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주
5월 9일
아들이 다이어트 결심을 전한다.
다이어트를 위해 과자를 사서 쌓아두지 말자고 한다.
그동안 내 잔소리가 소귀에 경 읽기 같았는데
본인이 결심하니 반갑고 또 기쁘다.
과자를 사서 나르는 범인은 주로 나다.
입으로는 아들 다이어트를 외치면서
장을 보러 나갈 때마다 습관처럼 과자, 초콜릿을 잔뜻 사 온다.
마침 우리 집 간식 창고에 과자도 다 떨어졌으니
더 이상 사지만 않으면 된다 싶었다.
그리고 오늘 장 보러 가는 길,
더 이상 과자는 없다며 결심 또 결심을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내 손에 들린 장바구니
두 개 중 하나엔 과자가 가득하다.
감자칩, 고래밥, 마가렛트...
아들아!
이 정도 유혹은 이겨내야 다이어트에 성공한단다.
5월 10일. 화요일
홈트 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EBS 다큐, '어린 인권'.
어려서부터 아동학대를 당한 후 성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당한 아동학대의 내용도 너무 마음 아프지만
더욱 충격적인 건 가해자가 모두 부모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부모는 그냥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가정 밖에서는 알아채기 힘들었다고 한다.
솔직히 예전에는 매질, 욕설, 방임 등의 물리적, 정서적 학대도
그냥 부모의 훈육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성인이 되서까지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에
눈물 흘리며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보니 너무 마음이 힘들다.
결국 프로그램을 끝가지 못 보고 중간에 껐다.
그리고 자꾸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
부모로서 체벌도 하고 심한 말도 했던 나 자신이다.
슬쩍 아들에게 물어본다.
"아들 너는 엄마한테 아동 학대당했다고 느낀 적 없니? "
자다가 봉창 두드리냐는 듯한 아들의 뜨악한 표정만이 돌아온다.
그래도 조금은 두렵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가 한 모든 말과 행동이 아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을지...
5월 11일. 수요일
코로나 이후 경제위기가 오고 물가가 오를 거라고 한다.
전문가들의 예측이 아니어도 우리 집 밥상 물가는 계속 상승 중이다.
조류독감의 여파로 오른 계란값은 1년이 넘도록 내릴 줄 모르고
최근엔 더 올랐다.
오랜만에 먹어 본 짜장면 값도 작년보다 천 원 이상 오른 것 같고
간식으로 과자 한 봉지 가격도 부담스럽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가루 값, 식용유 값도 더 오를 거리고 한다.
심지어 치킨값 3만 원 시대가 올 거라는 말도 있다.
코로나로 안전을 생각해 집밥 삼시 세 끼를 했다면
이제는 오르는 물가에 강제 집밥 세끼를 해야 할 판이다.
슬슬 불안해지면서 드는 생각,
식용유, 밀가루 등등 가격이 오른다는 물건들
하다못해 라면이라도
미리 사서 좀 쟁여놔야 할까?
5월 12일. 목요일
자주 가는 대형마트에 다녀왔다.
집에서 가까워 걸어서 다니는 데 불법 주정차 차량을 자주 보게 된다.
넓은 주차장 두고 좁은 길가에 차를 세우는 것도 이해가 안 가지만
더 참을 수 없는 건 인도에 주차하는 얌체족들이다.
오로지 자신의 편의와 차의 안위만이 중요한 사람들일 거다.
오늘도 인도에 떡하니 세워진 차를 보았다.
눈곱만큼의 염치라도 있으면 그래도 인도에 걸쳐서 주차를 하는데
이 차는 인도 한가운데 떡 하니 가로로 서 있다.
순간 인도와 차도가 바뀌었나 눈을 의심했다.
인도 대신 차도로 내려걸으려니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그대로 사진을 찍어 불법 주정차 신고를 했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거, 작은 일에 분노하는 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지만
이번엔 작은 오지랖을 부렸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도와 차도는 구분하는 기본 중의 기본은 지켰으면 좋겠다.
아니 지켜야 한다.
그래야 운전대를 잡을 자격이 있다.
5월 13일. 금요일
나는 계획 세우기를 참 잘한다.
연간계획부터 분기별, 월별, 주간, 일간.
단위를 어떻게 나누어도 모든 계획을 거의 완벽하게 하고
그걸 또 엑셀로 일목요연하게 문서화한다.
그래서 새해가 시작하기 전에 계획부터 세운다.
올해도 어김없이 꽤나 완벽한 계획 하에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리부트, 리:리부트, 리:리:리부트를 반복했다.
지금은 내가 세운 계획 어딘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획만 고쳐 세우기 하다 여기까지 떠내려온 것 같다.
그렇게 어느새 5월, 이제 곧 한 해의 절반이 떠내려 가게 생겼다.
곧 6월이라니 정신이 번쩍 든다.
이번 주말 나는 이번 분기 계획을 다시 세우려고 한다.
이번에는 진짜 내 일상을 꼭 붙잡고 나갈 수 있는 계획을 말이다.
5월 14일. 토요일
한 달에 한 번씩 동네에 오는 푸드 트럭이 있다.
오징어와 새우튀김을 파는 트럭인데
항상 보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간다.
푸드트럭 튀김이 뭐 별거라고 저리들 야단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유난히 고소한 기름 냄새에 끌려
사 먹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카드는 사절, 현금만 받는단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왜 그리 오징어 튀김이 눈에 아른거리는지
생전 안 받던 현금 서비스까지 받아 만 원어치 오징어 튀김을 샀다.
역시 줄 서서 먹는 집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제는 한 달에 한번 튀김 트럭 오는 날을 달력에 표시해 놓고 달려 나간다.
오늘이 그날.
지난달 트럭 오는 날을 놓쳐 너무 아쉬웠던 마음에
새우튀김 한 봉지, 오징어 튀김 한 봉지.
역시 과유불급.
자려고 누웠는데 속이 울렁거린다.
소화제를 찾아보니 마침 딱 떨어지고 없다.
아무래도 옷 갈아입고 활명수 사러 나갔다 와야겠다.
5월 15일. 일요일
오늘은 일요일, 그냥 보통의 일요일이었다.
인터넷에 접속하러 구글을 열기 전까지는...
구글 로고는 특별한 날에는 디자인이 달라지는데 오늘 그랬다.
무슨 날인가 눌러보니
스승의 날이란다.
아...
5월 15일. 오늘이 스승의 날이구나.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방에 내려와 살고 학교에 갈 일도 없고
아이 스승의 날 챙길 일도 없어서 잊고 있었다.
아니 그전부터 스승의 날은
스승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 불편한 날이 되었다.
아이들 학교엔 학부모 출입 금지일이 되었고
사제지간이 만나기 꺼려지는 불편한 날이 되었다.
감사의 표시가 촌지와 뇌물로 변질되면서
스승의 날을 망쳐버렸다.
돌아보면 솔직히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많지만
그래도 연락이 닿는 선생님께 안부 메일이라도 한 통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