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는 어떤 성향인가? : 외향형/내향형
외향형과 내향형의 사회성
어렸을 때 해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반편성 결과를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기껏 친해놓은 친구들과 반이 갈리고 온통 낯선 아이들에 둘러싸이는 건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었다. 하루이틀 만에 쿵짝 맞는 친구들이 생겨서 몰려다니기 시작하는 다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러다 나 혼자 남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 더 초조해졌다.
내향형은 나이가 많고 사회경험이 많아도, 낯선 곳에 가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뻘쭘하게 있는 상황이 되면 여전히 진땀이 난다. 그러나 내향형이 낯선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는 일에 서툴고 힘들어하는 것이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보통 낯가리고 수줍어하는 내향형 젊은이들에게 외향형 어른들은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서 어떻게 하냐”라고 하지만 내향형들은 자신감이 없어서 쩔쩔매는 것이 아니다. 외향형처럼 하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기가 ‘싫어서’ 난처한 거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시선을 한몸에 받는 외향형들을 보면서 감탄스러워하기는 하지만, 내향형은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또래 중에 누군가가 그렇게 해줘서 시선이 자기한테까지 오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향형이 스트레스 받는 것은 자기도 외향형처럼 하고 싶은데 못 해서가 아니라, 외향형처럼 하지 못하면 뭔가 못난 것 같아 보이는 분위기, 외향형처럼 해야만 성격 좋다고, 요즘 세대답다고 여기면서 외향형처럼 하라고 압박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이런 압력만 아니라면 내향형은 절대 외향형의 행동이 부럽지 않다.
사람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떤 사람과 친해질지 말지’ ‘어디까지 친해질지’를 신중하게 가리는 것일 수도 있다. 내향형은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다 상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원활히 상호작용할 수 있는 친숙한 사람들하고만 상호작용을 하려고 든다. 가족, 친구, 그리고 선후배나 동료 중에서도 정말로 믿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몇몇 사람… 그리고 웬만하면 멤버 교체 없이 그 관계를 오래 가져가려고 한다.
반면에, 외향형은 어딜 가나 쉽게 사람과 친해지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많고 인간관계의 폭이 넓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 모두와 깊이 있는 관계를 가지기는 어렵다. 외향형은 두루두루 많은 사람과 폭넓은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하지, 그중 어느 한 사람과 폐쇄적인 관계로 묶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너무 깊숙이 들어오거나 지나치게 붙어 있으려고 하면 좀 꺼리는 경향이 있다. 느슨한 인맥을 넓게 유지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빠른 시간 안에 친해질 수 있는 외향형의 특성은 사회생활에서의 분명한 장점이다.
흔히, 낯가림이 심하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갖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내향형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두 달 겪어보고 끝날 인간관계가 아니라면,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직종이라면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자기를 개방하는 것이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다.
조직 내 인간관계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친화력의 문제가 아니라, 주도권 싸움에서의 문제일 때가 더 많다.
내향형은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열망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자기 몫의 일 외에는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부탁하거나 추대하지도 않았는데 내향형이 자기 스스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내향형은 자기 외의 다른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는 것에 대해 경쟁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뒤에 물러서서 관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편안해한다.
내향형이 뒤로 물러서는 것은 관망하면서 나를 지키겠다는 것이지 ‘너의 추종자’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도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지 ‘너의 주도에 따르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향형은 기본적으로 외부세계에 간여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남을 지배하려고도 안 하지만, 또 외부로부터 자기를 지키려고 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남이 자기를 지배하도록 하지도 않는다.
서열에 민감한 권위주의 사회에서 내향형은 이런 특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꽤 있다. 내향형은 ‘내가 남을 공격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경쟁과 서열, 패거리 중심인 조직은 ‘내가 지배하지 않으면 남이 나를 지배한다’는 법칙으로 돌아간다. 그런 곳에서는, 지배할 위치를 획득하지도 않으면서 지배당하지 않겠다고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면 공격 좌표가 되기 쉽다. (이것이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몸담고 있는 곳이 만약 권위적인 조직이라면, 조직 내 서열 경쟁에서든 구성원 개인과의 일대일 관계에서든, 주도권 싸움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 그리고 상대를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표명하는 것이 반드시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부당한 지배력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뒤에서 관망할 수 있는 내 위치’를 확보하고 지키는 것 역시 주도권 싸움이다.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