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선생님은 공책을 사이에 두고 마음을 나눈다.
한여름엔 아이들하고 수박도 먹고, 수영장도 간다. 시원하다 못해 으슬으슬한 감각을 느끼려면 역시 공포영화인데 어린이에게 보여줄 순 없으니 1990년대에 개봉한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영화 제목을 오마주하여 대상 관찰하기 활동했다.
관찰할 대상을 직접 고르면 짜릿함이 부족할지 모르니 스크래치 복권처럼 확인하도록 했다. 아이들에게는 랜덤으로 배정했다고 공표했지만, 사실 두 선생님이 머리를 싸매며 배정했다. 가장 먼저 관찰 대상에서 빠지는 아이가 없는지 확인, 또 확인하고, 다음으로는 아이 기질, 성향, 또래 관계를 고려해서 짝을 지었다. 활동하면서 가까워진 아이가 있는가 하면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고 배움의 계기가 된 아이도 있다.
나를 관찰한 아이는 한글 해득이 늦어서 또래보다 맞춤법이나 활용 어휘가 적다. 삐뚤삐뚤한 글씨에 틀린 글자로 많았지만, 온 힘 다해 쓴 글임을 알 수 있다. 나의 하루를 지켜봐 준 어린이에게 늦게나마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답장하려고 한다.
8월 29일 화요일
선센님께 인사를 했는대 선센님이 방긋 웃으셨다.
그래서 나도 기분이 조았다.
그리고 A형 컴퓨터 하는 것을 도와주셨따.
그리고 B랑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하셨다.
그다음애 C이랑 예기를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일을 하시고 있다.
선생님이 C이 씀씀이를 도와주시고 있다.
선생님이 D누나랑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이 전화 하시고 있었다.
선생님이 굉장히 힘드신 것 같다.
선생님이 식사를 안 하셨다.
안녕, 초등학생이던 네가 곧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니! 어린이의 시간은 정말 빨리 흐르네.
눈 깜빡하면 성인이 될 준비를 하고, 사회에서 만날 텐데 말이야.
오랜만에 씀씀이 노트를 열어 날 관찰한 기록을 봤어. 너희가 오면 자리에 앉아 있을 틈 없이 보낸다는 건 쉬어 가는 목과 저린 발이 알려줘서 느끼고 있었는데 네 눈으로 보고, 글로 적은 내 모습을 보니 민망하더라.
바쁘기만 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거든. 센터에는 여러 명이 있으니 시간을 나눠가며 대화하는 게 최선이었는데 말이야. 소외되는 아이 없이 모두와 동일한 양만큼 눈 맞추고, 대화한다면 좋았을 걸 그게 쉽지 않더라고.
그래도 참 다행이다. 방과후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 쁘니들 사이에 있었고, 방긋 웃는 얼굴로 널 맞아서.
선생님이라면 당연한 일이 맞지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세세한 일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서운하게 했을지 모르잖아.
센터에 발을 들이고, 너랑 나 서로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으니까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겠다 싶어.
참, 식사를 안 한 건 말이야.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니고, 점심이 소화가 안 돼서 그랬어.
재미 하나 없었을 선생님의 일상을 기록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그저 지나가는 하루가 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