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남편이다.
바짝 긴장한 채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르게 앉아 있다. 예의 바르고 참하게 보이기 위해 미소와 함께 페르소나를 끌어냈다. 몸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정신은 ‘난 누구? 여긴 어디?’의 상태였다. 아직도 그 순간의 떨림이 생생하다. 지금은 시어머니가 된 남자 친구의 어머니를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그때는 아직 결혼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왜 굳이 인사를 드렸는지 모르겠다. 멍청하게. 양가 부모님들도 이미 우리의 존재는 알고 계셨다. 연애가 길어지고 어느덧 서른을 향해 달려가다 보니 뭔가 공식적으로 인사를 드려야 할 때가 되었나 하는 불편한 마음이 조금씩 생기고 있을 때였다. 나를 한번 데려와 보라는 말에 별생각 없이 인사를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사진으로 뵈었을 때도 포스가 남다르셨다. 그간 내 주변에서는 만나 보지 못했던 센 얼굴. 직접 만나 뵈니 그 포스는 예상보다 더 셌다. 170cm 가까이 되는 키에 뛰어난 미모. 진한 화장에 화려한 꽃무늬 의상까지 힘을 거들고 있었다. 거기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강력한 에너지. 살아온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만나 본 사람 중에는 최고봉이었다. 어머니 앞에 서니 나는 커다란 소나무 앞에 유약한 잡초 같았다.
신입사원 면접 보듯 한 분위기에서 식사했다. 메뉴는 내가 좋아하는 초밥이었는데, 모양도 맛도 기억에 없다. 긴장한 탓이다. 입으로 밥을 넣고는 있었지만, 모든 안테나는 어머니를 향하고 있었다.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동시에 눈빛의 이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리저리 두 안구로 나를 분석하고 있는 느낌. 어머니의 뇌에서는 나에 대한 사적 판단이 바삐 이루어졌다. 그 판단을 나의 직관으로 해석해 보자면,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네.' 그런 표정이었다.
돌아보니 첫 대면의 그날, 이미 우리 고부 관계의 모습은 정해졌다. 귀하게 자란 남의 집 따님을 초대한 느낌보다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집안의 갑과 을 사이. 그날의 현장이 나의 영원한 미래가 될 줄도 모른 채 일단 괜찮은 여자 친구로 합격점을 받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환하게 웃기, 무조건 고개 끄덕이면서 듣기, 적극적으로 리액션하기, 조신한 척하기 등. 몇 년 되지 않아 설익은 나의 사회생존 기술을 모조리 끌어 썼다.
나는 왜 그렇게 예비 시어머니께 잘 보이고 싶었을까?
1. 나라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시게 하고 싶었다.
2. 우리가 굉장히 좋은 사이로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이고 싶었다.
3. 어머니 마음을 흡족하게 해서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방지하고자 했다.
4. 알아서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서 믿고 맡기면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게 하고 싶었다.
5. 부모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시면 남자 친구도 좋아할 것 같았다.
좋은 사람 되고 싶어 하는 병이 결혼이라는 판까지 잘못 발현되었다. 행복의 지름길인 줄 알았던 선택들은 내 발목을 잡은 일들이 되어버렸다. 잘 보이고 싶어서 했던 행동들이 내가 아닌 나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일은 그 사람 마음의 일이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다. 지혜롭지 못해서 하게 된 선택이었지만 젊은 날의 나는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나와 예비 시어머니의 미팅이 어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지금의 남편인 남자 친구분께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했다. 여자들의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밥만 먹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도 긴장 속에 있었겠지만(어떻게 될지 모르니 어쩌면 나보다 더 긴장했겠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이 분위기를 좋게 해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이 답답하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정말 자기답게 했던 것 같다. 나답지 않게 과하게 조신한 척하며 그 모습을 나라고 믿게 만들고 싶었던 건 나였다. 나 자신을 진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냥 나답게 해야 했다. 그래야 진짜 내 모습을 보시고 그런 나를 판단하고 반응하셨을 테니까.
나의 가짜 며느리 놀음 때문에 어머니의 기대치는 쓸데없이 자꾸 높아졌다. 십 년 가까이 그 모습을 유지하고 살았다. 살갑게 행동하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일부러 더 밝고 성격 좋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시댁에 가면 남편은 가마니가 되어있지만, 나는 맞장구도 쳐 드리고 평화로운 고부 관계를 위해 열심히 애썼다. 그런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에게는 ‘며느리는 이래야지.’라는 기준이 이미 높았고, 내가 하는 노력은 어머니에게 고마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시댁에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남편과 싸울 일이 늘어갔다. 나답게 자연스럽게 있지 못하고 애써야 하는 시간이 많으니,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힘든 마음을 자꾸 남편한테 하소연하듯 표현하게 되었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모습에 투정이 싸움이 되었다. 사실 내 속마음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편하게 받아들여 주길 바랐다. 어머니를 만났을 때 더 열심히 하고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래라저래라하는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고, 할 도리 다 하면 나에게 불만을 가질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큰 착각이었다. 내가 잘한다는 기준과 시어머니의 기대는 별개였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은 시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이었다. 내가 선택한 사람도, 나라는 사람을 택한 것도 남편이니까. 그리고 평생 같이 마음 맞춰 살아갈 사람도 남편이다. 시댁이나 처가 식구들과는 천천히 관계를 시작해도 괜찮다. 결혼해서도 시간을 가지고 낯선 이로써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사이가 되어도 괜찮다. 결혼으로 만들어진 관계는 사실 남이다. 그런 남과의 관계를 하루아침에 좋게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게 참 어리석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어려워하고 조심해야 하는 사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서로가 가족이 된 것에 대해 감사하고 환영해야 할 대상이다.
결혼하면 양가 부모님께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애써서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마음 담아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다 보면 나답지 않은 행동으로 넘어간다. 그건 거짓이다. 결혼해서 내가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남편이다. 부모님께 잘하려고 애쓰는 순간 주객은 전도된다. 그리고 부부의 마음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결혼을 시작할 때는 남편과 합을 맞추며 사는 데에 신경 쓰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그것부터 등한시된다. 배우자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올리는 동시에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면서 서로에게 집중하는 에너지가 사라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무것도 모르는 이십 대였다. 처음 어머니와 인사 나누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냥 편하게 이야기 나누며 초밥의 맛을 느끼고 싶다. 어머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든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지극히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