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선택만이 남았다.
그렇게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던 팀장을 3년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 속에는 마음과 행동의 변화가 있었고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과정이었다. 많은 것을 배워왔다. 진중하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날 것 그대로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며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그렇게, 스스로 팀이라는 체계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생겼다. 팀장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팀장과 팀원이 공통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팀이 완전체가 된다는 것을 피부로 맞닿아가며 배웠다.
그리고 나는 이제 선택만을 앞두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 필요했던 많은 것들을 이뤄냈기에 앞서 상사가 나에게 팀장을 제안하며 홀렸던 말처럼 정말 내게 말에 힘이라는 것이 생겼다. 모든 것을 내 맘처럼 움직일 수는 없지만 불합리한 결정에 대해서도 조금 더 힘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필요한 요구사항 정도는 당당히 제시할 수 있었다. 이런 변화까지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목소리에 힘이 생긴 지금, 내가 그 힘을 빌어 상사에게 전하려는 말은 '팀장을 그만두는 것'이다.
할 만큼 했다. 지난 시간 다사다난한 팀장 생활을 하며 나는 나를 죽기 직전까지 괴롭히기도 하고 심폐소생을 스스로 해가며 많은 것을 해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렇게 팀장을 내려놓으려고 하니 팀원들이 보인다. 나를 이렇게 성장시켜준 사람들인데, 과연 나는 이렇게 이기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을까.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그렇게 3개 정도의 방향이 생각났다.
첫 번째 방향은 지금처럼 팀장으로 남는 것이다. 사실 이제 익숙할 만큼 익숙해져서 제법 노련하게 내 일 하면서 관리도 가능한 수준이 된 것 같다. 앞으로 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함께 손발 맞추며 지내온 팀원들과 함께라면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만약 이 방향으로 마음을 먹는다면 장담하는 수준까지는 못하더라도 순리상 남은 회사의 여생을 이 회사에 남아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몇 년간 해야 할 일들이 이미 많이 쌓여있으니 팀이 없어질 일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이별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다시 적응하고 맞이하는 것이 숙제가 아닐까.
나야 이제 회사도 제법 여러 군데 다녀볼 만큼 다녀왔으니 여기 팀장으로 주-욱 남으면 되지만 팀원들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또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팀원들과의 계속되는 이별을 계속 맞이하는 것을 나는 과연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는 팀원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뜻에 따라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응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공백을 잘 채워갈 수 있을까 두렵고 무섭다.
지금처럼 남기로 결정하게 된다면 그럼에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여전히 손발이 맞는 팀원들이 많이 있고 나보다 더 큰 두려움에 가득 차 있을 나의 상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대로 존재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다. 물론 그놈의 팀장은 계속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게 목소리에 힘이 생기는 그날이 되면 나는 팀장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하겠노라 다짐했었다. 찬란했던 실무자로 돌아가 양손 가득 내 것들을 피부로 느끼고 꽉 껴안아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었다. 나는 기획자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내 새끼 같은 결과물을 보며 보람참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에서는 이미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제 대사만 연습하면 될 일이었다. "팀장 때려치우겠습니다." 또는 "팀장은 이제 그만하게 해 주시죠." 정도면 어떨까. 혼자 여러 고민을 하던 찰나, 상사의 부름에 눈이 동그래져 찾아가게 됐다. 내가 혹시 사토라레인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은 것인가?
상사는 최근에 회사를 먹여 살릴 만큼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다. 사실 개발자 주도하에 진행된 프로젝트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귀에 못이 박히도록 프로젝트명을 들어서 그런가 그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슬쩍 가곤 했었다. 정말 한숨을 쉬듯 희미하게 '재밌겠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상사는 그것을 기억해내고 해당 프로젝트의 실무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워낙 중요한 프로젝트라 팀장이고 나발이고 관심 없고 그저 자신이 신뢰하는 팀원들을 데리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어찌 보면 팀장을 그만두면서도 하고 싶던 실무를 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단점은 그렇게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난 이후다. 프로젝트라는 것은 프로덕트와 달리 끝맺음이 있다. 프로젝트 TF가 결성되면 언젠가 납기일은 다가올 것이고 완성이 되면 TF의 해체가 이뤄진다. 해체가 되면 다시 본 팀으로 돌아갈 텐데, 다시 팀장을 해야 할 것이 빤히 보인다. 그럼에도 시도해볼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니게 된다면 두 가지 선택이 존재한다. 팀장으로 남거나 실무자를 했다가 다시 팀장으로 돌아가는 것. 어쨌든 최종 목적지는 '팀장'이 되겠다. 지금 회사에 남기로 결정한다면 나는 그렇게 벗어나려 발악하고 애쓴 팀장을 계속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선택할 수 마지막 카드는 '환승'이다. 회사를 떠나는 것. 단, 여기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어떤 것도 결정되기 전에 먼저 회사를 떠나서는 안된다. 특히 팀장 되고 안 그래도 떨어진 자존감, 겨우겨우 회복운동을 통해 달래며 살아가고 있는데 퇴사를 해버린 뒤 준비를 한다면 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팀장을 한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인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뿐, 내가 가고자 하는 다른 회사가 인정해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직을 준비하려면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임을 어떻게든 증명해내야 하는 순간에 놓인다.
팀장이 되는 순간, 이직이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혹시 아는가? 팀장이 되는 순간부터 실무를 놓는 게 수순인 것은 저명한 사실. 실무자로 이직을 하려고 하는 경우 더더욱 난관이다. 앞서 계속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 손에 잡히지 않은 실체를 잘 설명해야 하는데 이게 내부에서는 서로 눈빛 교환으로도 알지만 외부인에게는 어떻게든 단순화하여 납득을 시켜야 한다. 팀장의 근엄한 태도도 지켜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다른 회사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내게 박수를 쳐주는 회사를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박수를 받는 사람은 어딜 가도 박수를 받는 존재일까? 그렇지도 않다. 지원하는 회사와 나의 핏이 맞을 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지금만큼의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팀장을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이것뿐이다.
아직 아무 선택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방향으로 흘러들어 가리라. 어쩌다 팀장이 되어 리더십은 개뿔 모르면서 팀 관리를 시작했고 나를 다스리며 지금까지 왔다.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결과가 생각보다 너무 좋다 보니 이쯤 되면 스스로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저 남들 얘기 뒤로하고 나에게 맞춰진 리더십을 팀에 적용했을 뿐인데, 이 정도의 팀워크를 만들었다는 것은 어쩌면 나, 팀장이 체질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