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결혼을 결심하게 된 잘못된 경로

결혼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by 밝음

어머님과 인사 자리를 가진 후, 볼 기회는 더 많아졌다. 그 당시 문구점을 운영하고 계셔서 가게 마감 도움 요청이 많았다. 그런 날에는 데이트 도중 헤어져야 했거나, 나도 함께 불려 갔다. 남편은 외동아들이었고, 고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딱히 그게 싫지도 않았다. 밥이라도 같이 먹자는 말이 엄마의 사랑이 그리운 나에게는 따뜻한 호출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다.)


모자 사이는 억 센 경상도 엄마와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밥 먹을 때마다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대화를 많이 했다. 나름 애쓰는 예비 며느리가 나타났으니 어머님 입장에서는 꽤 생기가 도는 일이었을 거다. 내가 이렇게 살갑게 굴면, “에구, 딸이 한 명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다.” 하실 줄 알았다. 어머님은 내 이상 속 시어머니가 아니었다.


"마마마! 됐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엄마 알아서 한다."


좋게 말하자면 생활력 강하고 진취적인 여성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독불여장군', '답정너’(모든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니 너희들은 그냥 들어라.)다. 자식이 결혼해서 출가외인이 되었지만, 아들 집에서는 한 명을 보낸 게 아니라 한 명이 더 들어오는 개념을 가진 게 분명했다. 우린 다른 가족인데도 같은 가족 같은 애매한 반가족 사이였다. 마치 어머니 슬하에 있는 두 남녀 같은.

연애 3년이 넘어가니 서로가 편해졌고 연애 초반의 그런 설렘도 사라진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사랑하긴 하지만 진짜 사랑이 뭘까를 의심하게 되는 말 그대로 권태기 시기였다.




띠링띠링~♪

"수현아, 엄마 할 말이 있다. 카페로 좀 나와봐라.“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단둘이 보자고 하신 적은 없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아직 결혼도 안 한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따로 할 말이 뭐가 있을까 하며 의아했지만, 밥을 먹자는 거도 아니셨고 간단한 차 한잔이니 잠깐 뵙고 오면 될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저기요~ 나는 대추차 주고요. 니는 머 시킬래?"

"저도 대추차요."


단둘은 처음이라 더 긴장되었다. 머리가 새하얘져서 메뉴판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환절기라 기관지도 안 좋아서 어머니 메뉴를 따라 시켰다. 생각해 보니 그 뒤로 나는 영원히 대추차를 마시지 않았다. 망할 대추차.

곧이어 차가 준비되었다. 어색해서 바짝 마르는 입술을 달짝 씁쓸한 대추차로 적셨다. 그때 어머님의 진빨강 립스틱이 발린 입술 사이에서 청혼의 말이 비집고 나왔다.


"너거 인자 결혼해라. 그렇게 투닥거리는 거 연애 너무 오래 해서 그렇다. 결혼할 때 됐다. 내년 봄에 해라. 알았제?"

”아! 네...“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머님의 프러포즈가 싫지 않았다. 진짜 우리가 이제 결혼할 때가 된 건가 싶기도 했다. 스물여덟이었으니 슬슬 결혼에 대한 고민도 될 때였다. 연애를 오래 해서 결혼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결정은 힘들었다. 마음은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결정하고 현실화하는 건, 더군다나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결정하는 건 어려웠다. 어머님의 프러포즈는 그런 나의 내적 고민과 혼란을 상쇄시켜 주는 일이기도 했다.


어머님과의 독대를 끝내고 남편에게 이런 사실을 전달했다. 남편도 나의 마음과 같은 뉘앙스였다. 결혼이라는 큰 대사를 우리 스스로 결정 내릴 타이밍을 잡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 제의를 어머님이 하셨다는 게 좀 씁쓸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우리의 제2의 인생을 준비하게 되었다. 어머님의 대추차 프러포즈 덕분에(?) '언제 결혼을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중대한 고민과 골치 아픈 상태 속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그게 착오였다. 힘들더라도 고심해야 했다. 이 사람과의 결혼에 대해서, 그리고 결혼 그 자체에 대해서.



세월이 흐르고 시근(경상도 사투리로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줄 아는 힘을 일컬음)이 들자. 대추차 프러포즈에 이미 미래가 다 예견되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들을 붙잡고 해야 할 이야기를 아들에게 의논도 없이 여자 친구를 따로 불러서 직접 하다니... '엄마 생각은 이런 것 같아 그럴 수도 있어'도 아니고 '그냥 해'였다.


그때 그런 식으로 우리의 결혼을 결정했던 것이 아쉽다. 남편과 결혼한 것에는 후회가 없다. 오히려 이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고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주체적으로 결정했어야 한다. 정말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 게 정말 맞는지, 심사숙고해 보는 기간을 가져야 했다.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는 밑거름이 된다. 왜냐하면 내 안에 이유가 확고해지고, 내가 숙고해서 한 선택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내 안에 책임 의식이 커진다. 이 십 대 후반이 되자 친구들도 하나둘씩 청첩장을 돌리고 사회에서 일컫는 '그때'가 되었는데 '나 언제쯤 결혼하지?'라는 마음만 있었다. 내 결혼을 사회풍토에 맡겼고, 대추차와 어머니에게 맡겼다. 우리는 결혼 적령기라는 시기적인 두려움을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찰보다 더 크게 생각해 버렸다. 내 결혼은 오직 나에게 맡겨야 하는 일이었다.


대추차를 마셨던 카페를 지나칠 때마다 묘하게 괘씸한 마음이 올라왔다. 내 인생의 행보를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어쩌면 나의 이 답답함은 그때의 그 일 때문도, 어머님 때문도 아닌, 줏대 없이 물러터진 젊은 날의 나에 대한 답답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대추차나 맛있게 마시고 해맑게 웃으면서 ”네!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결혼은 저희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아드님이랑 하시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할걸. 후회는 아니고 소회다. 초밥, 다음은 대추차. 괜히 애꿎은 먹거리들만 자꾸 미워지게 만드는 결혼이다.

keyword
이전 03화남편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며느라기의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