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다는 건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거다. 정자와 난자가 만났고, 포궁에 조그마한 생명이 자리하면 인내의 시간이 지나 몸 밖으로 나온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기 위해선 이성의 육체적 관계가 필요하다. 때에 따라 의학 도움을 받기도 하니 필수 요건은 아니겠다만. 어떻든 태어나서 사는 거다.
사회복지학부생 시절 가족학 수업을 듣던 중에 '사랑', '동의', '책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교수님께서 여러 차례 강조하신 만큼 세 가지 단어를 연결해가며 내 나름 분석해보려고 노력했다. 사랑과 동의 그리고 책임이 있는 두 사람을 기준 또는 이상으로 두고 생각해보자. 사랑과 동의는 있지만 책임은 없는 관계도 있다. 일부 미성년자나 내연 관계라던가. 서로 사랑하고, 동의받고 육체적 관계가 있었지만, 아이가 생기는 걸 생각 못했든지. 사랑은 없지만, 동의는 있고, 책임은 있거나 또는 없거나 한 관계도 있다. 매춘이나 하룻밤만 약속된 관계. 사랑도 동의도 책임도 없거나 사랑만 있고 동의와 책임은 없는 관계는 폭력이다.
더 좋은 예가 있을 수 있고, 치우친 시선으로 보편화하는 결례를 범했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쉽게 이해하고자 늘어놓은 게 이뿐이다. 앞서 남자와 여자가 '사랑'해서 생명을 잉태했다고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던 건 나열했듯 생명이 생기는 데는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가 있어서다.
아동이 지역아동센터에 입소하기 전, 보호자와 만나 초기 상담을 하는 날엔 듣는 이에 따라 실례되는 질문이 될지 모른다는 점을 조심스레 건네곤 임신 당시 기억에 대해 질문한다. 나아가서 원해서 가진 아이였는지까지 묻기도 한다. 축복받고 태어난 아이인가 여부를 가리고자 하는 게 아니고, 임신 당시 부모의 정서가 아동 발달과 양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