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도착한 우편물이 있는지 편지함을 살피던 삼촌은 [초역세권 아파트 분양]이라고 적힌 광고전단을 발견한다. 정국이도 옆에 서서 새로 오픈한 피자가게 전단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정국아, 너 역세권이라는 단어를 들어봤니?”
“들어봤지요. 전철역과 가까운 걸 역세권이라고 하지 않나요?”
“그래. 통상 역까지 걸어서 5~10분 내의 거리를 역세권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걷는 속도는 너무 주관적이잖니.”
“맞아요. 다리가 길면 10분 동안 닿는 범위가 더 넓겠지요.”
“그래. 역세권의 정의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역세권 주택 및 공공임대주택 건립 관련 운영기준]에 따르면 역의 승강장 경계로부터 500m 이내의 일단의 지역을 뜻한대. 그중에서도 1차 역세권은 역 승강장 경계로부터 250m 이내의 범위를, 2차 역세권은 역 승강장 경계로부터 250m에서 500m 이내의 범위를 말한단다. 통상 1차 역세권을 초역세권이라고 부르지."
"승강장이 길쭉한 젓가락 모양이니까 역세권 범위는 직사각형 모양이 되겠네요."
"그렇지. 승강장이 휘어진 형태면 역세권 범위도 휘어질테고 열십자(十)모양의 환승역이라면 역세권 범위도 열십자 모양이 될테지. 근데 집이나 직장이 전철역과 가까우면 뭐가 좋을까?”
“당연히 집부터 전철역까지 오고 가는 시간이 적게 걸리겠지요.”
“그렇지. 역까지 걸어서 1분 걸리는 사람과 20분 걸리는 사람이 평생 출퇴근에 사용한 시간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도 상당하겠지. 또 뭐가 좋을까?"
"아무래도 상권이 발달해서 편리하지 않을까요? 삼촌이 사는 연립주택도 금방 무너져 내릴 것처럼 낡았지만 역세권이라서 주변에 이것저것 뭐가 많잖아요."
"음... 뭔가 놀림받는 느낌이지만 맞는 말이야. 역세권 주변으로는 각종 편의시설, 상권이 잘 발달한 경우가 많아. 전철을 이용하기 위해 오가는 사람들로 유동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이지. 일례로 서울 대부분 백화점은 전철역 출구와 무빙워크(계단 방식이 아닌 수평이동하는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거나 출구로부터 100m 이내에 위치하고 있어.”
“백화점뿐만 아니라 주요 프랜차이즈도 출점 기준으로 역세권을 명시하기도 해. 이렇다 보니 역세권에 인기 많은 상점과 병원 등이 몰리게 되고, 사람들도 역세권 주변에서 살고 싶어 하게 되는 거지. 역에 가까워질수록 가격도 비싸지고 말이야.”
“하여간 좋은 건 다 비싸요.”
“이뿐만이 아니야. 주택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고밀 개발을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곳이 바로 이 역세권이란다. 용적률과 건폐율, 최고 높이 등의 기준을 완화해 줘서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특혜를 주는 거지.”
“아, 요새 ‘역세권 청년 주택’이라는 것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던데, 유독 다른 건물보다 높고 육중하더라고요. 이 청년 주택도 그러한 건축적인 혜택을 받은 건가요?”
“맞아, 역세권 청년 주택은 승강장 350m(1차 역세권 250m + 한시적 100m 추가 혜택) 범위 내에 건축이 가능해. 요건 충족 시 용도지역을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으로 상향시켜 주니 高 용적률 적용이 가능하단다. 꼭 청년 주택이 아니라도 역세권에서 주택을 건축할 때, 임대주택이나 공공시설을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하면 용도지역이나 용적률을 상향해 주는 혜택이 있어.”
“그럼 기왕 집을 사더라도 용적률 상향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큰 역세권으로 고르는 게 유리하겠어요? 특히나 재건축 아파트 같은 경우는 말이에요. 재건축 전후의 적용 용적률 차이가 클수록 유리할 텐데, ‘역세권’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으니까요!”
“호오! 이제는 그런 생각까지 하다니! 제가 조카님께 수강료 드려야겠어요.”
칭찬을 들은 정국이가 보깅댄스를 추듯 어깨를 으쓱거린다.
“칭찬받은 김에 하나 더 말해볼까요?”
“뭔데? 말해봐요! 정국 선생님! 이제 나도 진심 궁금하다.”
