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무서운 사람들은 자신이 무섭다고 말하지 않는다.
4일간 일하면서 내가 본 농가주는, 연신 허허 웃다가도 바로 다음에 고함을 지르고 (남자들에게) 욕을 했고, 자신은 무서운 사람이며 공무원이나 군인들이나(그러니까 어린, 젊은 남자들은) 한 번씩 소리 지르고 맞아야 제대로 일을 한다고 말하고 또 말했다. 그 말에 웃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면 어색해서 또 소리를 지르고 공산주의와 흑인 노예제도와 나라에서 한다는 귀농귀촌 프로그램에 대해 썰을 풀었다. 지식을 가장한 왜곡된 정보와 허세가 끝나고 나면 또 허허허 웃다가, 또 알 수 없는 고함을 질렀다. 그런 모습에 20살, 21살 남학생들은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또 신이 나서 바로 허허허 웃으며 그 남학생들에게 오늘 일한 걸 보면 원래 돈을 안 줘야 하는데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 돈을 주는 거라고 말했다. 단 하루만 일하러 온, 아직 만으로 10대인 그 남학생들은 허리를 숙이며 두 손으로 돈을 받았다.
농가주는 사람들이 자신을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이 성질이 좀 더러울 수는 있으나 원칙선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고. 그러나 이미 여러 가지 면에서 - 실질적 밭을 운영 감독하는 모습과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앞뒤가 조금씩 틀어지는 말들, 이 지역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본인은 원래 여기 토박이가 아니라 대전에 산다고 했는데, 그 말도 진짜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컨츄리 룰 운운하며 계속되는 음주운전과 교통 위반 등등 - 자신의 신뢰도와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아무리 사줄 필요 없는 저녁을 사주는 ‘착한 농가주’라고 하더라도 매 순간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불평불만에 폭언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하다. 아마 인정이 고파서 성격이 그리 된 거겠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걸 봐줄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3일째 되는 날 아침,
오전 6시 53분에 차 안에 들어서자마자 늦었다고 소리 지르는 농가주의 반응에 놀라지 않았다.
네? 아까 분명히 6시 50분에서 7시 사이에 나오라고 하셔서 50분에 나온 건데요,라고 했더니 자기는 그런 말 한적 없단다. 그러더니 곧바로 차 안에 앉아 있었던 19살, 올해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남학생 2명을 소개해주면서 내가 얘네들보다 “나이가 2배나 많은 아줌마니 잘 알려줘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허허허 웃었다. 날이 또렷하게 느껴지는 그 말에 남학생들도 나도 웃지 않았다. 그러자 농가주는 차가 계속 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뒤를 돌아 뒷좌석에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알았죠? 000 씨가 얘네 산 거 2배로 산 아줌마니까 그 나이만큼 잘 알려주라고요”라고 한번 더 말했다. 나는 똑바로 농가주를 쳐다보았다. 운전 중이라 농가주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 예상했던 일이다.
감자밭은 어제 오후에 일했던 곳과 같은 곳이었다.
아직 담을 감자들이 많았다.
오늘 감자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 (농협 중개로 온) 남자, (여기 현지 분이자 정신지체 2급이라는) 어머니, (역시 농협 중개로 온) 커플, 그리고 오늘 아침 차를 같이 탔었던 만 19살 남학생 2명, 이렇게 총 7명이었다. 어제 경찰을 부르고도 이 커플은 약속한 3일을 일하겠다고 했고, 농가주는 이 커플을 “뺑이 치게 만들겠다”라고 우리 앞에서 선전포고를 했지만 커플 앞에서는 대인배처럼 보이고 싶었던 건지 뭔지, 아니면 일할 사람이 정말 절실히 필요했던 건지 경찰이 와서 1시간 이상 그 난리를 쳤는데도 약속한 3일을 나오겠다는 그 커플에게 그러라고 했다. 경찰이 오고 나자 커플 중 남자에게는 ‘사장님’이라고 불렀고, 여자는 ‘어이’라고 불렀다. 나와 다른 남자에게는 ‘000 씨'라고 정확하게 이름을 불렀다.
날씨가 어제보다 더웠다. 불길했다. 또 첫째 날처럼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마라톤 뛰듯 턱턱 막혀왔다. 그늘은 없다. 그늘막도 없다. 어제의 물똥과 설사가 반복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다.
약간의 쉬는 시간.
또 탈수를 일으키는 편의점 커피와 편의점 얼음컵, 그리고 2리터짜리 얼음물이 나왔다. 어머님은 드디어 커피를 못 드시기 시작했다. 농가주를 쳐다보며 무서워하는 어머님을 대신해 내가 몰래 커피를 버려드렸다. 그리고 물을 따라드렸다. 이 날씨는 커피가 적합하지 않다. 폭염이 떴다는 남자의 말에 농가주는 아니라고 했다. 30도 넘었지만 폭염은 아니라고. 그런데 뉴스에서는 분명 폭염이라고 떴다. 그랬더니 폭염경고가 아니라 폭염주의라 괜찮다고 했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기 전, 입구 옆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세면대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손을 씻고 얼굴을 닦았다. 내가 씻으려는데 옆에 농가주와 만 19살인 남학생 두 명이 다가왔다. 나는 농가주에게 먼저 씻으라고 했다. 농가주는 나보고 먼저 씻으라고 했다. 내가 웃으며 “보스 먼저”,라고 했더니 따라 웃으면서 손을 씻었다. 뒤에 있던 남학생이 너무 덥다 탈 것 같다 숨 막힌다 여기는 에어컨이 있겠죠? 라며 재잘재잘 귀엽게 이야기하길래 내가 나한테 선크림 있으니까 있다가 밥 먹고 주겠다고 했다. 남학생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고맙다고 했다. 여자 친구도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있으면 피부가 완전히 탈 것 같다면서. 예뻤다. 내 19살은 어땠지? 내 20살은? 내 21살은? 내가 기억하는 20대의 나는 늘 땅을 보고 걷고 있었다.... 나도 그때는 이렇게 예뻤을까?
선크림 소리를 들은 농가주는 손과 얼굴을 다 씻고 나자
“아줌마야. 아줌마가 선크림 주는 거야. 아줌마라고 해.”라고 했다.
어어, 어느 쪽도 선택 못하며 당황해하는 남학생이 귀여웠다.
그래서 말했다.
“내가 아줌마면 사장님은 할아버지다. 알겠지? 누나라고 불러.”
남학생이 웃었다.
“000 씨가 얘네보다 2배 더 살았다니까? 아줌마라니까?”
“네 그러니까 내가 아줌마면 사장님은 할아버지. 내가 이 나이에 아줌마면 사장님은 당연히 할아버지지. 알았지? 나 아줌마라고 부르면 사장님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라고 불러."
남학생이 씩씩하게 "네!"라고 외쳤다.
우리 둘은 웃었다.
농가주는 결국 나를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