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가희 Jun 24. 2022

아무래도 나 초등학생한테 텃세 당하나 봐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 에세이

2015년 3월 2일 지역아동센터로 처음 출근한 날이다.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와 긴장을 안고 문을 열었다. 3.1절을 쉬고,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하는 날이라 그런지 흥분된 모습이었다. 23살 어린 선생님을 보니 신기했는지 다짜고짜 사진을 찍자고 달려들었다. 열댓 명의 아이가 줄 서서 사진 찍었다. 친밀한 관계 형성은 중요하니까 까짓거 뭐 찍어주지.


앞서 사회복지사가 자주 바뀌었다는 거 알게 됐다. 세 명의 여자아이가 사무실 문을 확 열고 들어와선 전에 계셨던 선생님께 전화해야겠다고 한다.

"하는 건 좋은데 전화 예절은 지켜야 하지 않겠니?"

옆에서 통화하는 걸 도왔지만,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가 보다. 전체적으로 거칠고, 날이 서 있는 분위기였다.


첫날이라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소개하고, 이름과 얼굴을 익히는 데 집중했다. 간식 나눠주기, 배식, 청소와 같은 간단한 업무는 눈치껏 했다. 프로그램 하나를 마치고, 바닥에 종이 쓰레기가 떨어져 있길래 빗자루를 가져와 쓸고 있었다. 그러자 두 아이가 와서는 바닥에 툭 쓰레기를 던졌다. 허리를 굽혀 쓸어 담고 있다가 놀란 눈으로 아이를 봤다. 자기가 버린 쓰레기도 주워 담으란다. 지나온 선생님이 다들 별말씀 안 하셨다고 한다. 예의 없는 행동에 대한 훈육과 친밀감 형성 두 가지가 머릿속에서 다툰다. 뭐가 더 중요하냐면서.


'당분간만 참자. 당분간만 참고, 다음엔 엄하게 말해야지'

가르침에는 타이밍이 있는데 그걸 놓쳤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나니까 가르침과 친밀감은 별개라는 걸 알았다. 관계 맺기는 어느 때나 할 수 있고, 오래달리기와 같다. 반면에 잘못된 언행은 단호하고, 분명하게 가르쳐야 했다. 기준 없이 수용한다고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게 아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서로 존중하고, 다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저녁 배식을 돕고, 귀가하는 남자아이들을 따라 나갔다. 출입문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조심히 가! 내일 보자"

남자아이 네 명이 서로 번갈아 쳐다보며 피식하곤 웃는다.

"뭐야, 왜 나와서 인사를 하지?"

그게 무슨 말이지. 만나면 반가워서 인사하고, 갈 땐 안부를 전하며 인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아무래도 나 초등학생한테 텃세 당하나 봐.'

이전 09화 아동학대 신고 말이 쉽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