“앞으로 전철역이 생길 곳은 어때요? 이미 역세권인 곳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만, 개통 '예정'인 곳은 실제 전철이 다니기 전에는 사람들 관심이 덜하지 않겠어요? 거기다 전철 개통 시점과 노후 시점이 맞물려 재건축 연한이 도래하는 곳이나 노후 건축물이 모여 있는 곳이면 뭔가 더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소오름! 전철 계획이 발표되고 공사가 시작되면서 그 기대감이 가격에 반영되긴 하지만 그건 일부야. 네 말처럼 비로소 전철이 개통되고 외곽 지역과 주요 업무지구 간 연결이 편리해짐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 유입되는 투자 수요가 더 크단다. 예를 들어, 부동산에 별 관심이 없는 여의도 직장인이 집을 구할 때 지금은 5, 9호선 역세권 주변을 우선적으로 알아보겠지만 나중에는 신안산선(안산~여의도)도 고려하게 될 거야. 전철 계획 단계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니 착공 여부를 기준으로 삼으면 나름 안전한 선제 투자가 될 수 있겠지. 암튼 오늘도 인사이트 장난 아닌걸!”
“그나저나 요새는 역세권도 다 같은 역세권이 아니라는 말이 있어.”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일종의 구분을 짓는 거야. 서울 주요 지역을 순환하는 2호선이나 강남-여의도-마곡 등 주요 업무지구를 경유하면서 김포공항까지 연결되는 9호선 등 인기 노선의 정차역 주변을 더 가치 있게 보는 거지.”
“일종의 옥석 가리기 군요.”
“환승역 주변도 인기가 좋아. 2개 노선에 도보 접근이 용이한 곳이면 더블 역세권이라 부르고, 3개 역이 만나면 트리플 역세권이라 한단다. 트리플을 넘어 공덕역, 서울역, 김포공항역, 왕십리역 등은 이미 4개 이상의 노선이 지나는 복합 환승역이고. 청량리역 같은 곳은 현재 공사 중이거나 계획 중인 철도가 모두 완공되면 10개 이상의 철도 노선이 지나는 메가 환승역이 될 예정이래.”
“그런데 삼촌,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역세권의 인기도 영원할까요? 앞으로는 화상회의나 재택근무가 일반화된다고 들었거든요. 그럼 꼭 전철을 타고 회사에 갈 필요가 없어지는 것 아니에요?”
“좋은 질문이야. 펜더믹을 거치면서 ‘비대면’과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이 꽤나 익숙한 개념이 되어버렸지. 게다가 무인 자율주행 기술도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어서 대중교통으로서 전철의 위상이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어. 역세권이 가지고 있던 ‘상권으로서의 가치’도 '쿠팡'과 '배민'으로 대표되는 택배와 배달의 보편화, 밀키트나 간편식의 발달,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같은 ott 발달 등으로 약화되는 추세야. 물론 이러한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결국 사회를 바꿔놓는단다. 트렌드를 주목하는 자만이 다가올 변화에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겠지?”
“당근입니다요! ”
✪ 흥미 충전
- 한국의 전철은 언제 처음 개통되었나요?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통한 1호선은 1974년부터 운행을 시작했어요.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지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전철이 다닌 도시는 영국 런던이에요. 무려 1863년부터 운행되었다고 하네요. 곧 200년도 채우겠어요.
✪ 흥미 충전
-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지역은 이미 전철이 많이 지나는데, 왜 새로 생기는 노선도 강남 위주로 생기는 건가요?
일반적으로 대규모 교통망을 비롯한 고비용 국가 기간 사업을 수행할 때는 예비 타당성 조사에 따른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이 이루어집니다. 일명 B/C값으로 불리는데, 사업이 가지는 일종의 ‘가성비’를 예측하는 조사라 생각하면 됩니다.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편익을 누려야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는 논리인 거죠.
B/C값이 1 이상이라는 말은 비용보다 편익이 크다는 뜻입니다. 경제적 타당성이 있음을 의미하지요. B/C값을 높이기 위해서는 분자인 B(편익값)를 높여야 합니다. 철도교통의 경우,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많은 사람들의 이용이 용이할 테니 (B값을 높이기 위해) 강남이나 도심 지역의 지하철 노선도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균형적 발전’만을 고려하여 개발이 덜 된, 낙후된 지역 위주로 통과하는 전철 노선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용객이 적어 적자가 발생하고 그 부담은 결국 시민들이 지게 될 것입니다. 국토의 종합적인 개발 계획과 효율적 노선배치를 함께 고려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 흥미 충전
- 역명도 판매가 되나요? 유상 역명 병기 사업
전철은 버스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입니다. 더불어 전철 요금은 서민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항목 중 하나죠. 그렇기 때문에 적자가 심해도, 인건비 상승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에 발맞춰 이용 요금을 인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년 운영 적자폭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네요.
서울교통공사는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개하고자 역명 병기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역명에 민간기업이나 기관의 이름을 함께 쓸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아무 관련 없는 곳이 구매할 경우 혼란을 야기할 테니 역명 병기를 위해서는 해당 기업 및 기관이 대상 역에서 500m 이내에 위치해야 합니다.(유찰 시에는 1km 이내까지 확대 가능) 병기 비용은 역의 이용량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