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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22. 2023

빈 시간을 가지는 여유

벌써 4번째 만난 '탈로이레스' 마을

빈 시간을 가지는 여유, ‘탈로이레스’ 

여행자들이 북적일 수밖에 없는 안시 기차역 근처의 도심은 여느 여행지와 다를 거 없는 상점과 식당, 카페가 즐비한 곳이다. 잠깐이면 충분하다고 느꼈던 나는 지도를 열어보니, 안시 호수를 거대한 산맥들이 안아주고 있었다. 위아래로 길게 뻗어있는 호수의 대략적인 지형을 파악한 후, 우선 복잡한 ‘안시역’을 벗어나 반대쪽으로 향해보았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현재 위치에서 반대편으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찾은 다음에 내리고 싶은 곳에 내릴 계획이었다. ‘난 시간이 많은 여행자이니까.’ 대학생 때 교수님의 과제로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가보는 것 내주셨던 이후로,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여행 방법이었다. 왜인지, 안시에서는 단순한 지형 때문인지, 어딜 가도 예쁠 거라는 걸 이미 짐작했던 건지, 아무튼 어떠한 이유로 평소 하지 않던 방식대로 버스 여행을 시작하였다. 쾌적한 대형버스 60번에 모험적인 몸을 싣고, 도심에서 멀어지며 보이는 창밖 풍경에 집중했다. 거대한 투명 유리로 안시의 자연이 만들어 주는 그림의 연작 시리즈를 보는 듯했다. 몇천 원 하지 않는 버스비로. 목적지 없이 향하는 길에 도중에 내리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그 이후의 풍경이 궁금하여 계속 내리지 못하다가 종점으로 향하기 몇 정거장 전인, ‘Ecoles’ 정류장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바로 테니스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보였다. 알고 보니, Ecoles는 학교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정류장 표지판 밑에 'Tallories-Montmin Angon’라고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나는 호수 따라 흐르듯 발길이 닿는 대로 향하다 보니 ‘Tallories(탈로이레스)’ 마을에 와있었다.


‘탈루아’ 동네는 크게 보아도, 구석구석 작게 보아도 어디 하나 안 예쁜 구석이 없는 곳이었다. 감히 섣불리 어떠한 단어로 단정 지어 형용할 수 없던,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자연의 작품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느 곳으로 향하든 보이는 안시호수와 아직 흰 눈이 덮인 산봉우리들, 영화 속에서만 보던 프랑스 시골 가정집이 곳곳에 있어,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멍하니 두기 어려웠다. 정처 없이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탈루아 항구’를 만났다. 항구 하나에 감탄하며, 이렇게 예쁜 항구가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물속에 들어가지 못했던 계절이었음에도, 그저 그 마을 안에서 여행하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탈루아였다. 그리하여 나는 아예 정보 없이 찾아온 탈루아의 매력에 스며든 후로부터 나의 안시 여정지에 목적지가 생겼다. '탈로이레스', 탈루아로 향해준 60번 버스에 고마움을 느끼며 계속 다시 찾아가게 되었던 마을이다. 이번 여름 역시, 60번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벌써 4번째 찾아오고 있는 ‘탈루아’, 여름에는 항구와 짧게 인사하고 항상 아래로 걸어 내려와 ’Tallories beach’로 바로 이동했다. 이리 예쁜 호수에서 수영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기뻤는데, 이곳은 연령 불문 신나게,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잘 갖춰져 있었다. 곳곳에 안내된 수심과 충분한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는 미끄럼틀, 물과 햇살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도록 띄어준 물 위의 나무 돗자리 등 안시 사람들의 꼼꼼함과 정성에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이 해변을 찾아올 때면, 프랑스인들이 안시 호수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지와 해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곳이라고 느낀 해변은 탈루아가 처음이었다. 

‘바다만큼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주는 것은 드물다. 이처럼 바다가 주는 기쁨을 온전히 느끼려면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야 한다. 빈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보고 느끼고 듣고 만지는 것으로 만족하자. 사진을 찍고 수익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인 네고티움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인 오티움이 바캉스의 개념이 되어야 한다.’ (147-148P)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혼자 정말 잘 놀았던 탈루아 해변에 펼쳐진 잔디밭에 앉아 책을 보던 중, 때마침 위 구절을 읽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각종 화려한 기술로 다이빙만 내내 하는 몇 사람들, 미동 없이 누워 태닝을 즐기고 있는 그들, 책을 읽거나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는 이들이 눈에 담겼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사람들은 날 포함하여 몇 사람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자신이 그 순간에 즐기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모든 순간에 핸드폰을 들고, 사진으로 남기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행동이 네고티움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애초에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는 편은 아니라서 그럴 수 있지만, 그렇다 하여 과연 책에서 언급하는 대로 안시처럼 예쁜 호숫가를 눈앞에 두고 카메라를 안 들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참 어려운 거 같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잘 실현하고 있었다. 책과 그들, 그리고 나를 비교하며 아직 멀었다고 느꼈다. ‘빈 시간을 가지는 여유’를 온전히 만끽하는 사람이 되기에는 말이다. 


‘다음 여름, 탈루아에 또다시 찾아가게 된다면 네고티움을 내려놓고 오티움을 즐겨봐야지.’


그림의 연작 시리즈를 보는 듯 했던, 4월의 Tallories 마을
'Ecoles에서 내리길 잘했어'
지금까지 본 항구 중, 가장 예뻤던 Tallories 항구
오티움을 즐기고 있던 Tallories beach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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