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온 지 석 달도 채 안 되었는데 고향 타령 같은 걸 하자니 좀 멋쩍긴 하다. 하지만 어쩌랴. 아침이든 밤이든 집 안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책을 뒤적일 때도 유튜브로 ‘고향 노래’를 틀어놓는 게 한 달 전쯤부터는 일상이 되었다. 쓸쓸함이나 그리운 마음을 달래주는데 노래 만한 것이 있을까. 달래 줄 때도 있고 더 사무치게 할 때도 있지만 그 사무침을 가만히 품고 하나가 되면 파도치던 마음은 이윽고 고요해지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
한번 떠나온 후로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내 맘속에 사무쳐……
우리나라에서는 <고향의 노래>로 미국에서는 <Flee as a bird>로 번안 내지 편역 된 이 스페인 민요는 내가 모종의 향수에 젖을라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다. 지금은 돌아가신 지가 10년이 내후년인, 어릴 적부터 노래는커녕 한글을 배울 기회도 갖지 못하신 장모님이 유일하게 그 멜로디를 기억하는 노래로써 내가 한 번씩 불러드리기도 한 노래이기도 하다.
내가 고교시절 훌륭한 음악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대머리에 배가 나오고 목이 짧은, 겉보기에도 성악가 풍모가 넘쳐나는 그 할아버지 선생님은 음악 시간을 학생들이 대충 쉬어도 그만인 시간으로 여기지 않고 교과서에 실린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몽땅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고향 노래’인 스페인 민요도 그때 배웠다. 그리고 <즐거운 나의 집>, <캔터키 옛집>, <꿈속의 고향>(드보르작, 번안 작사 홍난파), <청산에 살리라>, <망향>(채동선 곡) ……. 오랜 세월 즐겨 듣고 즐겨 불러온 노래들이다.
애초 채동선 선생은 시인 정지용의 시 ‘고향’에 저 슬프고도 아름다운 곡을 붙였다는 것, 시인에게 월북작가라는 딱지가 붙여져 금지곡이 된 후 남쪽에선 같은 곡에 두 개의 다른 가사가 붙여져 불려지게 되었다는 것 등등에 대해 음악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는지는 기억에 없다. 내가 배운 박화목 작사의 <망향>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정지용의 ‘고향’을 낯간지럽게 모작한 이은상 작사의 <그리워>라는 건 대학을 졸업하고도 십 몇 년은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월북 문인의 작품에 대해 해금 조치가 이루어진 것은 1998년이다.) 어쨌거나 <망향>보다는 정지용의 시를 가사로 한 <고향>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인데 그것은 고향의 임을 향한 그리움을 한껏 표현한 <망향>보다는 일제 강점기 망국과 실향의 오갈 데 없는 텅 빈 마음을 간결한 언어로 담아낸 <고향>이 더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그러나 나는 군대 3년을 빼고는 고향을 제대로 떠나본 적이 없다. 미지의 땅을 향한 탐험심은커녕 보통의 여행조차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족속이다. 그래서 자신을 ‘고향주의자’로 포장한 적도 있는 것인데 사실 고향을 깡그리, 또한 오랜 세월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그리움에 대해 말할 자격이 별로 없다 할 것이다. 그건 정지용의 시 '고향'을 읽을 때도 확인하게 되는 진실이라 해야겠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 높푸르구나
그건 그렇고, 고향주의자에 책상물림인 나라고 어찌 보헤미안에의 꿈이 없었을까. 어쩌면 그렇기에 마음 속 떠남에의 열망은 더 뜨거울 지도 모른다.
고향 어귀의 느티나무에 불을 지르고 나는 떠났다.
시인 고은의 이 한 줄 시를 나는 내내 사랑했다. 보기 드문 길 위의 자유인으로서 그를 질투도 하고 경외도 했다. 온 세계를 주유해며 살았다 할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을 때도 그랬다.
나는 입 맞추고 떠나가는 뱃사람의 사랑이 좋다
항구마다 여인들은 기다리고…….
내생이 있다면 나는 그런 뱃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도 싶은 것을! 허나 이런 꿈이야 그저 꿈일 따름, 내가 고향주의자로 늙고 또 죽게 되리란 것을 나는 안다. 전쟁과 같은 불가항력의 재난에 떠밀려 나가지 않는 한 내 오랜 터전을 떠날 생각은 없는 것이다. 나도 몇몇 곳일지언정 고국 바깥을 안 돌아다닌 건 아니다. 내 주변만도 장장 800km라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다녀온 이가 있고(리 호이나키의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도 나는 읽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도 훌훌 떠나고 싶은 욕망이 슬그머니 솟구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나는 리 호이나키의 책 속에 구비구비 이어진 길을 ‘거룩한 바보’ 가족의 일원이기도 한 그를 벗 삼아 ‘순례’하는 쪽으로 금세 마음이 돌아서고 만다. 그의 책 속으로 무한히 뻗어 있는 길과 여정에서 오히려 어떤 ‘고향’을 보고 또 느낀다.
대저 고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진실로 어디에 있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들 중에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란 게 있다. 옛 대중가요의 제목이자 가사인데 곱씹노라면 작사자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고 그런 유행가 가사라고 치부하지 않고 보면 그것은 붓다의 말씀과도 통하는 한 마디이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이다. 고향이란 무엇인가와 관련해서도 몸에 좀 감겨오는 대중가요의 가사에는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가 있다. 이 노래는 그 제목이 ‘고향이 좋아’로서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은 ‘거짓말’이고 ‘상처를 달래려고 술이 취해하는 말’이라면서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고향이 좋다로 끝을 맺고 있긴 하다. 그렇다고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의 진실을 어느 누가 가벼이 여길 수 있으랴.
상당한 대중가요의 가사들이 폐부를 찌를 정도로 절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고 그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터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뭔가 감정의 찌꺼기 내지 그림자를 남긴다는 점에서 ‘2% 부족’한 무엇이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랑이 있듯이 고향의 참된 뜻도 전혀 다른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고향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타향인 로마에 와서 새삼 고향을 생각하는 까닭은 그저 물리적으로 먼 곳에 있는 고국이 그리워서만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입에 올리는 ‘지금’(now)의 진실 때문이다. ‘지금 여기’만 오롯할 뿐 다른 것들은 모두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소망으로서 실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불가에서는 시종일관 가르친다. '지금 그 마음이 본래 고향일 뿐 다른 어떤 것도 허상 '이라고. 타향이건 고향이건, 그것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다 마음의 일이요 마음 안의 일임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떠돌이도 고향주의자도 아니라는 것을 안개 걷히듯 깨닫게 된다. 어디로 떠난다 하더라도 도무지 떠날 수가 없는 본래의 고향에 거하고 있는 것 같은 평온함을 느낀다. 그럴 때면 나는 로마에 빗대어 한 마디 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