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리더십이고 나발이고 잘은 모르겠지만 팀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신뢰도 제법 쌓아놨고 필살기까지 갖춰놓고 보니 저절로 팀원들에게 꽤 리더십 있는 팀장이 된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나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불태워가며 팀을 이끌어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그런데, 하나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이뤄낸 모든 게 정작 '내 것'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순간들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다.
장장 6개월에 걸쳐 진행됐던 대규모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초기 단계의 브레인스토밍부터 배포가 되는 그날까지 삶이라는 것을 뒤로하고 프로젝트에 매진했다. 수많은 구조들의 개선이 이뤄졌고 콘텐츠적인 측면까지 견고하게 설계하여 많은 사용자들에게 알렸고, 결과는 정말 좋았다. 모두가 서로 수고했다며 격려하고 토닥이던 찰나, 나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상사가 건넨다. 그리고 대답한다. 나는 딱히 한 게 없다고.
어라, 그렇네. 돌이켜보면 내 손 안에서 피, 땀, 눈물로 섞여 만들어진 실체가 없다. 그나마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것을 생각해보면 상사 놈들의 아무 말 대잔치 속에서 필요한 요건들을 뽑아서 목록화한 뒤에 우선순위를 따져보는 것 정도였다. 실체 없는 성취감이라도 끌어안아보려 양팔을 여러 번 뻗고 당겨보지만 손에 잡히는 건 없다. 누군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말해보라'라고 하면 놀라울 만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바빴는데!
나는 그래서 무슨 일을 했지?
시간은 흐르고 실체는 없고, 이대로 괜찮을까?
실무자로 돌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팀을 그렇게도 열심히 이끌어 정말 범접 불가한 멋진 팀을 만들었는데 다시 실무자로 돌아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내 것을 다시 내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팀원에게 믿고 맡겨두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팀원이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 내가 나서서 해결이 쉽게 되는 그 순간의 청량감이 나를 압도한다. 그래 바로 이맛이지! 이게 일하는 거지! 하고 그 상황에 푹 빠져 다시 실무를 해야 한다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게 팀장인 내가 요청해서 잘 풀린 것인지, 정말 내가 잘해서 잘 풀린 것인지.
팀장이 되면 당장 앞단에 놓인 실무보다는 더 먼 미래의 비전을 바라보게 된다. 즉, 한 땀 한 땀 내 손으로 일구는 것 보다 수많은 땀들이 헛되지 않게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잘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하얗게 타버릴 만큼 해낸 것이 많음에도 내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다. 내가 했다며 자신감 있게 말할 일이 없다. 이런 데서 가장 크게 다치는 것이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무능함과 급격하게 떨어지는 자존감이다.
이처럼 자신의 무능함과 자존감이 상처를 입은 팀장들에게 주기적으로 자신을 달래는 시간을 가져보라 권한다. 사실 당신은 충분히 많은 일을 해냈고 자존감이 떨어질 일이 아님에도 이런 상황이 되면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치부해버린다.
자신에게 너무 엄격해지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 온 팀에 대한 애정도 점점 멀어지고 번아웃이 올 위험이 있다. 어렵게 쌓아온 팀원들과 신뢰관계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지 않게,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을 잘 달래주어야 한다. 내가 자존감 회복 운동을 위해 그동안 해왔던 두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팀장을 겪으며 발생하는 문제이기에 동종업계인을 만나보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이 있다. 팀장 정도의 위치가 되었다면 꽤 업력이 쌓였을 테고 그 안에서 자신을 의미 있게 바라봐준 누군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직접 만나는 것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자존감이 지구의 중력까지 고공 하락을 하던 어느 날, 이전 회사 사수였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이 현재 팀장이 되었는데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고, 내가 가게 되면 자신이 일을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선배는 IT업계인들의 선망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런 회사에서 뭐하러 나를? 그 회사차원에서 보면 한낱 먼지 같은 나를 받아줄 이유가 없어 보였다.
선배에게 왜 나를 데려가려 하느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티 나게 일을 잘하던 후배도 아니었고 불만만 가득한 일개 사원이었을 뿐인데 왜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가면 당신이 재밌을 것 같냐고. 선배는 내게 1초의 고민도 없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 너 성격이 한 지랄하잖아. 할 말 다하고 불합리한 거 못 참고 이해가 안 되는 거 어떻게든 알아내야 되는 그 근성! 내 기준에서 넌 모든 걸 갖췄는데 당연히 탐낼만한 인재 아니냐? 네가 지금 팀장이라서 쉽사리 오라고 못하는 것뿐이지."
너무 의외의 말이었다. 그리고 세상 달콤한 말이었다. 그 말이 너무도 내게 필요했는가 보다. 나의 것을 만들었던 시절의 누군가의 기억, 그래 나도 일을 제법 해내던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이토록 과거만으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에게 의미 있던 업계 속 누군가를 만나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줄 것이다.
팀장이 되면 팀원들로부터 거의 대부분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이런 반응들 중 내가 팀장이라서 하는 말과 그저 윗사람에게 던지는 속 빈 아부를 속아내는 게 쉽지 않다. 때문에 그 총량을 의미 있는 정보로 흡수한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된다.
그래서일까 팀원들이 하는 말들이 내면에 그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저세상까지 떨어져 있는 자존감인데, 손에 잡히는 자신의 것을 만들어내는 후배들이 과연 진짜 나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이 맞을까 의심부터 든다. 막상 내가 이뤄낸 것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그 칭찬을 애써 외면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팀원 한 명이 내게 일침을 둔다. 한두 번 칭찬을 걸러내는 것은 겸손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런 긍정적 피드백을 계속해서 외면하면 묘하게 상실감을 겪게 된다고, 누군가에게는 도달하고 싶은 위치이자 능력일 수 있다고. 그 팀원은 유독 나에 대한 칭찬이 많은 팀원이었기에 그 따가운 일침이 더 많이 와닿게 된 것 같다.
그날 이후 내게 유입되는 칭찬을 그대로 스펀지처럼 흡수해보기로 했다. 역시 우리 팀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다른 팀장들보다는 좀 낫지" 라며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본다거나, 어떻게 그런 방법을 생각해내냐며 박수를 쳐주는 팀원에게는 "짬바가 몇 년인데" 라며 어깨를 으쓱거려보기도 한다. 그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팀원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좋았다. 좀 더 즐겁게 팀장을 맡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팀장이 되면 이상하리만치 타인의 컨디션은 주의 깊게 살피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 현상은 '일단' 흘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다른 팀장들도 그렇고, 나 역시 그랬다.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질 때는 위 두 가지를 한 번 정도 시도해보자. 어려운 일도 아니고, 당장이라도 시작해볼 수도 있는 일들이다.
팀원들을 위해 지금까지 당신은 열심히 달려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달릴 의향이 있을 거다. 당신은 이미 높은 궤도에 올랐고 일이 손안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자존감으로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 이미 당신은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