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할머님
수영장에서 매일 만난 할머님
하루하루를 규칙적으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일 년 동안 같은 수영장에 출석하다 보면 그 어려운 걸 매번 이루어 내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가끔은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며 인사하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수영장 수영은 타인과 함께 공동체의 희열을 느끼기보다는, 홀로 물속에서 시간을 온전하게 보내야 얻는 짜릿함과 피로회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수영의 성격을 파악한 사람들은 서로 말을 섣불리 건네지 않는다. 또, 그 소중한 시간을 혹여나 방해될까는 작은 걱정과 함께 지금까지도 조심하고 있는 나만의 수영장 에티켓이기도 하다.
하나의 레인만 사이에 끼고, 바로 옆에서 물속의 시간을 보내던 나와 늘 인자하신 할머님도 처음엔 그러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오후 한 시에 수영장에 출석할 때마다, 항상 뵙는 인상 좋은 할머님이 계셨다. 할머님도 조심스러우셨는지, 가까이 있지만 둘 사이에 있는 레인처럼 서로의 선을 지켜주신 거 같았다. 서로를 가장 가까이서, 바라만 보다가 한두 달을 흘려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트였다. 서로의 마음의 문에 살포시 두드리기 전까지는 늘 눈웃음과 함께 인사를 나누곤 하였다. 그때부터 할머님께 정을 서서히 붙여가고 있었다. 할머님의 웃는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이는 어느새 정을 붙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샤워실에서 준비를 하면서, 내적으로 ‘오늘도 할머님 오시겠지?’라는 기대감을 품고, 수영장에 들어선다. 그날도 평범하게 속으로 기대하며 수영장에 들어섰는데, 할머님께서 먼저 웃으시며 자세가 참 예쁘다는 칭찬을 해주셨다. 이후로 서로의 칭찬이 오고 갔다. 점차 둘의 간격이 줄어들고 있었다.
할머님은 멀리서 보아도, 저절로 존경심을 품게 하는 모습을 지니고 계신다.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는 ‘할머님의 한결같은 미소’이다. 처음 보는 사이였음에도, 한 번도 대화를 나누어 보지 않은 스쳐 지나가는 사이였음에도, 한결같이 기분 좋은 미소를 보여주셨다. 활짝 웃는 상을 가지기 더욱 힘든 요즘이라, 아마 더 크게 와닿았다. 서울 지하철만 타보아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현대인들의 얼굴은 나뭇가지로 눈을 가로로 찍 선 하나 긋고, 입술 하나 옆으로 찍 그은 무미건조한 무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마스크를 한 탓에 한결같이 건조한 눈동자와 눈매가 도드라진다. 가끔, 길거리를 걷다가 눈썹에 힘을 주며 인상을 쓰거나 얼굴에 긴장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흠칫흠칫 놀란다. 평소, 잘 웃는다고 생각해 왔던 나조차도 점점 얼굴을 찌푸리고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래서일까. 늘 환하게 웃고 있는 혹은 전형적인 웃는 상을 띠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할머니가 될 때까지 저렇게 웃는 상으로 살고 싶다.’라고. 이 마음은 옆 레인에서 매일 오후 한 시에 뵙는 수영장 할머님의 미소로부터 피어났다.
다른 하나는 ‘할머님의 한결같은 수영 사랑’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를 정말 쉽게 실천하시는 분이 바로 할머님이셨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연휴이든, 심지어 가끔 어깨가 아프실 때조차도 매일 한 시 수영장으로 출석하셨다. 처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할 때는 속으로 ‘매일 수영을 하러 오는 비결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다 보니까 그 이유는 딱 하나로 모였다. 바로, 수영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이다. 단순하다. 수영이 정말 좋아서, 그 자체를 사랑하니까 하루도 빼먹을 수 없던 것이다. 할머님은 그 사랑을 느끼고 계셨고, 앞으로도 수영과 사랑에 빠지실 분이시다. 쉬지 않고 자유형 열 바퀴 정도 돌고, 쉬었다, 다시 그 루틴을 반복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수영에 대한 누군가의 사랑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다.
한때는 낮 수영을 못 가서 저녁 수영을 다닌 적이 있었다. 물속으로 들어가기 전, 샤워하던 중 정신을 차려보니 할머님을 떠올리고 있었다. ‘할머님은 오늘도, 요즘도 꾸준히 낮에 수영하러 오시겠지?’ 속으로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할머님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러고는 할머님처럼, 한결같이 수영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물속으로 홀로 들어간다. 최근에는 가끔씩 낮에 가끔 수영하러 갈 수 있어서 할머님을 잠시 마주칠 수 있는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할머님께서는 “뭐여~~ 선수하게~~? 언제까지 레슨 하는 겨~~”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며 물속으로 들어가는 날 배웅해 주신다. 그러면 난 능청스럽게 “아유~당연하죠. 선수해야죠!”라고 외치면서, 따뜻한 마음 한가득 품고, 차가운 물속으로 퐁당 들어간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쁜 할머님, 잘 지내시죠? 또 물속에서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