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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나무 Sep 28. 2024

예민덩어리를 돌돌 만 이불

그날은 여느 때와 같았다. 평범한 아침, 학원 일, 그리고 귀가. 그리고 이내 평범하지 않은 감정들이 올라온다. 내 방에서 크게 울리는 거실의 티비 소리, 티비를 끄고 주무시기를 기다리며 애써 일에 집중해 보지만 한 시간, 두 시간.. 한 바터면 거실을 향해 소리 지를 뻔하지만 잘 참는다. 티비가 꺼지자 종이 소리, 볼펜 소리, 탁자를 툭툭 치는 소리가 난다. 이럴 때 연기나 글 쓰는 일 중 하나가 유난히 힘든 날이라면 그날은 위험하다. 그날은 참고 참고 또 참다가 거실로 나가서 조용히 좀 해줘, 조용히, 조용히…. 조용히 해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엄마는 참거나, 또 참거나, 아니면 내가 뭘 했다고, 라며 항변한다. 엄마가 항변을 선택하는 날에는 티비 소리 때부터 참았던 화가 솟구쳐 오른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예민쟁이가 된 것인가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고등학생 때부터였던가- 현저히 잠을 줄여야 했던 게 그때부터였으니까. 자려고 누웠는데 미세하게 들려오는 엄마 아빠의 얘기하는 소리와 티비 소리 속 관중들의 웃음소리. 나는 누워서 지금부터 잠들면 잘 수 있는 총시간을 세어본다. 7시간.. 눈을 감고 있다가 티비 속 관중이 유난히 크게 웃을 때마다 움찔 다시 시계를 본다. 6시간 30분.. 벌떡 일어나 살짝 열려있던 안방의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내 방문을 쾅 닫고 한숨 쉬며 방으로 들어온다. 다시 눕는다. 6시간.. 벌떡 일어나 안방문을 열고 최대한 꾹 참으며 “티브이 소리 좀 줄여주세요…”라고 말하고 다시 눕는다. 다시 시계를 본다. 5시간 30분…

내가 경험한 바로 잠과 체력과 예민함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대학생 때는 뒤늦게 자취방과 기숙사를 오갔지만 1학년 첫 학기 때는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 되는 거리를 통학했다. 1호선 전철을 타면 거의 99% 아니 100% 아침 시간에는 앉을자리가 없다. 그리고 약 3개의 역을 지나면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차고 낯선 사람과 등을 맞대게 된다. 닿는 것에도 예민한 나는 몸을 들썩거리다 그 사람을 치고 만다.


특히 재작년 여름은 그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시나리오를 다 써내야 하는 기간이 다가오는데 새벽 내내 써도 다음날 아침에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다 보니 점점 체력과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그 몇 달 동안은 밤마다 슬프게 반복되는 일이 있었다. 엄마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하고- 엄마가 알겠다고 하고- 다시 나와서 조용히 해달라고 좀 더 언성을 높이고- 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나는 께름칙한 마음으로 다시 방문을 닫는다. 조용하다가 한 번의 거슬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감정을 쏟아붓는다. 그러면 엄마도 애써 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한다. 나 아무것도 안 하는데 뭐가 시끄럽다는 거냐, 안방은 더운데 쪄 죽으라는 거냐, 도대체 왜 이렇게 예민한 거냐! 나는 마지막 말에 맨 발을 하이힐 굽에 밟힌 사람처럼 놀라 경기해 발광 하며 내가 뭐가 예민하냐 나는 예민하지 않다!!라고 외친다. 예민함으로 지금의 나의 고통을 규정짓는 것에 화가 난다. 내가 예민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배려가 없는 거다, 딱 이 밤 몇 시간만 조심해 달라는 건데 왜 그게 안 되는 거냐 화를 내고 서로는 감정이 상해서 각자의 방에 들어간다. 방에 들어간 나는 분이 안 풀리고, 그런 소통방식으로 밖에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에  꾹 참은 눈물을 쏟는다. 엄마에게 미안하다. 안방에 들어간 엄마가 답답할 것 같다. 엄마가 다시 거실로 나왔으면 좋겠는 모순적인 마음을 품는다. 그 이후에는 글에 집중할 수도 없다. 그 시기에는 밤에 귀가할 때면 벌써부터 그 악순환을 머리에 머금고 대문 앞에 서서 깊은 우울감을 느꼈다.


일주일에 10시간 이상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로서는 전철에서의 시간이 때로 무척 힘들다. 마음이 여유 있을 때는 어떤 자극을 스치더라도 흘려보낼 수 있지만 심지어 웃어줄 수도 있지만, 마음이 꽉 막힌 듯 한 날에는 행인의 작은 부딪힘에도 나도 모르게 날을 세우게 되고 어떨 때는 내 눈이 내 마음보다 먼저 그 사람을 노려보고 있다.반대로 내가 예상치 않게 누군가에게 부딪쳤을 때 나와 비슷할 누군가의 표정에 바로 나는 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어진다.


