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강아지, 알아가며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강아지를 입양하고 나서
살랑이를 가족으로 맞아들인 지 7년, 참 많은 것이 변했다. 단순히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게 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내 삶에 들어온 반려견 살랑이가 있고, 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고 되어가고 있다.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첫째 아무 고민이나 생각도 없이 펫 샵에서 물건을 사듯이 데려온 반려견이었지만, 강아지를 키우자 그전에 알지 못했던 여러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건처럼 취급되는 강아지와 그 강아지를 생산하기 위해 희생되는 모견들, 그 강아지들을 유통하는 산업과 입양되었지만 아프거나 나이가 들면 버림받는 유기견들
(물건처럼 샀으니 물건처럼 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반려견을 입양하여 사랑으로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다시 강아지를 키울 경우 펫 샵에서 사 오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은 모든 생활을 보호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른 하나의 생명과 같이 살아가고 이해하면서 나와 다른 한 생명이라는 존재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랑이를 키우고 돌보고 아픔을 같이하면서 강아지라는 존재가 단순히 내 외로움을 달랠 필요에 의해 있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보게 되었다.
강아지도 감정이 있다. 기분이 나쁠 때, 화를 내기도 한다. 또, 강아지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 자체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내 앞으로 끼어든 트럭에는 수십 마리의 돼지가 실려있었다.
사실 이런 운반차량을 처음 본 건 아니다.
근데 왜 그날 그 돼지의 눈망울이 보인 것일까? 그리고 왜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일까?
그날 이후 돼지고기를 잘 먹지 못한다.
그 후, 가급적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려 하고 비건에 대한 관심과 고민도 갖게 되었다.
개고기에 대한 논쟁처럼 이런 류의 논쟁은 항상 있어왔던 주제이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내가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을 바꾸고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시작에는 반려견 살랑이의 존재가 있다.
지금 7살인 살랑이, 사람의 나이로는 중년이다. 이제 기쁨보다는 같이 겪어야 할 아픔이 더 많을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다.
나와 살랑이 아직 서로 알아가며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