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사라질지도 몰라
어느덧 정국이는 식사 준비까지 돕고 있다.
“정국아, 면을 헹굴 때는 체망을 쓰라니까. 아까운 면이 다 빠져나가잖니.”
옆에서 정국이를 지켜보던 삼촌이 본격적으로 잔소리를 늘어놓을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누나, 즉 정국이의 엄마다. 삼촌이 스피커폰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는다.
"어, 누나. 정국이 걱정돼서 전화한 거야?"
"그럼~우리 정국이 잘 배우고 있니? 정국이가 집에 없으니 좀처럼 냉장고가 비워지질 않아서 이상해. 정국이 좀 바꿔봐."
"엄마, 안녕. 이거 스피커폰이야. 나 잘 지내고 있어. 삼촌이랑 먹을 국수 삶고 있어! 삼촌이 너무 모질게 일을 시키긴 하는데 어쩌겠어. 지문이 다 닳아 없어져도 내가 참아야지."
"그래그래. 아이고, 우리 아들 다 컸네."
"누나, 얘 드라마 그만 보게 해. 암튼 하려던 말 해."
"다름이 아니고 내 부산 친구 리나 알지? 리나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하게 되었대. 너희 동네를 알아보고 있나 봐. 암만 부동산에 대해서는 나보다 네가 잘 알잖니. 아는 공인중개사도 많고. 친한 친구니까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매매 말고, 전세로!"
“응, 내가 좀 알아보고 연락해 줄게. 정국이 걱정은 말고! 바싹 마른 스펀지 물 빨아들이듯 지식을 흡수하고 있으니까! "
"고마워서 어째. 조만간 내가 한우 쏜다."
통화를 마치자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던 정국이가 입을 삐죽거린다.
“나 보고 싶어 전화한 게 아니라 다른 용건이 있으셨구먼요. 쳇”
“아이고, 네 안부가 1순위였지. 너도 참.”
“그러고 보니 전세! 저 이거 궁금했어요. 삼촌한테 부동산에 대해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전세 때문이에요. 삼촌한테 말했잖아요. 집 안 사고 전세금이 오르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엄마랑 아빠랑 다투셨다고요.”
“마침 잘 됐다. 이 기회에 설명해 줄게. 전세는 임대차 유형 중 하나야. 너 혹시 ‘월세’는 들어봤니?”
“그건 들어봤지요, 집을 빌려 살면서 매달 내는 이용료 같은 거 아닌가요?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던 표현이에요. 주인공 연하남이 ‘월세를 내고 나면 이번 달은 숨만 쉬고 살아야 해.’라고 하니 밥 잘 사주는 누나가 검은색 신용카드를 내밀면서 ‘월세는 걱정 마. 이 건물 우리 어머니 꺼란다. 덧붙이자면 이 옆 건물도.’라고 하더라고요.”
“밤마다 드라마를 붙들고 살길래 걱정했더니 그래도 뭔가 배우는 게 있었구나. 전세 역시 월세처럼 임대차의 한 종류야. 차이점이라면, 월세가 일정 금액을 매달 사용료로 지불하는 방식이라면, 전세는 목돈을 보증금으로 주인에게 맡기고 부동산을 사용하는 방식을 말해. 어떤 집이 매매 시세 6억 원/전세 시세 4억 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세입자 입장에서는 6억 원을 내고 집을 구매하는 대신, 보증금 4억 원을 맡기고 약속된 기간을 거주할 수 있어. 집을 비워줄 때 집주인으로부터 맡겨둔 보증금 4억 원을 돌려받는 개념이지.”
“에? 그러면 집주인은 손해 아닌가요? 4억은 그대로 4억 일뿐이잖아요? 4억을 보관하는 것도 스트레스 아닐까요? 도둑이 훔쳐 가면 어떡해요?”
“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런데 보증금 4억 원을 활용해 자산을 불릴 수도 있잖니. 은행에 예치해 이자를 받을 수도 있고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할 수도 있을 거야. 소유하던 집에 전세를 놓는 것 외에 이미 전세가 맞춰진 부동산을 매수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까? 이미 4억의 전세 세입자가 구해진 상태로 주택 매매가 이뤄진다면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인 2억 원만 있으면 집을 매수할 수 있겠지? 소위 갭투자라고 부르지.”
“아! 들어봤어요.”
“전 세계에서 유독 한국만 전세 제도가 발달한 것도 특이점이야.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유례없이 경제가 급성장하고 부동산 가치 역시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기 때문이지. 아까 말한 6억에 산 집이 1년 사이 20% 올랐다면 투자 수익률이 어떻게 될까?”
