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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Apr 06. 2023

남편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며느라기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남편이다.

 대략 15년 전의 어느 날, 아직도 그 순간의 떨림이 생경하다. 바짝 긴장한 나는, 허리를 최대한 곧게 펴고 바르게 앉아 예의 바르고 참하게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누구에게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였을까? 그건 바로 내 남자친구의 어머니였다. 남자친구 어머니께 공식적인 인사를 드리러 만나게 된 것이다. 그곳에 앉아있긴 했지만, 나의 멘탈은 ’난 누구? 여긴 어디?‘ 그런 상태였다.      


그땐 아직 결혼을 약속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굳이 인사를 드렸는지 그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애를 하고 있던 중 이었다. 양가 집에서도 얼굴은 모르지만 만나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 계셨다. 자식 연애의 길이와 깊이에 비해 부모님들께서 그 존재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으셨다. 연애가 길어지다 보니 그런 이유가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불편하게 만드는 시기 즈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라면 절대 결혼 약속하기 전까지는 만나지 않겠다. 굳이)          


사진으로 봤을 때도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셨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대면하고 나니 그 포스는 두 배 이상을 상향했다. 그 시대 여성들 평균키를 훌쩍 넘으시고, 미모도 뛰어나셨다. 가장 강력했던 건 에너지. 사람들에게는 고유한 에너지가 있는데 내가 살아온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가장 강력했던 대학 때 전공 교수님보다 기운보다 더 쎄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큰 키, 진한 화장, 화려한 꽃무늬 의상. 이미 겉모습만으로도 압도되었다. 커다란 소나무 앞에 유약한 잡초처럼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동시에 눈빛의 이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리저리 안구로 나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녀의 뇌에서 나에 대해 아주 사적인 판단을 하는 소리가 고막까지 들리는 듯했다.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네.' 그런 표정     

이미 첫 대면의 그 날,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정해졌다. 그녀의 태도와 나의 태도만 보아도 갑과 을이 누구인지 지나가는 사람도 보였을 것이다. 어머니께 합격점을 받기 위해 살아오면서 갖춰왔던 온갖 사회 생존기술을 다 쓰고 있었다. 환하게 웃기, 무조건 고개 끄덕이면서 수용하기, 적극적으로 리액션하기, 조신한 척하기.    

 

나는 왜 그렇게 예비시어머니께 잘 보이고 싶었을까?

1. 나라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시게 하고 싶었다. 

2. 우리가 굉장히 좋은 사이로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이고 싶었다.

3. 흡족하게 해서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마음이다.

4. 알아서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서 믿고 맡기면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게 하고 싶었다.

5. 부모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시면 남자친구도 좋아할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들은 나를 위한 마음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를 돕지는 못했다. 내 행복의 지름길인 줄 알았던 나의 선택들은 가끔 의도와는 다른 결과들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잘 보이고 싶어서 했던 모든 행동들이 내가 아닌 나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둘러가더라도 어쩌겠는가? 그것도 내가 했던 나의 선택이었던 것을. 비록 아스팔트보다 자갈길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나는 '나의 행복'이라는 내 인생의 목표를 잃지 않고 열심히 걸어갔다.          


신입사원 면접 보듯이 그렇게 식사를 했다. 메뉴는 내가 좋아하는 초밥이었는데 모양도 맛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긴장은 모든 외부 감각을 잠식시킨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마음이 한 곳에만 집중이 되면 다른 외부로 향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된다. 나와 예비 시어머니의 미팅이 어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현 남편(구 남친)에게 나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너 알아서 해.‘ 모드      


그가 무엇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도 긴장 속에 있었겠지만(어떻게 될지 모르니 어쩌면 나보다 더 긴장했겠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이 분위기를 좋게 해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이 답답하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정말 자기답게 했던 것 같다. 나답지 않게 과하게 조신한 척하며 새로운 페르소나를 나라고 믿게 만들고 싶었던 건 나였다. 나 자신을 진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냥 나답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야 진짜 내 모습을 보시고 그런 나의 모습에 대한 반응을 하셨을테니까. 나의 가짜 놀이 덕분에 어머니의 기대치는 쓸데없이 상향만 되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살았다. 살갑게 행동하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일부러 더 밝고 성격 좋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시댁에 가면 남편은 가마니가 되어 있지만, 나는 맞장구도 많이 쳐 드리고 평화로운 고부관계를 위해 열심히 애썼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은 내 의도와 다른 결과를 선물로 주었다. ’며느리는 이래야지.‘ 라는 어머니의 기대를 더 높여드리게 되었고, 나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할 수 있는 타당성을 드렸다.           


시댁에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남편과 싸울 일이 늘어갔다. 애써야 하는 시간들이 많으니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고, 힘든 마음을 자꾸 남편한테 하소연하듯 표현하게 되었다. 사실 저 깊은 속의 내 속마음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편하게 받아들여 주길 바랐다. 어머니를 만났을 때 더 열심히 하고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할 도리 다 하면 나에게 불만을 가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내가 잘한다는 기준과 시어머니의 기대는 별개였다. 그걸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정작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은 시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이었다. 내가 선택한 사람도, 나라는 사람을 택한 것도 남편이니까. 그리고 내가 평생 같이 마음 맞춰 살아갈 사람도 남편이니까.           

시댁이나 처가 식구들과는 천천히 관계를 시작해도 괜찮다. 결혼해서도 시간을 가지고 낯선 이로써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사이가 되어도 괜찮다. 결혼으로 만들어진 관계는 사실 남이다. 그런 남과의 관계를 하루아침에 좋게 만들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서로 당연히 어려워 해고 조심해야 하는 사이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서로가 가족이 된 것에 대해 감사하고 환영해야 할 대상이다.     


결혼을 시작할 때 남편과 합을 맞추며 사는데에 신경 쓰는 게 가장 우선이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그것부터 가장 등한시된다. 배우자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식을 올리는 동시에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면서 서로에 대한 집중의 에너지가 옅어진다. 서로 다른 존재이고 30년을 다른 환경에서 살았는데 함께 산다는 게 저절로 될 거라는 생각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단순한 20대였다.      


결혼을 하면 많은 에너지를 양가 부모님께 쓰게 된다.

애써서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마음 담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다 보면 나답지 않은 행동으로 넘어간다. 그건 거짓이다.     


결혼해서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남편이다.

부모님께 잘하려고 애쓰는 순간 주객은 전도된다.

그리고 부부의 마음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처음 어머니와 인사 나누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그냥 편하게 이야기 나누며 초밥의 맛을 느끼고 싶다.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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