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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빵 Sep 07. 2023

왜 샤루메찌 가방은 인기가 많을까?

아파트와 브랜드



“더 그랜드 센트럴 아마데우스 메이플 에코 슈퍼 슈프림 페퍼로니 모짜렐라 추가……”

삼촌과 함께 길을 걷던 정국이가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린다.     


“정국아, 마법의 피자 주문이라도 읊는 거니? 모짜렐라는 왜 추가하니?”     


“저 건물 벽에 적힌 글씨를 읽어보다 조금 옆길로 샜네요…복잡해요..”

머쓱해진 정국이가 머리를 긁는다.     


“하하… 길고 어렵지? 네가 읽은 건 저 아파트 단지의 이름 같구나.”     


“이름이 왜 저렇게 긴 거예요? 전 ‘정국’이고 삼촌은 ‘준호’, 이렇게 두 글자인데... 저건 열 글자도 넘어요.”     


“정말 길긴 기네.”     


“외우기도 어렵게 왜 저런 긴 이름을 지은 걸까요?”     


“아파트는 현대인에게 단순한 주거의 가치 이상의 의미를 가져. 많은 이들이 기왕이면 더 좋은 집, 더 고급스러운 집을 원해. 나도 갖고 싶고, 남들도 갖고 싶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브랜드를 통한 고급화라 볼 수 있어. 우리가 쓰는 대부분 제품엔 브랜드가 있지? 정국이는 특별히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니?”     


“저는 단지 모양 바나나우유 좋아해요.”     


“오, 그거 나도 좋아하는데! ‘망치빠직 호박엿’은 어때?”     


“그건 싫어요, 이름이 그게 뭐람. 너무 딱딱할 것 같아서 골라본 적도 없어요. 있던 입맛도 떨어지려고 해요.”

정국이가 상상만으로 화가 나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워워. 진정해. 먹는 거 말고 다른 것도 있니?”     


“요새는 저희 또래들도 샤루메찌 가방이나 지갑을 선호하긴 해요..”     


“그거 명품 브랜드 4개가 컬래버한 한정판 맞지? 삼촌도 샤루메찌가 초등학생, 중학생한테까지 인기라는 기사는 봤는데, 학생이 쓰기엔 너무 비싼 상품 아니니?"


"엄청 비싸긴 해요. 그러니까 친구들도 더 갖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선호 브랜드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물론 ‘망치빠직’같은 이름을 짓는 괴짜 회사도 있지만, 보통의 기업은 조금이라도 더 고급스럽고 편안한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려 노력한단다.”  


“맞는 말이에요. 브랜드 이미지가 좋은 제품이 인기도 좋아요.”     


“규격화된 아파트도 소비재, 사치재로서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파악한 건설사들 역시 적극적으로 브랜드를 만들어 관리하기 시작했어. 삼성물산 건설 부문의 ‘래미안’과, DL건설의 ‘e편한세상’을 필두로 메이저 건설사 대부분이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어. 이게 벌써 20년도 넘은 일인데, 그전에는 그냥 ‘삼성아파트’, ‘대림아파트’였겠지. 브랜드 론칭과 함께 로고도 예쁘게 만들고, 인기 모델을 써서 광고도 하고, 심지어는 네이밍에 멜로디를 넣기도 했어.”     


“평균적으로 자동차보다도 훨씬 비싼 재화니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겠어요.”     


“맞아, 그리고 그 전략은 맞아떨어졌지. 오죽하면 자가용 앞 유리에 붙은 고급 아파트의 입주민 스티커가 부유함의 증표가 되었단 말도 있어.”                                      


“헥, 그 정도예요?”     


“같은 맥락으로 아파트 이름에 각종 특징과 장점을 버무리다 보니 단지명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도 생긴 거야. 전국에서 이름이 가장 긴 아파트는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차’로 25글자에 달한다고 해. ‘영어도시퀸덤1차아인슈타인타운’, ‘푸르지오라비엔오르센토데시앙’처럼 발음이 어려운 단지도 허다하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식들 집을 찾을 때 애먹는다는 말이 근거 없는 농담은 아니야.”     


