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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Oct 20. 2022

비터스위트

최근에 수전 케인의 <비터스위트>를 읽었다. 어릴 때 분명히 우울하고 슬픈데 뭔가 달콤해서 거기서 빠져나오기 싫었던 감정을 자주 느꼈었다.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달콤 씁쓸한 음악을 찾아 듣고, 책을 읽고 이어폰을 꽂고 버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또 그런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에게 끌렸다. 그냥 우울증도 아니고 도대체 뭘까? 나는 그 감정을 ‘행복한 우울’이라 이름 붙였었다.


사춘기 시절의 감정 과잉 상태였나? 그런 사춘기적 기분에 30대, 40대까지 빠져있는 나는 미성숙한 인간이고 그래서 현실에 발붙이고 현실적인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인가 많은 자책을 했었다.


나는 그 기분에 너무 푹 빠져서 현실을 살지 못한 채 젊은 시절을 다 보내버렸는데 그게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기분이었다. 내 과거가 다시 평가되고 모호한 그 감정에 이름 붙여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런 감정조차 일지 않은 메말라버린 감성이 슬프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런 갈망을 포토스(pathos)라고 칭하고 Platon은 이 포토스를 가질 수 없는 황홀한 어떤 것을 동경하는 열망으로 정의했다. 포토스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 <비터스위트> 중에서

내가 젊은 시절 내내 느꼈던 감정, 무의미해 보이지만 단념할 수 없었던 열망이었다. 그걸 표현할 길이 없어 좌절해도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영화, 책등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나의 젊은 시절의 그 많은 시간이 무용한 게으름이 아니었다는 인정을 받는 느낌이다. 나만이 느끼는 게 아니고 이렇게 책을 낼 정도의 가치가 있는 감정이었다는 것이 기뻤다.


잡지에서 본 이미지 하나만으로 가슴 설레어 찾아 다니고 인형극 동아리를 하면서 극본을 쓰고 인형을 만들고 더 잘 만들기 위해 인형극단을 찾아 다니고 인형극 공연을 보러 다니고 했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인형극단이 되고 싶다는 꿈도 남몰래 꾸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꼭 인형극이어야 하는건 아니었다. 뭔가 나의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상황에 구속당하는 하찮은 존재였던 인간이 포토스에 영감을 자극받아 고차원적 현실을 붙잡으려 손을 뻗는 것이다. 포토스의 개념은 사랑과 죽음 모두와 연관되어 있었다.... 이런 갈망의 상태는 현대인에게는 소극적으로 우울하고 무기력한 인상을 주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포토스는 의욕을 돋우는 힘으로 받아들여졌다.”

 - <비터스위트> 중에서

내가 그런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 나 자신을 게으르고 무기력한 존재로 폄하하고 살았는데 난 그냥 그런 기질의 사람이었다. 그런 감정으로 사는 일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을 자책할 수 밖에 없었다.


입시지옥에서 살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이 이런 감정에 이름 붙이지 못하고 나처럼 자책하고 있을 거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그랬듯이 스스로를 성실하지 못한 쓸데없는 곳에 정신 팔린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그랬다. 젊은 시절에 좀 더 열심히 살 걸, 그렇게 한가할때 박사학위를 받을 걸, 재수를 해서라도 좀 더 안정적이고 경제력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과, 예를 들면 그 당시 이과 여학생이면 모두 원하는 치대나 약대에 갈 걸 이런 후회가 늘 있었다.


현재 내 모습이 나에게도 늘 한심해 보였다. 그런데 아니라니, 그런 감정들이 충분히 의미 있고 그 감정들을 따라 세상을 경험하고 알아보고 한 것이 충분히 아름다운 과정이었다는 의미부여가 됐다.


이 책에는 비터스위트 지수를 알아보는 테스트도 있다. 이런 성향에 가까운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것이다. 나는 테스트해본 결과 높은 성향의 비터 스위트 경향의 사람으로 나왔다. 사람마다. 이런 섬세한 감정의 차이, 세상 어디에 더 포커스를 두는 사람인지 다 다른데 오로지 성실하게 공부하고, 남들 앞에 외향적 모습으로 두루두루 사람들과 잘 지내는 모습만을 옳고 바르다는 무언의 압박이 사람들의 인생을 공허하고 소외되게 만든다.


그런 모습이 아닐 때 부모님의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서 자꾸 아이들을 본성과 멀어지게 만든다. 자아를 발견하는 시기에 자신의 본성이 이해받고 네가 틀리지 않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긴 시간을 허비하며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텐데...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부끄럽고 유치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본성에 맞는 길을 찾으려 해도 일단 국영수를 공부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입시는 미술을 전공하려고 해도, 체육을 전공하려고 해도, 영화를 전공하려고 해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 오히려 공부도 하고 실기까지 해야 하는 지옥 같은 입시의 문을 통과해야 그 길을 갈 수 있다. 예술적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국영수 때문에 좌절하는 예를 너무 많이 본다. 아니면 도중에 학교를 그만두거나 대학을 가지 않으려 할 때 얼마나 많은 편견과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지... “내가 그 정도로 원하는 일인가? 내가 그 정도로 재능이 있나?” 이런 소모적인 의심과 자아비판으로 그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다 빼앗기고 만다.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고 나의 꿈을 식구들이나 주변에 조금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없는 재능 때문에 내가 관심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일,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드러내지 조차 못했다. 지금도 글을 쓰는 일에 자신이 없다. 브런치를 몇 분만 둘러봐도 정말 대단한 작가들이 넘쳐나는데 이런 써도 안 써도 그만인 유치한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매일 고민하고 망설인다. 그래도 이제는 마음을 고쳐 먹고 자주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망설이면 결국 올리지 못할 걸 알기에 이상해도 그냥 발행 버튼을 누른다.


“능력은 천부적 자질이나 고난도의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데서 나옵니다. 나의 꿈, 나의 관심사, 나를 감탄하게 하는 것, 나를 사로잡는 것이 나를 얼마나 멀리 밀고 가는지 알고자 노력하면 됩니다” -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중에서

이런 글들을 다시금 꺼내 읽고 놓아버린 끈을 다시 소심하게 잡아보곤 한다.


내 자신을 의심하느라 허비한 시간들과 꿈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할 수 없던 시간들 속에서 내 인생이 그토록 공허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관심 있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감히 내놓을 수도 없어서 남들 앞에 적당히 둘러대고 내 모습을 꾸미며 살아왔다. 이제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못 쓰는 글도 계속 쓸 거고 못 그리는 그림도 계속 그리며 살겠다. 철든 척 하지 말고 그냥 유치한 나로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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