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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빵 Sep 06. 2023

자산으로서의 아파트

과일도 매의 눈으로 고르는데



“정국아, 우리가 아파트 이야기를 하고 있잖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이 갖는 의미는 주거의 공간 그 이상이란다. 보통의 가정에서 자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자동차 가격의 10배도 넘는 경우가 흔하니까 정말 그렇겠어요. 자동차는 물론이고 과일 하나 살 때도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해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아파트 구매를 마음먹었다면 신중히 알아봐야겠어요.”     



픽사베이


“맞아.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꽤나 많이 좌우하는 게 부동산이지. 가치도 오르길 바란다면 어떤 집, 어떤 아파트를 골라야 할까?”     


“해가 잘 드는 집, 교통이 좋은 집 뭐 그런거 아닐까요?”     


“그렇지. 아래와 같은 의견들은 어때?”                                   


   


인터뷰 a: 난 어둠을 좋아해요. 그래서 일부러 종일 해가 안 드는 북향집을 고를 거예요.


인터뷰 b: 우리 애들은 홈스쿨링을 시킬 거예요. 요새는 인터넷 강좌도 잘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 굳이 좋은 학군이 필요 없어요.


인터뷰 c: 난 운전을 좋아해서 자가용으로 출퇴근해요. 복잡한 전철을 탈 필요가 없으니 역세권 아파트도 필요가 없어요.


인터뷰 d: 난 공동묘지 뷰가 마음에 들어요. 녹색 잔디와 둥근 봉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달까?



“음…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취향을 존중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의견들이지. 하지만, 집을 팔 사정이 생겼을 때 수월하게 판매가 가능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해. 다른 물건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해도 집 역시 사고파는 재화인 만큼 수요와 공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거든.”      


“그렇겠네요. 내가 좋아도 남들이 다 싫어하면 나중에 거래가 어려울 테니까요. 근데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어려워요.”     


“그럼 어떤 기준을 고려하면 좋을지 같이 생각해 볼까? 음… 뭐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삼촌은 엄지와 검지를 턱에 갖다 대고 골똘히 생각에 빠진다.


“우선 대지지분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땅이 가지는 가치와 희소성에 대해서 강조했던 것 기억나니?”    

 

“기억나요. 부증성에 의해 땅은 한정판이라고 하셨지요.”     


“맞아. 아파트도 결국 땅 위에 지어지기 때문에 이 공식은 똑같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어. 특히 땅이 귀한 대도시에는 말이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10,000평의 땅 위에 20평 타입의 1,000가구 규모 아파트가 지어진 A단지 아파트를 가정해 볼까? 이때 한 집이 가지는 땅의 크기는 얼마일까?”     


“훗. 그건 너무 쉽지요. 10,000평/1,000세대 하면 간단해요. 1가구당 10평씩 땅을 가지는 셈이네요.”   

  

“오 잘했어. 그럼 이번엔 바로 옆의 B단지를 생각해보자. 역시 10,000평의 땅 위에 20평 타입 2,000세대의 아파트가 지어졌다고 해. 좀 더 빽빽하고 높게 지어졌나 봐. 이때 B단지 한 가구가 가지는 땅의 크기는 몇 평일까?”     


“10,000평/2,000세대로 나누면 1가구당 5평씩 땅을 가진 셈이네요.”  

   

“잘했어. 한 가구가 가지는 땅의 면적을 대지지분이라고 하는데, 이 대지지분이라는 게 아파트의 가치를 결정짓는 데 있어 꽤나 중요한 항목이란다. 만약 A단지와 B단지 둘 다 지금 막 지어진 신축 단지이고, 두 단지 간 가격 차가 얼마 없다면~”     


그때 갑자기 정국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끼어든다.

“A단지가 저평가되었거나, B단지가 고평가 되었을 수 있겠어요. 언젠가는 두 아파트 다 너무 낡아져서 허물어 다시 지어야 할 때가 올 텐데, 그때는 가지고 있는 땅의 크기가 중요해지지 않겠어요? 집은 낡아져도 땅은 낡지 않으니까요”     


“브라보!  처음엔 둘 다 같은 타입의 새 아파트이기에 느껴지는 효용에 큰 차이가 없을 수 있어. 그런데 시간이 흘러 노후가 심해질수록 재건축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거고, 그때는 네 말대로 대지지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거야. 물론 전제조건은 그 땅이 쉽게 대체되지 않는 가치 있는 위치에 있어야겠지! 소위 ‘입지’라고 하지.”

