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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야!
너는 결혼하고 행복했니?

결혼은 해피엔딩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by 밝음

가족들과 식당에 가면 가끔 옆 테이블에 공주님이 앉아 계신다. 겨울왕국에 나오는 엘사의 드레스를 그대로 축소 시킨 듯한 원피스를 입고, 커다란 큐빅 목걸이를 한 꼬마 공주님. 그런 여자아이를 만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참 낯설다. 나는 공주 놀이를 즐기는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치마보다 바지가 편했고, 재롱잔치 때 엄마가 과하게 치장을 시켜줘서 싫었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장난치거나 놀리는 남자애가 있으면 속상해서 울고 있기보다, 재빨리 쫓아가서 뒷덜미를 낚아챌 때 희열을 느꼈다. 학교에 가는 가장 큰 이유도 체육 때문이었다. 국·영·수 점수 낮은 건 괜찮아도 체육 점수 낮은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소심한 성격에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내겐 선머슴 기질이 들끓었다. 이런 사람이니 공주처럼 스스로 꾸미는 일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성 호르몬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욕구를 동화책으로 대신했다. 동화를 읽을 때마다 그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가 나도 모르게 공주에게 내 감정을 이입했다. 왕자의 달콤한 키스로 사과 독을 치료한 ‘백설 공주’, 물레 바늘에 찔려 걸린 마녀의 저주를 왕자의 입맞춤으로 풀게 된 ‘잠자는 숲속의 공주’. 그 외에도 다양한 공주님이 있었지만 유독 마음에 남는 건 ‘신데렐라’ 공주님이셨다.


신데렐라가 가장 좋았던 이유는 일단 시작부터 이질감이 없다. 다른 공주들은 태어날 때부터 원래 공주였다. 거기서부터 이미 다른 부류들이다. 태생이 금수저인 공주들에게 내 공감대가 발동할 리 없다. 반면, 신데렐라는 일반인 흙수저 출신이다. 거기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받으며 식모살이 인생을 사는 안타까운 처지의 착한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구박받으며 살았던 것도 아니고, 착하지도 않았지만, 마음의 고됨은 느낌 아니까.


신데렐라 동화가 마음에 드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왕자님이 유리구두 한 짝만 들고 전국 방방곡곡 그녀를 찾아다녔다는 점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응당 힘겨운 고비와 어려움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는 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신데렐라 왕자님은 큰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는 확고한 목적의식과 사랑에 대한 저돌적인 면이 마음에 든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녀를 하염없이 찾아다녔던 게 내 취향을 저격했다. 결혼 전 내 이상형은 만화 영심이에 나오는 왕경태였다. 왕자처럼 저돌적이진 않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영심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사람.


“신데렐라의 운명 같은 사랑은 마침내 이루어졌고, 그렇게 왕자와 공주는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동화 끝. 이렇게 해피엔딩의 결말을 확인하고 책장을 덮을 때의 기분은 꿀맛이었다. 신데렐라가 된 양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다. 왕자를 만나서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니까. 어떻게 해도 구제할 길 없는 시궁창 같은 인생을 운명 같은 내 사랑이 대신 구원해 주는 환상적인 삶. 우리 여자들의 무의식 속에 새겨진 결혼 로망의 시작은 아니, 결혼 착각의 시작은 아무리 봐도 어릴 적 무심코 손댔던 신데렐라 동화책 때문인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면 당연히 내 삶도 신데렐라처럼 될 줄 알았다. 결혼만 하면 그때부터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결혼은 해피엔딩이 결정된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었다. 그냥 현실이었다. 이전의 삶이 그저 삶이었던 것처럼, 결혼 이후의 삶도 그저 삶이었다. 오히려 더 고난도의 삶이었다. 늘어나는 역할과 책임의 자리에 이상과 환상이 들어설 공간은 없었다. 나만을 위해줄 줄 알았던 왕자님은 내 마음을 가장 모르셨고, 행복만 넘칠 것 같았던 결혼 생활은 지치고 괴로운 일투성이였다. 내가 꿈꿨던 게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신데렐라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신데렐라의 결혼 이후의 삶이 궁금해졌다.

- 신데렐라는 왕자님에게 반했다고 되어있지 않았는데 걔는 왜 결혼했을까? 왕자라서 안 할 이유 없으니까? 자기 마음은 상관없고 그냥 사랑해 주는 사람만 만나면 된다고 생각한 건가?

- 살아온 배경이 다른데 스스로 청소하던 일꾼의 습성과 어쨌든 모든 걸 하인에게 맡기는 주인의 습성이 부딪히는 날은 없었을까?

- 친정 식구들한테 구박받고 살았는데 거기서 오는 결핍감은 없었을까? 결혼해서도 친정에서 하는 말들 따르느라 힘들고 왕자에게 눈치 보이지 않았을까?

- 왕자님이시라 결혼 전에 멋진 모습만 보다가 ‘이 사람도 평범한 인간일 뿐이구나.’ 싶은 로망 와장창 깨지는 순간은 없었을까?


아직도 기억나는 동화의 마지막 장면인 왕자와 공주의 행복한 결혼식 모습 뒤 페이지에 자꾸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을 것 같았다. 그 진실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결혼은 365일 행복한 날만 있을 수 없음을 확신한다. 독립적인 존재인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가 되어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행복의 담보가 되어 줄거로 생각했던 결혼은 내가 정신적·정서적으로 얼마나 바닥을 찍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고통의 담보가 되었다. 사소한 일부터 큰 스트레스까지 곳곳에서 나를 흔들어놓는 일들이 벌어지는 게 결혼이었다.




결혼은 하기만 하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마법 하이패스권이 아니다. 저절로 행복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역경을 스스로 찾아가는 진흙 길 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주를 캐내야 한다. 맨발로 흙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안다. 운동화 신고 아스팔트 걷는 것보다 불편하고 아프지만, 그 순간순간 내 몸은 자연과의 접지로 건강해지고 있다는걸.


우리는 결혼 생활 속에서 찾아오는 힘듦과 어려움에만 초점을 두고 살아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며 버티지만, 그것이 지나가면 저것이 온다. 그러니 흙길과 아픈 발에 집중하는 것보다 내가 그 길에서 얻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거나 내 영혼이 건강해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이롭다. 더 나아가 걷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파란 하늘과 산들바람, 청량한 나무와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을 눈에 담으며 기쁨을 누리는 게 낫다.


삶은 동화처럼 해피엔딩의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 내 결혼 동화는 오직 내 힘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결혼식만 올리면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을 얻었던 신데렐라가 부럽긴 하지만, 그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와 남자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내 동화를 끝맺겠다는 결심을 해보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삶의 장막 속에서 행복이란 녀석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느끼고, 직접 만들어 가야 한다. 혹시 내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하지 않다면 오늘부터 결심을 하자. 나는 이 결혼 기필코, 해피엔딩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수동적인 신데렐라보다 주체적인 우리가 훨씬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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