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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씨 Mar 02. 2022

입술-10

열째 날, 7월 16일 월요일


열째 날, 7월 16일 월요일


오전 10시, 긴 잠에서 깨어난다. 부드러운 햇살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알람이 없이 일어나는 평일의 아 침은 해방감을 느끼게 해 준다. 휴대전화기 속, 직장 동료로부터 몇 통의 전화와 문자가 와있다. 이제는 아무 필요 없는 인간관계들이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관계들을 정리할 시간이 왔다. 그동안, 영겁의 시간 동안, 이 순간만을 위해 인내하며 기다렸다. 해방되지 못한 그들에게 측은함 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얻어줄 해방감을 생각하니, 그런 마음은 다시 재빠르게 사라졌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양치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공기의 질감, 온도의 무게, 머리의 모양새, 코의 볼륨, 입술의 위치, 눈의 선명함 등 모든 것 은 완벽하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후, 나가기 전 먹을 빵을 산다. 집 밖으로 나왔을 때, 사람들은 한 주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으며, 매우 바쁘게 걸어 다녔다. 이들에게는, 도무지 여유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걸음걸이에는 쇠사슬이 묶여 있었고 목에는 목줄이 걸려 목줄 이 위 치한 곳으로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들이 너무나 비참해보였고, 절망스러웠다. 참혹한 시신들이 걸어 다니는 이 거리를 치유해줄, 구원할 인도자는 오직 나뿐이며, 내일 이들 모두를 구원하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겁다. 모든 것은 완벽하지만, 발걸 음만은 무겁다. 이는 아마, 이 세상 존재들의 간절함일 것이다. 그들은 내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올림푸스의 신이 되는 것을 반대하며 그저 그들의 곁에 머물며 영원히 반복되는, 토악질이 나오는 삶을 같이 느껴주고 공감하길 원하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초인이 되기를 꿈꿨지만, 이를 포기하고 신의 길을 선택한 나는, 그들을 거부하고 계단을 올라간다. 다만, 내가 신이 된다 한들, 그들을 버리는 행위가 아님을 명시한다. 내가 신이 됨으로써, 그들에게 해방을 선물하며, 만인의 평등을 아름다움의 이름 아래 선포한다.


빵집에 들러, 안녕을 외치며 빵오 쇼콜라 한 개를 주문한다. 그들에게 감사함을 이야기하고 마지막 방문을 마무리 짓는다. 그 후, 마트로 향한다. 마트로 걸어가는 길, 아폴론은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가 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침묵만을 유지한 채, 그의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도 잠시 멈춰서, 그의 눈을 바라본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지 는않았다. 잠시 후, 그는 자기 하프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하프의 선율은 나를 감싸안는다. 귓가를 간지 럼 태우고 피부를 핥아 댄다. 따뜻한 하프의 연주는 오늘의 오전을 아름답게 빛나게 해 주었다. 지상에서 의 마지막 발걸음에 어울리는, 웅장한 음악임을 기억한다. 마트에 도착하니, 가디엉은 오늘도 웃으며 나를 반긴다. 그에게 똑같은 미소를 지어주며 안녕을 말한다. 제로 콜라를 사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 손을 씻고 빵을 선반에 올려놓는다. 옷을 갈아입고, 빵과 제로 콜라를 먹기 시작한다. 휴대 전화기를 켜 기사를 확인해 본다. 정말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그동안 내가 희생시켰던 11명의 흔적을 모두가 찾아내었다. 박수가 절로 나왔다.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윤리의식에 따른 공권력의 움직임에 기분이 좋아졌다. 기사의 내용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를 것 같아, 이쯤 하고 빵을 먹으며 오늘의 약속들을 확인해 본다. 오후 14시 미용실을 갈 예정이며 16시에는 마사지 예약이 있으며 18시에는 옷 판매장의 방문 예약을 해놨고 오후 19시에는 레스토랑 예약을 해놨다. 이제 오늘의 계획대로 몸을 움직 이기만 하면 된다. 오늘 나의 하루는 상당히 수동적일 것이다. 그저 서비스를 받기만 하면 될 뿐이니, 자주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 오늘은, 이동할 때마다 우버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다. 오늘 나는 더는, 나라는 존재로서 존재하면 안 된다. 내 존재 자체를 극진하게 모셔야 한다. 나는 지금 올림포스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별자리가 되어 12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환영하고, 나 역시 그 들의 소속이 되고 싶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오후 13시, 나갈 준비를 한다. 미용실 약속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향수를 뿌리며, 간단한 화장을 하고 외 출 준비를 마친다. 소파에 앉아, 오버를 부른다. 우버가 도착했다는 문자와 함께, 집을 나선다.
오후 14시, 미용실에 도착한다. 아이보리색의 염색과 머리카락의 모양새 정리를 부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아름다움을 주문한다. 그들은 오늘 약속이 존재하느냐고 물어본다. 곧 파티가 벌어질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부러워한다.

오후 15시 30분, 머리를 마친 후, 우버를 불러 마사지를 받으러 출발한다.

오후 16시, 마사지를 시작한다. 온몸의 더러움을 제거하며, 천상으로 올라갈 새로운 몸을 만든다.
오후 17시 30분, 우버를 부르고 매장이 있는 콩코드로 향한다.
오후 18시, 매장에 들러 주문했던 옷들을 입어본다. 나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당장 갈아입고 입고 왔던 옷은 버려달라고 부탁한다.
오후 18시 30분, 매장에서 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우버를 기다린다. 우버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뜬 후, 안녕을 전하고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오후 19시, 레스토랑에 도착하여 코스 메뉴를 시작한다. 조금씩 입을 벌려, 음식들의 맛을 느낀다. 그들이 주장하는 맛들을 천천히 느끼며 그들의 조화를 입안에서 이뤄낸다. 지상에서 즐기는 마지막 완벽한 만 찬임이 틀림없다. 식사와 함께, 황금빛 올리브색의 백포도주를 함께 음미한다. 황홀경을 느끼며 이 시간을 즐겨본다.
오후 21시, 바에 들러, 마지막이 될 위스키를 마신다. 위스키를 마시며, 그동안의 일들을 시간순으로 나 열하고 정리한다.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차질 없이 잘 해냈고,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조금은 취해 본다.
오후 23시, 우버를 불러 집으로 향한다.
오후 23시 45분, 집에 도착한다.


손을 씻고, 거울을 바라본다. 완벽하다. 지금 현재의 나는 정말 완벽하다. 인간의 초월한 존재가 되었다. 아름다움의 이름 아래, 아프로디테와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곧 그녀의 곁에, 그녀 의 허벅다리에 누워 그녀가 주는 달콤한 포도를 받아먹는다. 입술들을 바라본다. 한밤중인 와중에도, 그 들은 달빛보다 더욱더 찬란하게 방 안을 밝히고 있다. 그들은 하나의 모습으로 뒤섞여 공간을 폭발시킨 다.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 하지만, 기다려라. 곧 내가 너희를 해방할 테니. 너희와 나를 통해, 신들을 웃음꽃 피우게 하며, 노예가 된 민중들을 해방할 것이니. 기다려라. 순간의 찬란한 빛들이 나를 뒤덮는다. 빛들은 꽃을 피워내 주위를 계속해서 맴돈다. 만물이 가지는 태초의 순수함과 같은 백색의 천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며, 저 천을 잡는다면 곧 올라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12시가 되었다. 알람이 울린다. 전야제가 시작되었다. 디오니소스의 광란 밤이 시작되었다. 나의 생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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