칭찬을 잔뜩 받은 정국이가 손으로 V자를 그린다.


“말 나온 김에 이번에는 집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있어 입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도 한 번 살펴볼까? 서울 역세권에 있는 아파트와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아파트를 비교해 볼 참이야. 둘 다 같은 연식에, 비슷한 규모에, 동일한 브랜드의 아파트로 비교해 보면 적당하겠지?”                                                                                          


[이편한세상 동해]과 [이편한세상 염창]의 2021년 실거래 자료 / 디스코 캡쳐




“동해시 아파트가 오히려 1년 더 늦게 준공된 새 아파트이고 단지 규모도 조금 더 큰데도 12억 정도나 차이 나네요. 이게 삼촌이 말한 입지 차이 때문인 건가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두 단지의 건축물 자체의 가치는 비슷하다고 볼 때 가격차인 12억은 오롯이 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토지의 부동성에 의한 위치와 입지, 부증성에 의한 희소성의 결과라고 보면 돼.”     


“아! 정말 그렇네요. 아래 위성 사진을 보니 동해시의 아파트 근처에는 아직도 논밭이나 공터가 많아서 개발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 반면, 서울의 아파트 주변은 이미 다른 아파트와 빌딩 등으로 개발이 된 상태라 새로 아파트가 들어설 땅이 없어요.”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동해시 아파트 단지(좌),  이미 개발이 완료된 서울의 아파트 단지 주변(우) /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그렇지! 바로 그 점이야. 대체할 수 있느냐 없느냐! 조금 더 설명하자면 땅을 제외한 30평대 새 아파트 한 채 자체의 가격은 공사비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3~4억 원 정도라고 볼 수 있어. 위의 동해시 아파트처럼 33평 아파트 가격이 3~4억 원 정도인 곳은 집 값에서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거야. 주변에 개발 가능한 대체 부지(논밭 등)가 아직 꽤 남아있기 때문에 땅이 가지는 희소성이 크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겠지. ”     


“그럼 33평 신축 아파트가 20억 인 곳은 건물값 4억을 빼면 16억이 땅값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대지지분이 10평이라면 아파트 단지의 땅값이 무려 평당 1.6억이란 뜻?”     


“비싼 땅의 아파트는 통상 더 고급 자재로 짓긴 하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렇다고 봐야겠지”     


“잠깐! 뭔가 이상한걸요!”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던 정국이가 소리친다.     


“대지지분이 10평인 20억짜리 아파트와 멀지 않은 곳의 대지 30평짜리 단독주택이 24억에 거래되었어요. 이 경우는 단독주택의 건물 가치를 아예 0원으로 보더라도 대지가 평당 8천만 원에 거래된 셈이잖아요? 둘 다 같은 학교를 이용할 수 있고 같은 전철역을 이용할 수 있다고요.”     


“오오… 정국이가 아침밥으로 등푸른 생선을 삼촌 몫까지 몽땅 집어먹더니 꽤나 예리하구나. 네 말대로 정말 단독주택은 평당 8천만 원에 거래되었으니 아파트 대지지분 평당 1.6억과 꽤나 차이가 크네.”

삼촌이 스마트폰 앱으로 실거래 자료를 찾아본다. 정국이의 표정이 보란 듯 의기양양하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희소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잖아. 단독주택이 지어질 수 있는 100평짜리 땅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대단지 아파트를 개발하기 위한 10,000평 안팎의 땅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우웅… 그건 쉽지 않겠어요. 앞서 공부했던 것처럼, 서울 같은 곳은 오래된 단지를 재건축할 경우에나 가능하겠어요.”     


“그렇기에 대단지의 희소성이 생기는 것이고, 같은 입지에 속해있다고 해도 함께 개발 가능한 땅의 덩어리가 커질수록 그 가치가 증가한다고 볼 수 있는 거야. 일종의 프리미엄이 붙는 거지.”


 “무슨 말씀인지 이해되네요. 대방어의 kg당 가격이 소방어 보다 훨씬 비싼 거랑, 1캐럿 다이아몬드 100개보다 100캐럿 다이아몬드 1개의 가격이 훨씬 비싼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지! 기막힌 비유야!”

