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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암튼 Oct 26. 2024

전세잔금일

암튼, 투자합시다. #매도 편


4월 중순, 총선은 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마치 총선이 끝나면 부동산의 큰 변화의 물결이라도 일렁일 거라 추측들이 난무하였지만, 고요하다.



쨌든, 오늘은 매도 물건의 전세잔금일이다.


부동산 가기 전 스벅 상품권을 준비했다.

전세입주하기 전부터 매도를 내놓았기에,

세입자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하고자 하는 뇌물이다.

세입자분이 집을 잘 보여주셔야 하기 때문에...


사실 나는 매번 새로운 세입자 분이 오실 때마다,

스타벅스 쿠폰을 선물로 드리면서 인사를 나눈다.


“반갑습니다. 이 집에서 좋은 일만 생기시길 바랄게요”.





3만 원~5만 원의 돈으로 세입자분과의 좋은 시작을 할 수 있다. 나는 이게 가성비 있다고 생각한다.


2년 간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효과도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러 부동산 잔금 때 드리는 이유는, 옆에서 부동산 사장님이 거들어주시기 때문이다.


‘이야, 요즘 이런 임대인이 없는데~.

 세입자분 정말 좋은 집주인 만난 거예요~

(=우리 부동산에서 계약하길 잘했지?)‘

라면서...


그리고 나는 세입자가 연락 주는 잔고장 같은 것들은 모두 쿨하게 고쳐드린다. 이것도 하나의 투자이다.

나의 집을 고치는 일임에도 많은 집주인들은 귀찮다거나, 또 돈 들어갈 일을 맞이했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아 둔 관계형성은 세입자가 나갈 때 빛을 발한다. 집도 잘 보여주시고, 날짜조율도 대부분 잘해주신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

​성공적으로 세입자분이 이사를 마치고, 베란다의 수전, 현관문의 도어 등 잔잔한 수리를 해드렸다.

해당 아파트 15평에 전세로 사시다가 우리 집으로 평수를 늘리시는 분이다.



이미 계약 때 매도계획을 말씀드렸고,

잔금일에 한번 더 말씀드리면서 뇌물을 드렸다.

아이가 없으신 부부이시다 보니, 우리 집에 관심이 있으니 매도 시 본인도 빼지 말아 달란다.

속으로는 ‘그럼 지금 당장 사실래요? ’라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내놓은 매도 호가를 이미 알고 있으실 테고 그 가격 말고 좀 더 내리시면 연락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매수자와 매도자의 가격괴리감이 꽤 큰 지금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세입자분을 부동산 사무실에서 보낸 뒤, 부동산 사장님께 넌지시 말씀드렸다.

“사장님, 세입자분이 진짜 매수 원하시는지 잘 좀 알아봐 주세요~

 지금 시장 상황 저 뻔히 알고 있고요~

 아파트 호가가 오르길 바라는 게 아니라, 이 분위기에 팔고 싶은 거라는 것 꼭 기억해 주세요~“

라고 말이다.

지금 뿌려놓은 약 100개의 부동산.

그리고 우리 세입자분.


이런 씨앗들이

언젠가는 싹을 트겠지.

전세 잔금 업무를 모두 마치고 ,​

아파트 단지 쉼터 좋아하던 나무길을 거닐었다.

이것저것 추억해 본다.

이 동네에서 보냈던 나의 30살~34살이 생각난다.




그리고 지금,

아이가 들어서 있는 나의 부른 배를 안고

새로운 기억들을 쌓아본다.

이 동네에 찜해두고 못가 봤던 동태집을 갔다.

동태찌개를 주문하니, 사장님이 나의 배를 보셨는지

 ’ 내장 빼드리는 게 낫죠?‘ ’ 손님, 천천히 많이 드세요 ‘

라는 친절한 말투로 나의 혼밥을 대우해 주셨다.

덩달아 맛까지 올라가는 기분이다.

이대로는 아쉬워서,

이곳에서 즐겨 가던 카페를 갔다.

아가씨 때 이곳에 참 자주 왔는데..


임신 중인 나는 이제 커피를 하루에 한잔만 마신다.

그래도 진한 아메리카노대신 말차라테를 주문했다.


 “커피샷 빼서도 가능한데 그렇게 드릴까요? “


아 커피샷이 들어가는구나.

”너무 감사드립니다. 빼주세요 “


주문 번호를 주셨다. 11번.


그런데 잠시 후, 내 자리로 음료를 가져다주셨다.

“잘 저어서 섞어 드세요 :) “

그러고 시간이 지났다.

그 사장님이

다음, 다다음 손님들은 번호를 불러 픽업대로 손님들을 부른다.


산모에 대한 배려였구나.


진하고 시원한 아이스 말차라테가 따뜻하게 와닿는다.

참 이 동네에서 좋은 기억과 경험을 많이 안고 간다.

그 기운을 받아,

곧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좋아하는 동네에서, 더 좋은 기억들을 얻어가다니

너무나도 감사하기만 한 4월이다.





그리고 2주 뒤

같은 아파트 매물의 실거래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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