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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씨 Feb 28. 2022

입술-9.2

아홉째 날, 7월 15일 일요일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 눈을 단지 감았다 떴을 뿐인데, 시간은 벌써 오후 16시를 가리키고 있다. 몸은 너 무나 개운하다. 온몸의 뻐근함은 사라졌고, 눈은 총명해졌다. 다만, 허기가 지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고, 마시지도 못했다. 냉장고를 열어, 콜라를 꺼내 마시며 허기를 달랜다. 오늘 저녁 역시, 일해야 하기에 공복 상태가 좋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공복은 때려 죽여야 하는 에너지의 부족과 입술을 잘라야하는 집중의 부족을 일으킨다. 찬장에 남아있는 감자칩을 꺼내먹는다. 감자칩과 콜라는 허기진 영혼을 달래준다. 감자칩을 먹으며 오늘 저녁 나갈 곳을 고른다. 부유한 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여기엔 큰 위 험이따른다. 분명히, 이 지역에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고, 보안 역시 좋아질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보안이 뛰어나더라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모색해야 한다. 혹은, 보안이 있더라도 들 키지 않을 변장(모자를 쓰는 등)을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구글 지도를 켜고, 장소를 검색해 본다. 콩코드 쪽은 부자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지만, 인파가 너무 많기에 위험하다. 4구 역시 마찬가지. 16구가 좋을 것 같다. 16구는 조용한 편이고, 거기에 사는 대부분은 부자들일 확률이 높다. 오늘 밤은 16 구로 가기로 했다.


자리를 정리한 후, 옷을 갈아입는다. 깨끗하게 닦아 놓은 메스와 유리병, 망치 그리고 새로운 장갑을 꺼 내어 가 방안에 넣어둔다. 가방을 메고 문밖을 나선다. 오후 18시, 아직 태양은 자신의 빛을 발산하며나 를바라본다. 여름의 태양은 잠을 잘 줄 모른다. 성난 황소와 같은 아폴론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영원히 지구의 표면을 달군다.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숭배하고 아름답다 느낀다. 그의 따뜻함 혹은 뜨거움 을 느끼며 마지막 입술을 찾으러 간다.


16구를 향하는 길까지는, 지하철로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주말 지하철이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나도 붐 빈다. 역겨운 냄새들과 개성있지 못한 유행에 휩쓸린 차림새들은 이곳이 정말 파리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나는 그들을 경멸한다. 저들은 알맹이가 없는 악취를 내뿜는 시체와 같다. 본질은 없고 그저 떠돌아다니는 기표들과 마찬가지다. 인류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나쁜 영향 들은 제거하는 편이 맞다. 다만, 나는 너무 선한 사람이고 윤리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한 명의 구원자로, 그들을 제거하는 편이 아닌 구해내고 계몽시킬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상쾌한 공기를 들여 마신다. 16구는 파리의 부유한 동네의 인상을 확 안겨 준다.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과 조용한 동네의 분위기. 그리고 내가 이곳에 도착하였다. 한발 한발 나서며 동네를 둘 러본다. 다행히 골목은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아마 저런 곳에 끌고 가 입술을 도려내면 되지 않을까싶 다. 이곳은 정말 아름답다. 과거가 잘 보존되어있고, 이 과거는 미래까지 전승될 것이다. 과거 속에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고, 여기에 사는 특권층들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물론 이곳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이사 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계속 살아가는 것 일 것이다. 재산은 상속되고, 인간은 불평등하다. 불평등 속,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평등은 아름다움이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개발시키고 이를 궁극의 잣대로 지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것이 쾌락과 아름다움의 전야제이며, 나의 전야제는 모든 이들을 춤과 연극으로 해방할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오직 하나의 입술만이 필요하다. 한 명을 찾아야만 한다. 오늘 저녁, 이 거리에서, 역사가 전승되는 이 곳에서, 마지막 입술을 찾아 연극의 화면 구성을 완성해야만 한다. 종종 여러 명이 지나가지만, 대부분은 나이가 많은 노인들뿐이다. 그들의 입술은, 인간의 특성상, 너무나 못생겼다. 그들이 젊었을 때의 입술은 아름다웠을지언정, 지금은 너무나 많은 주름이 생기고 음량이 꺼져 사용하지 못하여 썩어버린 머랭과 같다. 이들이 상류층이며, 아름다움을 관리로 이어오는 사람들이지만, 결국, 시간 앞에서 그들의 특권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들의 분위기는 우아하고 고품격의 자태가 느껴진다. 그들의 젊음은 당연히 아름다 웠을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그저 흔적만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다. 그들의 덧없는 아름다움에 조의를 표한다. 그렇게 내 생각이 조금씩 틀려가고 있음을 인지하던 중,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지나간다. 느낄 수 없는 분위기의 인간이다.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느껴진다. 세월을 간직한 우아함과 고 상함.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분위기와 여유,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그녀의 향기는 차원이 달랐다.

