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 안 합니다.

비는 일 년 내내 오지 않는다.

by 달하

팀장들만 참여하는 '팀장미팅'이 있던 날, 오늘따라 유난히 들어가기 싫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상사의 질타가 시작된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하라며 여기 학교 아니라고. 최근에 정말이지 숨도 안 쉬고 일을 해왔고 짧은 시간도 허투루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회사인데. 누구 하나 찍소리 못하고 무겁고 숨 막히는 적막 속에 겨우 한 시간을 버텨낸다. 모두가 눈 맞춤으로 고생했다는 목례를 티 나지 않게 가벼이 하고 자리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며 길고 길고 큰 한숨을 내쉰다. 시계의 바늘은 오후 6:15분. 이미 퇴근시간은 지났다.


겨우 정신을 정비하고 마저 끝내지 못했던 일들을 정리해본다. 가만히 정리하고 있자면 다른 팀 팀장이 말을 건네 온다. 저분들 무슨 일 있었냐고, 왜 저렇게 또 화가 났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받아치고 싶었지만 친절히 "그러게요" 정도로 마무리한다. 그녀는 내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


그러자 아직 퇴근하지 않은 팀원이 곁으로 온다. "팀장님~ 오늘 날도 좋은데 한잔하시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분위기 파악 못하냐고 인상을 확 찡그리고 싶지만 차분함을 유지하며 이야기한다. "아직 정리할게 남아서, 오늘은 힘들겠어요. 쏘리" 팀원은 마음 바뀌면 연락 달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상대를 하고 나면 팀장미팅에서 분노의 화신이었던 상사가 지나가며 언제 그랬냐는 듯 옆으로 다가와 말장난을 친다. 도무지 받아칠 힘이 없다. 그럼에도 사회생활이려니 생각하고 희미하게 남아있는 영혼 끌어다 상대하고 나면 시계는 7시를 가리킨다. 이제 일 시작해야지... 눈물이 핑 돈다. 하, 왜 나만 이렇게 사는 것 같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던 '희생'

바이오리듬은 인간의 활동에 대한 주기적인 변화의 곡선이다. 이처럼 인간은 주기적으로 신체의 밸런스를 맞추고 호흡을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팀장을 맡고 나서 내 바이오리듬은 완전히 망가졌다. 마치 공포영화를 볼 때처럼 어깻죽지에 긴장감 바짝 들어가 있고 간혹 고개를 옆으로 돌릴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담이 결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오면 씻고 잘 시간. 매일매일 하루가 너무 고되다.


그렇게 팀장을 맡은 지 1년이 흐르고 나니 긴장했던 어깨는 몸의 일부로 변형되었고 담은 재채기 정도 수준으로 익숙해져 버렸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살필 겨를 없이 팀장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동료가 메신저로 말을 건넨다. 요즘 괜찮냐고, 지나가다 봤는데 안색이 너무 안 좋다고. 이 또한 어차피 지나가는 말이리라. 대충 대답을 건네고 다시 일을 하려는데 그녀의 진심 어린 텍스트가 눈에 띈다. "딱, 하루만이라도 온전하게 쉬어요."


딱 하루. 그래, 사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 하루를 못 쉬었을까? 갑작스레 울컥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상사에게 직진한다. "저, 휴가 좀 쓸게요. 좀 쉬고 싶습니다." 상사는 예상외로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래라? 누가 쉬지 말라했냐" 그러네. 상사마저도 쉬지 말고 일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 마음의 소리는 있었겠지만 - 그렇게 딱 하루, 온전하게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나를 위한 시간, 머릿속에 생각나는 건 그저 쉼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무중력 상태로 붕 떠있고만 싶었다. 나의 휴가는 주로 아이를 위해 필요한 때 쓰는 것, 가족들과의 여행을 위해 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휴가도 승낙은 받았지만 말을 꺼내면 결국 가족여행을 가게 될 것 같았다.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하다 보니 또 쓰기 싫어지더라. 그렇게 고민을 하던 마음을 결국 남편에게 터놨고 남편은 집 걱정 말고 홀로 머리 좀 식히고 오라며 격려를 해주었다.


회사도 집도 내게 '희생'을 강요한 적이 없다. 여유가 없는 생활을 만든 것은 애초에 내가 자초한 것은 아닐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스스로를 옥죄고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희생을 하면서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렸던 것이다. 그래, 조금 내려놓자. 나 하나쯤 조금 쉰다고 해서 이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






'정기휴업'을 만들자

그렇게 휴가 계획을 세우고 나서 팀원들에게 알렸다. 자신들을 막아줄 우산이 없다는 사실에 걱정하고 두려움을 가질 줄 알았는데 팀원들은 오히려 박수를 쳤다. 잘됐다고, 너무 힘들어 보였다며 푹 쉬고 오라고. 그러네, 돌이켜보니 나도 팀장이 없는 날을 그렇게 좋아했었지. 기억이 그제야 났다. 그저 팀원들의 우산을 하겠노라 쉼 없이 매일을 지켜내려던 상황들이 오히려 팀원들에게 부담이 됐을 것 같다. 비는 1년 내내 오지 않는다. 걱정 접어두어도 회사는 알아서 잘만 굴러간다.


