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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건너온 기타 소리

티보 가르시아 <El Bohemio>

by 안일구
Ahustin Barrios, El Bohemio | Thibaut Garcia | Erato, 2023

내가 처음 유학을 했던 도시는 독일의 바이마르였다. 괴테와 실러의 동상이 자리 잡은 문학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프란츠 리스트의 이름을 딴 음악대학도 명성이 높다. 특히 지휘, 클라리넷, 첼로 등 일부 클래스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했고, 국제 콩쿠르에서 수많은 우승자를 배출한 기타 클래스도 그중 하나였다. 기타 전공이 있는 줄도 몰랐던 무지한 시절의 나는 종종 그들의 작은 연주회를 방문했다. 막상 제대로 된 기타 공연을 들어보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별다른 지식이 필요 없다. 뛰어난 연주자는 좋은 소리를 내고, 선율과 화성에 맞는 연주법으로 풍부한 감정을 전달한다. 나는 알지 못하는 곡들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클래식 기타 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기타의 매력은 우선 소리의 섬세함과 깊이에서 비롯된다.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우선 기타는 두 손을 사용해 멜로디와 반주를 동시에 연주할 수 있다. 무대 위에서 홀로 연주해도 풍성한 음악적 표현이 가능하다. 또한 클래식 기타는 굉장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고전적인 음악 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클래식 기타에 대한 매력을 한층 더한다. 또한 기타는 접근이 용이하고, 그리 크지 않은 덕분에 다양한 장소에서 연주할 수 있다. 또한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으면서도 높은 품질의 소리를 낼 수 있다. 기타의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를 탐험할 수 있는 자유로움도 애호가들을 끌어들이는 요소이다.



1885년생인 아구스틴 바리오스는 클래식 기타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기타의 고전적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풍성하게 만든 작곡가다. 바리오스는 평생 동안 그의 작품과 기타 음악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기타가 유명한 클래식 악기로 인정받지 못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음악이 당대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오스는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고, 그의 연주와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94년생 프랑스 출신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티보 가르시아는 클래식 기타 씬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연주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전통적인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다채롭고 현대적인 레퍼토리까지 아우르며 기타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에게 파라과이 출신의 전설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아구스틴 바리오스는 영웅과 같은 존재다. 가르시아는 이 음반에서 남미의 민속 선율과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진 바리오스의 흔적을 차분하고 면밀하게 따라간다.


'Danza paraguaya No. 1(파라과이의 춤)'과 같이 파라과이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대표곡들, 성당에 흐르는 바흐 선율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La Catedral(대성당)', 그리고 바리오스가 즐겨 연주하던 고전 음악가들의 작품까지 음반에 정성스레 담겨있다. 화성의 묘미를 부드럽게 드러내는 쇼팽의 전주곡 20번 C단조, 영롱하게 울리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기타의 음색을 통해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강조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까지. 서정적인 선율과 다채로운 화성이 가르시아의 탁월한 연주로 빛을 발한다.


왜 이 음반은 감동적일까? 이 음반에서 가르시아는 바리오스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음악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바리오스의 고전적인 레퍼토리를 현대적인 해석으로 풀어내며, 그가 남긴 음악의 본질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노력은 듣는 이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감동을 안겨준다. 가르시아의 섬세하고 정교한 연주는 바리오스의 음악이 가진 따뜻한 감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과거의 음악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단순히 과거의 명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산을 오늘날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이 음악들은 100년을 건너왔지만, 아마 앞으로의 100년도 문제없을 것 같다.


Essential Track | 23번 트랙 (Caazapá)

이 음반의 마지막 트랙이 흘러나오는 순간, 감동은 더욱 증폭된다. 이 연주는 가르시아의 연주가 아니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바리오스가 직접 연주한 Caazapá를 음반에 실었다. Caazapá는 파라과이의 원주민어인 과라니어(Guaraní)로, '넓은 숲'을 의미한다. 자유로운 연주 속에서 자연의 생동감 넘치는 풍경이 그려진다.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며, 아이들이 뛰노는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가르시아는 바리오스가 훌륭한 작곡가일 뿐 아니라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었음을 잊지 말자고 전한다.

https://youtu.be/gxYy3W-cLMM?si=iAYB3RyqviW1BrXd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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