“가뜩이나 아파트 모양도 고만고만해서 이름까지 복잡하면 헷갈리긴 하겠어요.”     



주요 건설사의 브랜드


삼성물산- 래미안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 the H

DL산업- 이편한세상 / ACRO

GS건설- 자이 / 그랑자이

포스코건설- 더샵 /오티에르

대우건설- 푸르지오 / 푸르지오 써밋

롯데건설- 캐슬 / 르엘

HDC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SK건설 – 뷰 / 드파인

한화건설- 포레나




아파트 작명에 흔히 들어가는 수식어 (펫네임)


팰리스, 캐슬 (궁전)

그랜드, 그랑, 메가 (큰)

포레스트, 포레, 그린, 베르, 에코, 파크(숲, 초록, 자연, 공원)

오션, 리버, 레이크 (호수, 바다, 강)

로열, 노블 (상류의, 귀족적인)

센트럴, 시티, 메트로, 폴리스 (중심, 도심, 역세권)

에듀 (학군지, 교육)

퍼스트, 리더스 (최초의, 선도하는, 앞서가는)




“요새는 건설사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존 브랜드보다 더 고급 콘셉트의 상위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일반화되고 있어. 이편한세상의 상위 브랜드인 ‘아크로(ACRO)’, 힐스테이트의 상위 브랜드인 ‘디에이치(THE H)’처럼 말이야.”     


디에이치 라클라스 / 현대건설


“현대자동차의 상위 브랜드 ‘제네시스’ 같은 거네요? 그렇다면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처럼, 친환경∙스마트 이미지가 극대화된 새 아파트 브랜드를 출시해도 좋을 것 같아요. 태양광 발전 사용량이 일정 비율을 넘는다던가, 단열이 우수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아파트, 혹은 빗물 재활용을 적극적으로 하는 아파트에 친환경 전용 브랜드를 달아주는 거지요.”     


“오, 아이디어 좋아. 정국이 네가 직접 아파트 작명을 한다면 어떻게 지을래?”     


“음...저는 그냥 [정국아파트]로 할래요. 너무 긴 외래어 이름은 머리 아파요.”


"그게 오히려 신선하다. 정국아."





✪ 흥미 충전


- 아파트도 개명이 될까요?     


브랜드가 고급스러울수록 시세 상승에 유리하다는 기대가 작용함에 따라 아파트 단지도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있어요.

경기도 성남시 위례 신도시에 위치한 ‘위례더힐55’의 원래 명칭은 ‘위례 사랑으로 부영’이었다고 해요. 주민들이 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의 이름을 원했던 것 같지요? 고가 아파트 ‘한남더힐’이 연상되기도 하고요.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목동 센트럴 아이파크 위브’ 역시 분양 당시의 이름은 ‘신정 뉴타운 아이파크 위브’였다고 합니다. 행정구역 상 목동이 아님에도 학군지로 유명한 '목동'이란 명칭을 붙인 것이지요.      


이 외에도 건설사에서 브랜드를 변경함에 따라 구 브랜드를 달고 있던 아파트 단지가 신규 브랜드로 도색을 바꿔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롯데건설의 브랜드가 '낙천대'에서 '롯데캐슬'로, 현대건설의 브랜드가 '홈타운'에서 '힐스테이트'로 바뀌면서 기존의 낙천대, 홈타운 브랜드 시절에 지어진 단지가 도색 작업을 통해 '캐슬'과 '힐스테이트'로 바뀌는 것이지요.


이는 브랜드 변경 이후 지어진 새 단지에만 새 브랜드를 붙이고 싶은 건설사와 새 브랜드로 집값 상승을 도모하고 싶은 기존 단지 입주민 간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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