삼촌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같은 조건이면 대지지분은 많을수록! 입지는 좋을수록! 단지 규모는 클수록!”     






✪ 흥미 충전


- 아파트 단지도 거거익선(巨巨益善)?     


TV만 거거익선이 아닙니다. 단지의 규모가 커질수록 아파트 내 커뮤니티 시설의 종류나 제공 가능한 서비스도 다채로워집니다. 커뮤니티 시설이 아파트의 인기를 가르는 하나의 척도가 되면서, 여기에도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 단지 내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최소 세대수 규모가 200세대라면, 어린이 도서관이 운영되기 힘든 150세대 아파트와 운영이 가능한 210세대 아파트 중 어떤 곳의 선호도가 높을지 예측할 수 있겠지요?


그 밖의 시설도 마찬가지예요. 헬스장은 400세대 이상/골프연습장은 600세대 이상/수영장은 1,000세대 이상/조식 서비스는 2,000세대 이상..이런 식으로 규모에 따른 제공 가능 시설, 서비스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위의 기준대로라면 2,000세대 이상의 아파트는 어린이 도서관은 물론, 헬스장과 골프연습장, 수영장과 조식 서비스까지 모두 갖출 수 있겠지요.


단지가 커질수록 차 없는 단지 내 공원도 자연스럽게 더 커질 겁니다. 대지가 1,000평인 아파트 단지와 10,000평인 아파트 단지는 단지 내 산책로 규모도 10배가량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겠지요.

   

단지의 규모는 단지 안팎의 상업 시설 수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편의점 한 곳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최소 400세대의 수요가 필요하다고 할 때, 200세대 규모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편의점이 없거나 멀리 걸어 나가야 할 겁니다. 반면, 2,000세대 아파트 단지라면 근거리에 편의점이 브랜드별로 들어설 테니,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를 편의점 별로 비교해 맛볼 수도 있겠네요.      


아! 그렇다면 2,000세대 아파트 옆에 붙어있는 200세대 아파트라면 어떨까요? 대단지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은 이용하기 어려워도 상업시설의 다양성 면에서는 덕 좀 볼 수 있겠네요!





✪ 흥미 충전


– 커뮤니티 시설 개방, 좋은 건 나눠 쓰자고요.     


최근에는 신축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을 주변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을 조건으로 건축적 혜택을 주기도 합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아크로리버파크는 커뮤니티 시설 개방을 조건으로 서초구청으로부터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돼 가구별 층고를 기존보다 30㎝ 높이고, 최고층을 38층(기존 35층)까지 지을 수 있는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에 아크로리버파크 입주민뿐만 아니라 반포동 주민이라면 누구나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의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사우나, 골프연습장 등 스포츠 시설과 도서관, 방과 후 아카데미 등 문화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용요금은 입주민들보다 조금 더 비싸다고 하네요.    


아크로리버파크의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






✪ 흥미 충전


- 별별 아파트

     


* 금이 나온 아파트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마포 쌍용 황금 아파트를 건설할 당시, 땅을 파던 중 금맥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토사 1톤 당 금 함량이 14g이 넘어 금광으로서의 채산성도 충분했다고 합니다.

KBS 방송화면

다만, 예정된 아파트 입주 일정으로 인해 공사를 지연시키기 곤란했고, 소음 등의 이유로 채굴 허가를 얻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금광으로 개발되진 못했답니다. 왜 아파트 이름이 황금 아파트인 지는 확실히 알겠지요?     




* 대학교가 있던 아파트       

       

한남더힐

국내 최고급 아파트 중 하나인 한남 더힐은 한때 대학교였던 자리예요. 단국대학교 서울 캠퍼스가 용인시로 이전하면서 매각한 부지가 고급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었지요. 그때의 흔적일까요? 지금도 한남 더힐 단지 앞에 ‘단국사’라는 제본 가게가 남아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 너 모양이 왜 그러니?         


풍납토성(사진상 언덕 형태) 때문에 독특한 모양을 갖게 된 시티 극동 아파트입니다. 현행법상 문화재 보호구역 밖 100m 이내 건축물은 문화재 높이를 기준으로 27도 이내 경사로 지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미끄럼틀 모양의 외관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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