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날 들었던 충격적인 채무에...(이미 그전에도 빚이 꽤 있었다) 근무 시간인데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직장인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눈물을 참고, 하늘을 봤다. 3월 말인데도 아침 공기는 겨울처럼 차가웠다.
사고 친 곰은 평소처럼 일찍 집에 들어왔다. 주차를 하고는 집 밖에서 몇 시간을 떠돌다가 밤 열 시쯤 들어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대에서 폰을 보고는 잠들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나에게도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말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잘못은 저 사람이 했는데 속이 타들어가는 건 나 혼자만의 몫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나는 돈의 행방을 '남편의 어머니'로 특정했다. 소비도 거의 없고, 생활비도 갖고 오지 않는 준백수 아저씨였다. 그런 곰이 그런 큰돈을 썼다면 일 년 전 재산의 90%를 날린 사람, 즉 남편의 어머니에게로 갔을 거라고 예상되었다.
그리고 오후 전화를 걸었다.
작년 집 앞까지 찾아와 행패를 벌이려던 김여사 님이었다. 행패를 부리려던 이유는 '목소리 톤이 높다'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싸우자고 찾아온 김여사였다. 한 마디로 아파트 두 채를 날린 범인은 못 잡고, 가까이에 있는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못난 김여사를 일 년간 만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김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곰씨가 이천만 원 채무가 있다는 데 아세요? 혹시 이천만 원을 어머님이 쓰셨나요?"
평소 집요하고 사악한 김여사가 웃었다. 웃으면서 아니라고 하면서도 엉뚱한 소리를 한참을 늘어놓았다. 김여사 성격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들의 불행에 관심도 없고, 마지막은 조카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자꾸 딴소리로 대화를 전환하려고 시도했다.
정말 돈의 행방을 김여사는 모를까?
목소리 톤 하나로도 집 앞으로 쫓아오는 크레이지 한 심성의 할머니가 웃고 떠들 수 있는 주제가 아닌데... 지나치게 밝고 태연했다. 내가 우는 목소리를 낼수록 더 웃었다.
나의 불행이 김여사의 행복인 걸까? 아니면 그 통장의 돈이 김여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걸까?
결국 풀지 못한 숙제를 뒤로 한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