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심이 되지 않는 영역
체육 수업만 되면 회피형이었던 사람
돌이켜 보면 초등학생 때, 다 같이 '콜팝(콜라+팝콘)'을 먹으며 하루종일 공부를 안 해도 되는 공식적인 날이 딱 하루 있었다. 그 시절 용어로, '운동회'. 어렸을 때는 공부를 굉장히 싫어했기에 친구들과 먹고, 떠들고, 웃고, 몸을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그날을 참 좋아했다. 딱 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바로, '100m 달리기'시간이다. 늘 키순서 또는 번호순으로 사선으로 그어진 흰색 줄 앞에 서서 신호소리에 발맞추어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그 순간말이다. 참 굴욕적인 날이다, 적어도 내게는. 또래의 시선에 예민했던 시기였기에 그랬는지, 또래 앞에서 머리카락 휘날리며 힘겹게 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다. 그때만 되면 부끄러움에 숨고 싶었다.
학급 친구들과 연습하는 체육 시간도 부끄러워서 어떻게든 보건실 가려고 하며 피하려 했던 회피형인 학생이 어떻게 운동회의 달리기 시간을 좋아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혼자 왜 그렇게 위축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각 학부모들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의 자녀 혹은 자녀가 속한 학급을 향하지 생판 모르는 남의 반 학생의 달리기 실력이 느린가, 빠른가를 분석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그 당시 나는 달리기와 같은 운동보다는 초코파이 두 개씩 까먹거나 슬러시와 콜팝을 먹으며 응원하는데 흥미가 있었다.
자신 없던 분야에 맞서야 한다는 두려움과 절망감 그 사이에 하나 더 추가가 된다면, 소위 '쪽팔림'이었다. 꼴등이나 뒤에서 앞 순서로 결승선에 들어올 내 모습을 지켜볼 가족들의 모습에 창피함을 안 느낄 수가 없었다. 매년, 어떻게든 달리기 실력을 숨기려고 가족들에게 일부러 달리기 시간을 잘못 알려주거나 옆 친구의 발에 걸렸다거나, 밀쳤다거나 하는 등의 변명을 내세우기 바빴다. 쪽팔리는 마음에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 기분을 누가 공감해 줄 수 있으리, 가족들이 일 분 일 초가 아깝지 않게 그날의 달리기 장면을 그대로 휴지통으로 버리기를 바랐다.
이렇게 6년의 초등학생 시절을 흘러 보내고 나니, 중학생 때도 또 마주쳤다. '체육', 왜인지 어렸을 때 생긴 달리기 트라우마 때문인지 중학생 때도 체육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중학교 때 수행평가라고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만들었던 뜀틀 시간은 달리기 버금가는 강력한 존재였다. 당시, 날렵한 몇 명 친구들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뭐가 좋은지 벌써부터 뜀틀을 원숭이처럼 넘고 난리가 나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적으로 '이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를 곰곰이 고민하며 자연스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사실 그때의 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도 자체를 피하려 했던 거였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며, 체육 수업만 되면 피하려 했던 학생이 바로 나였다.
성인이 되어,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며 어느새 변화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회피형의 모습이 사라지고, 사람들과 함께 물속에서 어울리며, 사람들이 옆레인에서 보든 안 보든 시선에 개의치 않고, 온전히 수영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한때, 체육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체대생 두 명과 레슨을 함께 받은 적이 있다. 하루는 제자리 스타트를 연습하기 위해서 한 명씩 스타트 자세를 취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날 처음으로 학창 시절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깨달았다. 남들 앞에서 운동하고, 나서는 걸 되게 싫어했던 한 사람이 어느 순간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의 감각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 삶에 내가 중심이 되지 않는 영역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인철, 아주보통의 행복 中
언제 한 번 최인철 작가님의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을 발견한 적이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크게 가닿지 않는 부분이었지만, 수영을 배우고 나서 다시 한번 책을 정독할 때 새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전의 나는 남들 앞에서 완벽한 모습만,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못하고, 부족한 모습은 최대한 숨기고 뛰어나고 훌륭한 모습만 보여줌으로써 칭찬도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기대했던 거였다. 그래서 유난히 체육 수업에 자신이 없었고, 피하려고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행히도 완벽을 원하는 소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더 큰 세상에 나와보니, 각자 모두가 잘하는 게 있고, 부족한 부분도 있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점차 배워갈 수 있었다. 덕분에, 늘 완벽을 추구하며 혼자 채찍질하기 바빴던 모습에서 헤어 나와, 내가 중심이 되지 않는 영역에 머물며 늘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다. 각자의 삶에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는 영역 하나, 내게는 그 영역이 단연코 '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