지지 않도록 먼저 단단해질 필요가 있겠다. 마치, 김치만두가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