그래서 올해 난생처음으로 전문가에게 예민함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그분은 나의 이런 예민함을 비난하지 않고 들어줬고,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비난으로 너덜 해진 마음에 큰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엄마가 나의 영역을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당연히 화가 날 수 있는 거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영역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 꽉 맺혀 있던 휴지덩어리가 눈물에 젖어 내려간 것 같았다. 상담실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바람이 눈물이 씻겨 나간 내 얼굴을 시원하게 훑었다.


그렇게 시원한 마음으로 귀가한 그날 밤, 이제는 나의 예민함을 잘 보듬어 더 둥근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쥔 그 저녁, 하필 내 방에서 중요한 업무를 해야 했고, 하필 최근 예외 없이 일찍 주무시던 엄마가 밤늦도록 거실에서 뭔가를 하셨고, 하필 내가 엄마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거실에 나갔을 때 엄마는 생각보다 아주 깊은 잠에 빠져계셨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에 중언부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작게 뱉다가 계속 주무셨고 나는 방에 들어와 엄마가 날 존중해주지 않았던 모든 기억들이 올라와 얼굴이 시뻘게지고 마음속 또 화약고 같은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그것이 나를 집어삼켜 거칠게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조금 진정되었을 때, 얘기해야겠다- 엄마에게 나의 어려움을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굳은 결심을 한 나는 다짐이 흔들리고 있었다. 뭘 어떻게 얘기할 건데, 엄마가 받아주지 않으면? 그렇지만 상담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화된 것들이 너무 많고, 얘기하지 않기 위해 취했던 행동들이 더 깊은 상처를 낸다는 점이다.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 오늘 점심 나가서 먹자’라고 했지만 엄마는 ‘오늘 할 일 수두룩해 빨래도 해야 되고’라는 답을 했다. 1차시도 실패. 당황한 나는 ‘아이 나갔다 와서 하면 되지 갔다 오자’라고 했고 ‘안된다니까~’ 2차시도 실패. 이젠 어떡해야 하지 싶었던 나는 일단은 집을 나왔다.


역으로 향하는 내내 지금 당장 말하지 않으면 답답해 못 참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카톡으로 운을 띄웠다. ‘저녁에 얘기 좀 해요’ 갑작스러운 말에 엄마는 놀랐는지 ‘무슨 일인데’ ‘아 저녁에 얘기해요’ 잠시 답이 없던 엄마는 ‘너 병 걸렸어? 아니면 다른 큰 일 생겼어?’ 더 이상 엄마의 상상이 흐르도록 두면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핸드폰을 두들기며 나의 예민함에 대해, 나의 미안함에 대해 줄줄 적기 시작했다. 엄마는 중간중간 완전히 수용하거나 완전히 거절하지 않는 듯 애매한 답을 보냈고 나는 그걸로도 만족했다. 한번 시작된 이야기는 멈출 줄 몰랐다. 어느 순간 엄마의 답변이 멈추고, 환승해야 하는 공덕역에 내렸다.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깊은 이야기들을 갑작스럽게 쏟아낸 나는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걷다가 10분 만에 온 엄마의 메시지에 완전히 무너졌다. '미안하다 눈물이 난다 네가 그런 것에는 부모 탓도 있는 거야' 환승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소통에의 꿈을 이룬 환희의 눈물이었고 치유의 눈물이었다. 바로 전철을 타지 못하고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와 곧장 환승구 구석으로 가서 크게 울었다. 어렸을 적에 내던 울음소리 같았다. 엄마 앞에서 서러움을 마음 놓고 드러내던 울음. 받아줄 사람은 엄마 밖에 없었을 때의 울음. 아,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것이구나, 이 말이었구나. 그리고, 사실 눈물의 8할은, 내가 훨씬 미안할 일이 많지만 져 준 어른에 대한 경애의 마음.


그날 이후 엄마와의 카톡 창을 열어 그 문장을 자꾸 확인했다. 볼 때마다 마음이 뭉근해지고 저릿해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수업하다가, 전철 안에서 계속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그 후로 다행히 소음에 조금은 둔감해졌다. 여전히 예민한 나지만, 그전에 비하면 전철 안에서의 시간도 늦은 밤 엄마가 거실에 있어도 내 방안에서의 시간이 전보다는 불편하지 않다. 그리고 예민함을 잘 관리하려면 마음의 공간을 늘 잘 들여다봐야 함을 알았다. 마음이 꽉 막혀 또 보지 못한 내 얼굴의 표정이 험상 굳어져있는 것이 느껴지만 속으로 읊조린다. (대부분은 무언가를 열중해서 하려고 할 때여서) 이렇게까지 하지 말자 이렇게까지 하지 말자 그렇게 하면 마음이 폴로를 삼킨 것처럼 화해지고 시야는 트인다. 입가에 힘을 줘서 미소를 지어본다.


어느 날 작업을 하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돌돌 말린 이불이 방문을 막고 있었다. (예전집과 다르게 이사한 집은 문지방이 없어서 방문의 아래틈새가 트여있다) 엄마의 의도가 당연히 예상됐지만 ‘엄마 이게 뭐야’ 물어봤고 엄마는 ‘시끄러울까 봐 그렇게 하면 덜 시끄러울 것 같아서’라고 했다. 이불의 감촉이 내 마음을 휘감고 말의 힘을, 마음의 힘을 믿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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