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종 Jan 11. 2024

올해의 단어는 "용기"

- <아비투스>를 읽고

새해 목표를 ‘용기를 내보자’로 정하고 나서 그런지 불안을 이기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귀들을 책에서 자주 만난다.


요즘 읽고 있는 <아비투스>라는 책에서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아냈다. 아비투스란 ‘가지다, 보유하다, 간직하다’의 라틴어 동사 habere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가치관, 선호, 취향, 행동 방식, 습관으로 세상을 맞이하느냐는 아비투스에 달려있다. 태어나 자라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이 지금의 태도를 빚어낸다’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도리스 메르틴은 알프스 산를 오르면서 본 앞서가던 딸들과 아버지의 모습에서 미래의 크고 작은 위기에 딸들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아비투스가 각인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조금 가파른 길을 오르다가 아이가 미끄러져 가느다란 나무줄기를 잡고 매달리게 되었다. 위기의 순간에 아버지는 “걱정 마, 다치진 않았니?” 아이가 끄덕이자 아버지가 손을 내민다. “잘했어. 가자, 15분만 더 가면 오두막이야” 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계속 산을 올랐다. 사실 아무 일이 없었던 게 맞다. 딸들은 아버지의 이런 반응에서 미끄러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며 비극적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아버지가 보여준 태연함은 아비투스에 각인되고 이는 미래의 크고 작은 위기에 딸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서 숨을 크게 쉬고 계속 가던 길을 가면 된다.


이 에피소드를 읽고 내가 왜 이렇게 겁쟁이인지, 그토록 극복하고 싶어 노력해도 안되는지 알게 됐다. 엄마는 극도의 불안증을 갖고 계셔서 내가 뭐만 하려고 하면 그 일에 펼쳐질 위험한 일들을 계속 이야기하시며 되도록 가만히 있기를 요구하셨다.


대학 때 친구들이 스키장에 가자고 해도 매번 나만 허락을 받지 못하자 친구가 직접 부탁하는 전화를 했는데도 “우리 수종이는 안 된다. 너희들이나 가라”라고 하셨다.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 저녁 10시 전에 엄마 눈앞에 있어야 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하셨고, 어떤 일을 하려고 의논하면 거의 대부분은 하지 말라는 결론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모든 사건사고를 결부시키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늦게 다녀서는 안 된다. 그냥 엄마 말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다. 그 당시 인신매매단이 봉고차에 젊은 여자들을 끌고 가는 사건들이 뉴스에 많이 나오던 시기이긴 했다. 그런 뉴스와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프로를 보시고는 매일 그런 흉흉한 사건 이야기만 하셨다. 물론 나도 부모가 되고 보니 자녀의 안전에 대한 불안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정도가 심하셨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너희 엄마는 좀 심하셨지 ”라고 이야기한다. 대학 때도 친한 친구들 중 나만 늘 여행에서 빠지다가 대학 4학년 때 딱 한 번 설악산에 간 적이 있었는데 콘도로 매일 아침 전화를 하셨다. 나는 그런 일이 너무 많아 잊고 있었는데 같이 갔던 친구가 얼마 전 이야기해 주어 기억이 났다. 그때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기억이 난다는 거였다.


대학 졸업 후 결혼한 친구 집들이 갔을 때도 빨리 오라고 친구 집으로 계속 전화를 하셨다. 결국 초저녁에 나만 집으로 갔다. 평상시에도 일거수일투족을 옥죄고 안전을 빌미로 위협하고 불안증을 유발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엄마의 모습 그대로 걱정과 불안도가 높은 어른으로 자라게 되었다. 운전면허도 한 번에 따고 연수도 충분히 받아 선생님이 잘한다고 1년만 지나면 아주 편하게 잘하고 다니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결국 운전을 못 한다.


살던 아파트 후문 쪽이 약간 경사가 있었고 그쪽으로 단지 안에 있던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많이 지나다니던 길이 있었다. 운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길을 올라가는 데 뭘 잘못 밟았는지 뒤로 확 밀린 적이 있었다. 그때 너무 놀라고 평상시처럼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가 자꾸 생각 나 진땀이 나고 그 뒤로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못한다.


아비투스 책에서 본 저 이야기 속의 딸들처럼 위험한 산길에 미끄러져 가느다란 줄기에 의지하게 된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위험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별일 아니라고 계속 앞으로 나가보자는 격려를 받아봤다면 운전도 하고 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불안도가 높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나도 아이들을 옭아매고 불안을 유발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많았다. 그 불안의 아비투스를 대대손손 물려주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내 대에서 끊어버리고 싶다. 이미 아이들에게도 불안의 그림자가 보인다. 남편과 시부모님의 불안도도 우리 집안 못지않게 높았다. 생전에 시아버님도 나이가 쉰이 다 돼 가는 아들에게 '되도록 차를 움직이지 말아라', 여름에는'물가에 가지 말아라'고 전화를 하셨다.


엄마의 구속이 싫어서 내 아이들은 자유롭게 해 준다고 했지만 나도 딸이 술 마시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올 때면 온갖 뒤숭숭한 사건 사고를 떠올리며 잠 못 이루고 불안에 떨기 일쑤였고 아이를 위협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의 불안도 이해한다. 전쟁 때 폭탄이 엄마집인지 근처에 떨어졌는데 당신이 동생을 업고 나오지 않았다면 그 동생이 죽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하셨고 어릴때 죽은 동생 이야기도 하셨다. 유일한 여동생이었는데 죽어서 너무 슬펐다고.  어릴 때 겪은 그런 일들이 얼마나 깊게 각인될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참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대를 사셨다.


지금은 엄마의 불안을 이해하게 됐지만 도가 넘는 불안은 벗어 버리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나의 불안을 더 이상 전달하고 싶지 않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온갖 망상을 이야기하는 거라도 멈춰야겠다.


이 책의 저자는 “1월에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 길잡이별로 삼습니다. 급진적인 변화 대신 사고방식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 이죠”라고 하며 자신은 ‘친절’이라는 말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해 늘 의식하고 산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자고 사고방식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한다는 거다.


나는 올해의 단어를 “용기”로 정하겠다. 새로운 곳을 가보고 탐험하는 용기든 생활 속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오래전에 각인된 불안을 극복하는 용기든, 나의 감정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든, 나를 극복하는 용기를 내는 한 해를 보내겠다.


늘 용기라는 단어를 의식하는 한 해를 보내보도록 하겠다.  

이전 07화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