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하얗게 뒤덮인 세상은 마치 자연이 설계한 한 편의 캔버스 같다. 그러나 이 낭만도 잠시, 집 앞에 쌓인 눈더미를 보며 우리는 중대한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바로, '눈치우기'라는 생존 게임의 시작이다. 눈치우기의 첫 번째 전략은 선점의 법칙이다. 이른 아침 일찍 삽을 들고 나온 이웃은 마치 신속히 국경을 확장한 강대국처럼 가장 좋은 위치를 선점한다. 이웃의 집 앞까지도 살짝 치워주는 넉넉한 척하며, 사실상 '여기 내 구역이야'라고 표시하는 것이다. 반대로, 늦잠을 잔 나는 이미 삽질 중인 옆집 아저씨를 보며 "먼저 치웠으니 당신 구역은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낀다.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기득권의 강화'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연합의 필요성이다. 눈은 내리는 데 비해 치우는 속도가 더디다. 혼자 삽질을 하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몸은 자연스럽게 다른 이웃을 바라보게 된다. "같이 하시죠?"라는 한마디는 NATO의 집단방위조약을 떠올리게 한다. 함께 삽을 드는 순간, 우리는 동맹국이 된다. 공동의 적, 즉 눈더미를 향해 총력전을 벌이며 서로의 힘을 합친다. 하지만 여기서도 지정학적 복선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 느릿느릿 삽질하는 동맹은 마치 방위비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동맹국처럼 조금 얄미워 보인다.
내부 문제 해결 전략도 눈치우기에서 중요하다. 나는 가끔 눈을 대충 치우고 "어차피 내일 또 쌓일 텐데"라는 현실론을 펼친다. 이는 자원의 효율적 분배라는 미명 아래 복잡한 문제를 잠시 미뤄두는 모습이다. 그러나 다음 날 다시 쌓인 눈더미를 마주하면, 이런 미봉책은 한 국가의 재정위기처럼 나를 덮쳐온다. 결국, 잘못된 정책 결정은 나에게 두 배의 삽질을 요구한다.
눈치우기 과정에서 특히 재미있는 점은 모호한 경계선 관리다. 내 집과 이웃집의 경계선을 지나치게 깔끔하게 치우는 것은 지나치게 민감한 영토 분쟁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대충 치우면 '외교적 결례'가 될 수도 있다. 한 삽의 눈이라도 더 치워 이웃의 구역을 조금 포함시켜 주는 것은 마치 국제 원조처럼 훈훈한 이미지를 남긴다. 그러나 이 역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내가 먼저 호의를 베풀었으니, 다음엔 당신이 나를 도와달라는 암묵적 메시지다.
결국, 폭설 속 눈치우기는 단순한 일상이 아니다. 이는 국가 간의 협력과 갈등, 전략과 계산을 축소판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지정학적 연습이다. 물론, 이 모든 분석은 눈치우기가 끝난 뒤 몸살에 걸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다음번 삽질도 조금 더 즐겁게 느껴질지 모른다. 폭설은 골칫거리가 아니라, 집 앞에서 펼쳐지는 작은 세계 정치다. 그러니, 오늘 아침 눈을 치우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전략으로 이 폭설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