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휩쓰는 우울한 날들 속에서 나는 문득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를 떠올렸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와 함께 프라하 구 시가지의 골목길을, 세상의 골목길을, 내가 사는 나라의 골목길을 걷고 또 걸으며 그와 속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게 카프카는 비밀-의 카프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비밀을 품고 살아간다. 비밀이 없는 자, 불쌍할 진저. 시인 이상(李葙)도 말한 적이 있다.‘비밀이 없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과연 비밀은 이 쓸쓸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한 그릇 더운밥이고 독한 술이며 때론 나만의 환한 창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비밀이란 무엇인가. 내 마음의 어둔 골방에서 숨어 살아야만 비밀이 되는 것일까? 그렇게만 여긴다면 그는 비밀의 진실을 반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정치적 음모, 속임수, 위선, 탐정소설 속 수수께끼, 쑥덕공론 같은 세상의 허다한 비밀이란 그것이 폭로되고 나면 시시해지거나 모래성처럼 허망한 그런 것들이니까. 참된 비밀은 그런 게 아니다.
비너스 여신의 알몸은 옷이 가리고 있을 때만 비밀일까? 여신이 햇살에 자신의 나신을 눈부시게 드러내면 그 몸은 어떤 비밀도 증발해 버린 허접한 것이 되고 마는 걸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천체의 어떤 비밀을 풀어 주었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오늘도 저 밤하늘을 운행하는 별들의 세계는 내겐 거대한 비밀의 정원일 따름이다. 별들의 비밀은 영원한, 공개된 비밀이다. 꽃도 구름도 시냇물도 나비의 아름다움도 그렇고 검은 연기, 썩은 강, 공동묘지, 쓰레기 더미, 기아로 죽은 아프리카 어린 아기도 마찬가지다. 그 모두가 무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개된 비밀이 아니고 무엇일까.
며칠 전 카프카가 내게로 왔을 때 그는 비밀의 카프카, 그러니까 공개된 비밀의 카프카로서였다. 물론 그는 가까이하기 힘든 고독의 화신, 수수께끼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어둡고 난해하며 참혹하기도 한 소설 속에는 숱한 의문부호들이 안개 낀 밤거리의 가로등처럼 불을 깜빡이며 서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카프카를 우리 자신이 만든 비밀의 감옥 혹은 신비의 성에 가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카프카는 최고의 리얼리스트였다. 다시 말해 그는 우리가 잊고 있거나 외면하거나 지나쳐 버리는 이 세계의 비밀 즉 공개된 비밀을 우리에게 문득, 선명하게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카프카 혹은 소설 속 K가 걷던 안개 낀 프라하의 밤거리는 우리도 한 번쯤은 걸어본 여름의 해변 도시 밤거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가 그 도시의 어떤 골목 술집에서 마신 맥주는 오늘 저녁에라도 밖으로 나가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도 마실 수 있는 연갈색의 거품 넘치는 맥주였을 것이다. 그의 고독, 그의 우울, 그의 환희, 그의 행복, 그의 병마와 죽음 또한 우리 모두가 나날이 느끼며 사는 감정들이고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엄연한 현실이지 않은가.
그러기에 비밀의 카프카는 지금 이곳 내 마음속에서 불꽃처럼 얼음처럼, 바람처럼 바위처럼 존재하는 카프카다. 바로 이 카프카와 함께 나는 세상의 골목길을, 정확하게는 내 마음에 비친 세상의 골목길을 걸어 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 나는 ‘카프카의 골목길’ 입구에 서 있다. 내 마음의 풍경을 카프카를 빌려 묘사한다면 이렇다.
‘K는 밤이 늦어서야 도착했다. 마을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안개와 어둠에 둘러싸여 성(城)이 있는 산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카프카의 <성(城)> 첫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