그렇게 가능한 회사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홀로 쉼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그 적막함이 적응이 안 돼서 회사에서 혹시 연락이 올까 핸드폰을 옆에 두고 계속 들여다봤더랬다. 결국 팀원에게 연락해 별일 없냐고 조심스레 메신저를 보내본다. "아이고, 아무 일 없습니다. 있어도 알아서 할게요~ 제발 푹 좀 쉬세요"라고 말을 건네준다. 고마운 팀원들, 그제야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며 스르르 낮잠을 청해 본다. 아, 노곤하다.


그렇게 밤이 되어 평소 읽고 싶던 책도 보고 저녁에는 야경을 안주삼아 잔잔한 노래와 함께 맥주도 한 캔 기울였다. 오롯이 나의 몸의 흐름에 집중해본다. 낮잠을 잤는데도 금세 잠이 또 스르르 온다. 따뜻한 물로 가볍게 씻고 나와 자유 그 자체인 나만의 공간에서 기분 좋게 잠이 든다. 정말 오랜만에 꿈도 꾸지 않고 오래 푹 잤다. 아침이 이토록 개운한 적이 얼마만인가. 아, 휴식이란 정말 좋은 거구나.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많은 CEO들이 휴식을 강조한다. 마인드풀니스 명상이니 마음 챙김이니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로부터 벗어나는 '정기휴업'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휴식도 적응이 필요한지 처음에는 다녀온 뒤 후폭풍에 시달려 이리저리 치이며 다시는 안 가겠다고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정기적으로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휴식의 습관을 들이니 일과 삶이 구분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자

간혹 휴식을 해야 한다고 하면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사람들의 휴식법을 반드시 따라 해야 제대로 휴식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런 휴식법을 따라 해 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휴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그저 마음 편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쉬면 된다. 이것저것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거 해도 괜찮다.


특히 일중독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쉬는 순간에도 반드시 생산적인 휴식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고 주변의 워커홀릭들에게 보이는 패턴이다. 휴식을 통해서도 무언가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보니 안 그래도 되더라. 오히려 머리를 비우고 오니 일에 몰입도 더 잘되고 집중력도 올라감이 느껴지더라.


나도 젊은 시절(...)에는 가만히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항상 뭐라도 했어야 했다. 쉬러 간 여행에서도 책을 몇 권 읽겠다는 미션, 어디부터 어디까지 걷겠다는 미션, 유명 장소에 가서 사진이라도 남겨야 된다는 미션 등 반드시 여유가 생기는 시간에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팀장을 맡고 나니 모든 상황이 미션이다. 마치 마라톤과도 같다.


함께 달려가는 팀원들의 물도 챙겨줘야 하고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는 다시 데려와 올바른 길로 다시 안내도 해줘야 한다. 골인지점에 도착했을 때 팀원들의 땀도 닦아줘야 하고 수건도 챙겨줘야 하고 다음 골인지점에 대해서도 혹시나 사기가 떨어질까 적절한 타이밍을 눈치껏 잘 살펴 설명해줘야 한다. 팀에 필요한 모든 일을 팀장은 해내야 한다. 그렇기에 팀장이 되면 내가 가진 에너지를 팀원들을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휴식을 할 때는 누군가를 위해 내 에너지를 관리하지 않아도 괜찮다. 회사에서 집에서 당신은 충분히 누군가를 위해 발전적인 삶을 살아왔으니 휴식만큼은 정말 멍청하리만치 나만 생각하고 에너지를 방치해도 좋다. 남 눈치 보며 음식을 정해야 할 일도 여행지를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쉴 때는 제발 쉬기만 하자. 나에게서 긴장감을 좀 놓아주고 소진되어버린 에너지를 충전해주자.






쉼 없이 달려온 나를 위해, 그리고 더 나은 팀장이 되기 위해서 당신은 꼭 최선을 다해 휴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정기휴업을 통해 온전한 나를 들여다보고 바이오리듬을 다시 정상화시켜두어야 한다. 팀장은 기계가 아니다. 단 하루, 그리 어려운 시간이 아니다. 팀원의 생일을 지켜주듯이 나를 위한 정기휴업도 꼭 지켜주기를 바란다. 팀장도 일개 회사원일 뿐,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상황이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 당장 휴가계를 올리자. 그리고 당당하게 쉬고 충전해서 돌아오라. 그럴 자격, 당신에게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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