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우리의 합일로 이루어진다.
드디어 결혼 준비에 돌입했다. 대부분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결혼 준비를 했다.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했다. 멋모르고 생각 없을 땐 남들 따라 하는 게 가장 안전했다.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 왜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는 내 안에 없었다. 그래야 하는 줄 알고 그렇게 했을 뿐이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의 결혼식에 대해 알아가며 준비했다.
열심히 온라인 바다를 유영하며 자료를 캐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더 방대했다. 대학 입시 준비나 취직 준비할 때도 알아볼 게 이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결혼이라는 건 진짜 어른들만의 리그 같았다. 수많은 선택과 책임의 자리라는 걸 결혼 준비를 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하나하나 채워 넣고 점검 해가면서 준비했다. 결혼식은 준비만 해도 할 일이 산더미였다. 신혼여행 계획, 신혼집, 예단과 혼수 준비까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결혼 준비였다.
어떤 의미가 있고,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문화인지 알 수도 없는 잡스러운 허례허식들이 넘치고 넘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일들을 직장 다니면서 어떻게 해냈나 신기하다. 아마 지금은 에너지가 딸려서 똑같이 못 할 것 같고, 쓸데없는 일들을 절반 정도는 줄이거나 천천히 해가는 현명함을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전통도 중요하다. 생기게 된 뜻이 있고 분명 좋은 의미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해오던 것들이라서, 부모님 때에 했던 것들이라서, 그래서 하는 것이라면 한 번은 짚어보아야 할 것이 전통이지 않을까 한다.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저 물려 물려 따라 해왔기에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전통에 더불어 그 시대에 유행처럼 생겨난 것들까지 많았다. 부모님들도 모르는데 주변 친구들, 친척들 다 하니까 챙기는 것들이었다. 결혼 준비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보는 눈' 때문에 불필요한 형식들이 쌓인다는 것이다.
마음이 빠지고 형식만 남아있었다. 양가 사이의 의미 없는 주고받음이 난무했다. 결혼에서 집안 사이에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겨를은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그런 것 필요 없다고 하시는데 남편 부모님은 꼭 챙겨야 한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었다. 남편 집에서는 모르는 절차를 우리 집에서 알고 있으면 또 추가해서 해야 했다. 큰 어른인 할머니까지 있는 집이니 더 그랬다.
우린 그냥 사랑해서 같이 살려고 결혼하는 건데 얼마나 더 잘 갖출 수 있는지, 얼마나 기본을 맞출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만 하는 행사였다. 이 집과 저 집, 이 홀과 저 홀의 대결인 것만 같다. 결혼식장이 오래된 곳인지 호텔인지, 신혼여행을 동남아로 가는지 유럽으로 가는지, 전셋집인지 매매인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게 늘어갈수록 보여주고 싶은 것도 늘어갔다.
우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생애 단 한 번이라는 조건이 달린 결혼식에는 자꾸 더 해야 할 것만 늘어갔다.
지금도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주례다. 아직도 그분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내 결혼식에 계신 분이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분. 떡하니 우리와 결혼사진까지 정답게 함께 찍으신 그분. 그분은 바로 돈 주고 모셔 왔던 얼굴도 성도 모르는 주례자이다. 내가 결혼하던 시기까지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 거의 없던 때였다. 차마 은사를 모셔 올 작정도(딱히 은사라고 할 분이 없었기에), 그렇다고 과감히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작정도 하지 못했다. 결국 돈 주고 사는 직업 주례사를 세웠다. 소중한 우리 결혼식을 그렇게 무의미하게 잘 꾸려서 치렀다. 십 년이 지난 지금 결혼식을 떠올리면 기억에 남는 건 유일하게 축가뿐이다. 남편과 친구들의 즐거운 율동 시간. 로맨틱하거나 특별할 것 없이 지극히 유치하고 우스운 시간이었지만, 가장 솔직했고, 가장 우리다웠고, 가장 진심으로 준비했던 시간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으로 결정하지 못했다. 사회의 시선과 분위기에 맞추느라 급급했다. 남들이 모두 주례사를 하더라도 우리에게 마땅한 은사가 없고 다른 방식을 하고자 했으면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이 지겨운 주례를 싫어하고 요즘 다 없애는 추세라고 해도 우리에게 정말 고마운 분이 계시고 그분께 결혼을 축복받고 싶다면 기꺼이 주례를 넣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형식에 잡아먹힌 우리의 사랑이었다. 고작 삼십 분이라는 예식 시간을, 우리를 위한 뜻깊은 시간으로 꾸려야 했는데, 보는 눈 불편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형식적으로 치렀다. 우리를 축하하러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겨야 할 자리에 어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서 있었다. 소중한 우리의 결혼식인데 왜 도망치듯 서둘러 여행을 떠나고 싶었을까? 왜 우리는 홀가분함을 느꼈을까? 결혼과 결혼식의 의미를 우리는 알지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채 잘 치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이 있다면 결혼 준비하면서 헤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결혼 준비하면서 왜 싸우고 헤어지는 커플이 많은지 이해도 간다. 결혼 준비는 결혼살이의 예행연습이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을 합일하는 일이었고, 각자가 가진 가치관과 사상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결혼 준비하는 기간은 결국 결혼이라는 큰 삶의 축소판을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내가 몰랐던 그의 모습을 만났거나 이건 내가 감당할 정도가 아닌 집안이나 사람이라는 결정이 선다면 과감히 헤어지는 것도 능사다. 아름다운 결혼식. 결혼식이 아름다운 이유는 두 사람이 ‘함께’가 되는 자리여서이기도 하겠지만 결혼 후 겪어야 할 전투를 두 사람이 처음으로 결혼 준비를 하면서 겪은 결과의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식장에서 행진하는 부부들은 결혼 1차 대전에서 승리한 전사들이다. 준비하면서 헤어지지 않고 결혼식장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부부가 될 첫 번째 자격증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는 그때의 나에게 달려가 말해주고 싶다.
결혼할 땐 이 세 가지를 꼭 챙겨야 해.
첫 번째, 체력
두 번째, 정신력
세 번째, 줏대
그게 필요한 전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