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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Apr 12. 2023

형식에 잡혀 먹힌 우리의 사랑

아름다운 결혼식은 1차 대전의 승전보이다.

드디어 결혼준비에 들어갔다.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마음은 결혼식이 코앞인 것만 같았다. 결혼준비기간을 1년씩이나 기간을 둔 이유는...     


역시.

그렇다.

남들도 거의 다 그렇게 하니까.


멋모르고 생각 없을 땐 남들 따라 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구체적으로 뭘 해야하는지, 왜 1년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는 내 안에 없었다. 그렇게 남들 다 하는 우리의 결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열심히 온라인 바다를 유영하며 조개를 캐듯 자료를 캐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결혼준비는 방대했다. 대학 입시 준비나 취직 준비할 때도 이렇게 알아볼 게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결혼이라는 건 진짜 어른들만의 리그 같았다. 수많은 선택과 책임의 자리라는 걸 결혼 준비를 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하나하나 채워넣고 체크해 가면서 준비를 했다. 결혼식은 결혼식대로 해야 할 게 넘쳤고, 신혼여행 계획, 신혼집과 예단혼수준비까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결혼 준비였다.     

어떤 의미가 있고,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문화인지 알 수도 없는 잡스러운 허례허식들이 넘치고 넘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일들을 직장 다니면서 어떻게 해냈나 과거의 우리가 대단할 정도다. 아마 지금은 에너지가 딸려서 똑같이 못할 것 같고, 쓸데없는 일들을 절반정도는 줄이거나 천천히 해가는 현명함을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전통은 중요하다. 생겨난 뜻이 있고 분명 좋은 의미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해오던 것들이라서, 부모님 때에 했던 것들이라서, 그래서 하는 것이라면 한 번은 짚어보아야 할 것이 전통이지 않을까 한다.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저 물려 물려 따라 해왔기에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유행처럼 생겨난 것들까지 있었다. 부모님들도 모르는데 주변 친구들, 친척들 다 하니까 챙기는 것들도 많았다. 결혼 준비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보는 눈' 때문에 불필요한 형식들이 쌓인다는 것이다.     


마음이 빠지고 형식만 깃들어 있었다. 양가 사이의 의미 없는 주고받음. 결혼에서 집안사이에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한번 돌아본다. 우리집 부모님은 그런 것 필요없다고 하시는데, 남편집 부모님은 꼭 챙겨야 한다고 하시면 그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남편집에서는 모르는 절차를 우리집에서 알고 있으면 또 추가해서 해야했다.    

 

우리 그냥 사랑해서 같이 살자고 결혼하는 건데 얼마나 더 잘 갖출 수 있는지, 얼마나 기본을 맞출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집과 저 집, 이 홀과 저 홀의 대결인 것만 같다. 결혼식장이 오래된 곳인지 호텔인지, 신혼여행을 동남아로 가는지 유럽으로 가는지, 전셋집인지 매매인지. 그 모든 선택이 진정으로 '우리'만을 생각하고 결정했다고 하기에는 솔직히 말하기 어렵고 부끄러운 마음이 한없다.     


나는 아직도 그분의 얼굴이 잊히지가 않는다. 내 결혼식에 계시던 나도 모르는 그분. 떡하니 우리와 결혼사진까지 함께 찍혀계시는 그분. 그 분은 바로 돈 주고 모셔왔던 얼굴도 성도 모르는 주례자이다.     

내가 결혼하던 시기까지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 거의 없던 때였다. 차마 은사를 모셔올 작정도(딱히 은사라고 할 분이 없었기에), 그렇다고 과감히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작정도 하지 못했다. 소중한 우리 결혼식을 그렇게 무의미하게 잘 꾸려서 치렀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결혼식을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편과 친구들의 율동시간 뿐이다. 그게 가장 솔직했고, 가장 우리다웠고, 가장 진심으로 준비했기 때문이다.     


결혼준비에서 선택되어진 결정들이 우리 생각과 마음의 결정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 못하겠다. 사회적인 시선과 분위기에 맞추느라 급급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모두 주례사를 하더라도 우리가 마땅한 은사가 없고 다른 방식을 하고자 했으면 그럴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이 지겨운 주례를 싫어하고 요즘 다 없애는 추세라고 해도 우리에게 정말 고마운 분이 계시고 그분께 결혼을 축복받고 싶다면 기꺼이 주례를 넣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형식에 잡혀 먹힌 우리의 사랑이었다.     

30분이라는 예식시간 동안 보는 눈들에게 불편함이나 다른 생각이 깃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형식적으로 치른다. 우리를 축하하러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겨야 할 자리에 어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서있었다.  소중한 우리의 결혼식인데 도망치듯 서둘러 여행을 떠나는 순간 왜 우리는 홀가분함을 느꼈을까? 결혼의 의미를, 결혼식의 의미를 우리는 알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잘 치렀다.     


아름다운 결혼식.


결혼식이 아름다운 이유는 두 사람이 함께가 되는 자리여서이기도 하겠지만, 결혼 후 겪어야 할 전투를 두 사람이 처음으로 결혼 준비를 하면서 겪은 결과의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일 테다. 결혼 1차 대전에서 승리한 두 전사가 입장을 한다. 준비하면서 헤어지지 않고 결혼식장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부부가 될 첫 번째 자격증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결혼준비를 시작하는 그때의 나에게 달려가 말해주고 싶다.


결혼할 땐 두 가지를 꼭 챙겨야 돼.
첫 번째, 체력
두 번째, 정신력
그게 필요한 전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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