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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가희 Jul 01. 2022

초보 사회복지사 악으로 깡으로 버티자(2)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 에세이

'따라 흥분하지 말고, 존중하자. 아이들을 존중하면 대화가 될 거야. 해줄 수 있는 건 약속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하지 뭐.'


앉아서 얘기하자니까 앉는다. 문을 걸어 잠근 용기치고, 순순히 말을 따른다. 4학년이 말을 안 들어서 본때를 보여주는 과정이었던 모양이다. 당시엔 센터 아동 비율이 여자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이 기가 죽어 보이긴 했다. 요약하면 요즘 애들이 너무 싹수없으니 그렇게 못 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얘기로 동생이 무례하게 하는 경우 개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그만큼 선배로서 몫이 있다는 점도 전했다.


이 정도면 대화가 잘 됐다고 여겼다. 문제 원인이나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중요한 때가 아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여태껏 대화로 문제 해결한 경험이 적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러나저러나 하루빨리 아이들하고 친해져야 했다. 사회복지사가 자주 바뀐 이곳에서 아이들의 선생님으로서 신뢰를 얻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라 예측했다.


실전 경험이 없으니 자신을 잃었다. 하지만, 오기만큼은 있었다. 극한으로 몰린 상황이니만큼 실수가 잦겠지만, 빠른 성장이 가능한 환경일 거라고 굳게 믿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로 했다.




입사 후 한 달 뒤, 센터장님이 새로 오셨다. 한 달 동안 있던 상황을 모두 전달했다. 좋지 않은 말만 골라 토해내듯 전하고 나니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센터장님께선 괜찮다고 하셨다. 고작 초등학생이라고. 조금만 기다리면 바꿀 수 있다고. 몇 마디 안 되는 말에 안도감이 든다. 믿을 구석이 생긴 나완 달리 아이들은 새로운 선생님과 변화를 앞둔 센터 분위기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새다.


여긴 지역아동센터. 아동이 안전하고, 행복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불안정하고, 날이 서 있다. 권력을 이용해 아이들을 휘두르지 않되 아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자기소개서에 당당하게 써 둔 포부가 뭐였더라. 분명 사회복지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고 썼었다. 어떻게든 스트레스는 풀고, 기운 내야 했다.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나다운 사회복지사가 될 때까지.


열댓 명 아동과 두 선생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회의했고, 규칙을 새로 세웠다. 학습량을 조절하고, 놀이를 통한 관계 맺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더 이상 책상 위를 뛰어다니지 않고, 공간을 함께 채워 나갔다. 손과 고성이 오르던 다툼이 줄고, 대화로 채웠다.


문제 해결에 가장 핵심은 '관계'이자 '사이'다. 선생님을 따라 아이들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이도 어른의 노력을 알아주고, 보답해준다. 부족함을 보듬고, 채워 가는 사이로 더불어 성장할 수 있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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