온몸이 경직 되고 더 강한 힘에 무릎을 꿇은 느낌이 들었다. 강력한 고차원의 다른 힘이 덮쳐 오기에 저항할 수도 없었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순간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연이 아 닌 인간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그녀의 입술은 솜사탕과 같은 달콤한 부드러운 분홍색을 내뿜고 있으며,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은 잔잔한 호수와 같았으며 입술의 음량은 심장과 같았다. 아름다움의 존재가 자본을 통해 관리를 받으면 이런 식으로 아름다움의 영생을 지속할 수 있다는 무서움이 몸을 지배했다. 약간의 분노도 함께 일어난 것 같다. 그녀의 입술이 너무나 갖고 싶다. 당장 저 여자의 입술을 잘라 가져 가야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여자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앞선 나의 질문은 대답을 찾았다. 그럼 이제, 마지막 입술을 자를 차례가 왔다.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저 도도한 발걸음을 보라. 지금 당장 머리를 내려쳐 버리고 싶지만, 조금만 더 지켜본다. 아직은 보는 눈들이 너무 많다. 저 노인들이 이 광경을 본다고 무엇 을할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신중하게 움직인다. 그녀가 거대한 문 앞에멈추 고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그녀가 문안으로 들어간다,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들어간다. 그리고 그녀가 뒤를 도는 순간, 마지막으로 잡게될망치를강하게 잡고 일격을 내려친다. 아레스가 되어 그녀 의 머리를 강하게 온 힘을다해 터져나오는 실소와 함께 내려친다. 행복하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바 보처럼 실실 웃는다, 연속된 웃음은 이곳을 뒤덮는다, 하하하 기쁘고 황홀하다, 계속해서 내려친다, 여러 번 내려친다, 두 번, 세 번, 네 번 두개골이 납작해질 때까지 망치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피만 흘릴 줄 아는 병신이다.


그녀를 뒤엎는다, 아름다운 입술에 먼지와 모래들이 가득하다. 너무나 가엾은 입술들에 연민을 느끼고 빠르게 입술을 손가락으로 정성스럽게 쓸어 만져 준다. 메스를 꺼내고 장갑을 낀다. 그녀의 입술을 자르 기 전, 입맞춤한다. 그녀의 냄새와 온기가 가득 담긴 입술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약간은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그녀의 옆에 무릎 꿇고, 입술을 메스로 조심스럽게 오려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생체의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 같다. 그동안은 젊은이들의 몸이라 쫄깃하고 촉촉한 느낌의 피부가 느껴졌었는데, 이 여 자의 피부는 축 늘어지고 사막과 같이 건조하다, 살결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정말 볼품없다. 그저 겉으로 만 보이는 모습이었다라고 느껴지기 시작하며 측은해진다. 그녀의 입술을 위아래로 깔끔하게 도려낸 후, 유리병에 담는다. 도구를 정리하고 문을 열며 작열하는 태양 아래 집으로 향한다.


오후 22시, 집에 도착하였다. 손을 씻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방에 들어온다. 옷을 버린다. 이제 더는 이런 누더기와 같은 옷은 입을 필요가 없다. 옷을 버리고 망치까지 버린다. 메스만큼은 또 사용해야 하니, 콜라로 잘 닦아놓는다. 유리병 안에 담겨있는 아름다운 입술을 꺼낸다. 방부처리제를 꺼내어 입술 위에 바른다. 전시한다. 너무나 간단한 공정이다. 다만 이 간단한 공정을 위해 수많은 노력이 있었고, 그동안 이 힘든 일을 나 혼자 스스로 이루어냈다. 드디어 이 모든 일이 끝났다는 생각에,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 다.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는 악마와 같이, 방안을 누빈다. 해방의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모든 것 은 역전될 것이고, 그동안의 모든 가치는 깔끔하게 사라지고 해체가 되어 새로운 가치가 도래할 것임을 선포한 다. 이 모든 건 신들의 뜻이며 동시에 나의 꿈이다. 나는 이상주의자이며 동시에 인간으로, 이상을 좇고 이뤄내 길원 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나는 이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 이제 남은 2일의 밤을 기다리기만 하 면된다. 샤워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내일은 회사에 갈 시간이 없다. 어차피, 더는 가지 않아도 된다. 아무 런 말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보내는 일은 너무나 귀찮으니 말이다. 대신 내일 하 루는 바쁘다, 미용실을 가서 머리를 정리하고 화장을 받으며 옷도 사 야하고 마사지도 받을 것이다. 여러모로 바쁜 하루가 될 것임이 틀리 없다. 샤워하며, 그동안 고생한 나를 꽉 끌어안는 다. 나 자신을 사랑한 다. 데오도란트를 뿌리고 향수를 뿌린 후 침대에 눕는다. 앞으로 벌어질 2일간이 너무나 기대되어 쉽게 잠조차 오지 않는다. 오른쪽 눈썹을 중지로 쓰다듬으며 망상의 날개를 펼친다. 이카루스가 되어 날아간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의 날개는 왁스로 고정되어있지 않아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혁명의 밤이 신호탄을 터트렸다. 곧 모든 것이 시작된다. 오직 단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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