"집값이 6억에서 7억 2천만 원이 되는 경우 말인가요? 잠깐! 실제로는 2억을 투자했고, 가치의 증분은 1억 2천만 원이니까 단 1년 만에 무려 60%의 투자 수익을 거둔 건가요? 우리 집의 주인이 그렇게 돈을 번 거군요.”
“그러니 집값 상승기에는 매매가와 전세가의 격차가 작은 곳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거야. 소액을 투자해서 큰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집값이 항상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하락기에는 오히려 손실률도 그만큼 커지겠어요. 집값이 20% 떨어져 6억에서 4억 8천만 원이 되면, 2억이 8천만 원이 된 셈이니 60% 손실이에요!”
“맞아. 네 말이 일리가 있는 게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면서 가팔랐던 성장 그래프도 자연스레 완만해졌어. 받은 보증금으로 투자한 곳이 더 큰 가치가 될 거라는 확신도 희미해진 거지. 그러면서 전세보다 매달 따박따박 돈이 들어오는 월세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야. 게다가 정부에서도 갭투자가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판단해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 제한, 다주택 보유세 중과 등을 시행하고 있어.”
“게다가 거래 수수료나 세금은 갭 금액인 2억이 아닌 집값인 6억을 기준으로 내는 거잖아요. 자칫 큰 부담이 되겠어요.”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는 경제 동향이나 정부의 정책 등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 도움이 되겠지?”
“오키오키! 저 또 궁금한 거 있어요. 만약에 집주인이 받아둔 전세 보증금으로 다른 부동산이나 가상화폐, 주식 등에 투자해서 실패했는데, 전세를 살던 사람이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돈이 모자란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럼 큰 문제지. 보통은 그다음 임차인이 정해지면 이어달리기 바통 터치하듯 보증금을 전달하고 살게 돼. 그런데 경우에 따라 세입자가 없는 공실 상태가 될 수도 있고, 처음보다 전세 시세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주의해야 해. 아무리 연이어 새 세입자를 들인다 해도, 예전만큼 전세금을 못 받으면 하락한 전세보증금 차액만큼은 스스로 채워 돌려줘야 하니 말이야.”
“그렇겠네요. 그럼 한 발 더 나아가서 집값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전세금보다도 낮아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예리한 질문인걸. 그렇게 되어버리면 여차하면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집의 권리를 포기해 버릴 수도 있겠지. 그렇기 때문에 집의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전세금이 설정되었거나, 전세금과 별도로 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집은 항상 주의해야 해. 주택 담보 대출 금액과 전세금을 합한 금액이 집값의 70~80퍼센트를 넘으면 ‘깡통 전세’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위험하단 뜻이겠지?”
“스팸이랑 참치 생각이 나서 좋은 건 줄 알았는데, 빈 깡통을 의미하는 거였군요.”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고 집주인의 집을 경매 신청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소송을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더라도 그 시간적, 정신적 피해를 오롯이 보상받기는 어려울 거야.”
“임차인을 위한 안전장치 같은 건 없나요?”
“얘기 잘했다. ‘전세보증제도’라는 게 있어.”
“공공기관이 대신 보증금을 받아주는 그런 개념인가 봐요?”
“맞아. 하지만, 암만 보호장치가 있더라도 조심해야 해. 보증보험이 보증하는 전세 보증금에도 한도가 있거든. 또 주택 가격에서 선순위 채권(간단히 말해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전세를 주기 전에 집을 담보로 빌린 돈)을 뺀 금액만큼만 보장이 되니 집주인이 대출을 많이 받은 전세 물건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아.”
“가급적 부채 없는 안전한 전세 물건을 골라 계약하되, 그 경우에도 보증보험은 필수로! 그럼 되겠죠?”
“오케이!”
전세보증보험
전세 계약이 종료되었음에도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집이 경매로 넘어가 버려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어려울 때 보증기관이 전세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대신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받지 못한 보증금은 보증 기관이 임대인으로부터 수취합니다. 보증기관에는 주택금융공사(HF),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SGI) 등이 있습니다.
✪ 짤막 퀴즈
뉴욕에 사는 나교민 씨는 전세를 끼고 한국에 집을 사려고 한다. 다음 중 가장 적은 투자금으로 구매가능한 집은?
ⓛ 매매가 6억 (전세 4억) 경기도 구축 아파트
② 매매가 5억 (전세 2억) 역세권 연립주택
③ 매매가 25억 (전세 5억) 서울 재건축 아파트
④ 매매가 8억 (전세 5억) 경기도 신축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