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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Apr 08. 2023

대추차 프러포즈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경로

현 남편(구 남친)님의 어머니와 앞면을 튼 후, 그녀를 볼 기회는 더욱 많아졌다. (그게 당연한 수순일 거라는 걸 몰랐다니, 순수하고 어리석은 20대의 나였다.)     


어머님이 문구점을 하던 시절이라 아들에게 함께 마감을 도울 것을 요청하시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에는 늘 나도 함께 호출 하셨다. 그런 날에는 데이트 도중 헤어져야했거나, 어머니와 단체 데이트를 해야 했다. 이혼해서 배우자가 없는 상태셨고, 나의 남편은 외아들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뭐 딱히 나쁘지 않았다. 밥이라도 같이 먹자는 호출이 어머니를 일찍 하늘나라로 보낸 나에게는 사랑의 호출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혼 전에도 우린 종종 셋이서 식사를 했다. 모자는 억 센 엄마와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그 존재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띄워보고자 부족한 살가움 기술을 발휘했다. 나름 애를 쓰는 예비며느리가 나타났으니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꽤 생기가 도는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살갑게 하면, “에구, 딸이 한 명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다.” 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이상속에 있는 스타일의 시어머니가 아니었다. 

    

"마마마! 됐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엄마 알아서 한다."     


결혼 10년 동안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좋게 표현하면 생활력 강하고 진취적인 여성이시다. 그러나 나쁘게 표현하면 '독불여장군', '답정너(모든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니 너희들은 그냥 들어라.)'라는 사실이다.      


아무튼 그런 애매한 반가족 사이로 지내던 날들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과 내가 자주 싸우던 시기가 있었다. 연애 4년이 되어가니 서로가 편해졌고 연애 초반의 그런 설렘도 많이 사라졌을 시기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약간의 권태기시기였다.     


띠링띠링~♪

어느 날, 걸려온 어머님의 전화.     

"OO아, 엄마 할 말이 있다. 카페로 좀 나와봐라.“     


단 둘이 보자고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뭐지?‘ 싶었다. 아직 결혼도 안 한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대체 따로 할 말이 뭐가 있단 말인가?     

비집고 나오는 긴장을 애써 구겨 넣고 카페로 향했다. 처음 취직할 때가 생각나면서, 두 번째 면접자리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초밥이 아니고 간단한 차 한잔이니 잠깐 이야기 나누는 건 괜찮을 줄 알았다.     

"저기요~ 나는 대추차 주고요. OO아, 니는 머 시킬래?"

"저도 대추차요."     


환절기라 편도도 살짝 안 좋았고, 원래 대추차를 종종 먹던 여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진짜 대추차를 먹고 싶어서 시킨 건 아니었다. 머리가 새하얘져서 메뉴판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그냥 그녀의 메뉴를 따라 시킨 것이다. 망할 대추차. 생각해 보니 그 뒤로 나는 대추차를 마시지 않았다.     


곧바로 차가 나왔다. 어색해서 바짝 마르는 입술을 달짝 씁쓸한 대추차로 홀짝홀짝 적셨다. 어머니의 새빨간 립스틱이 발린 입술사이에서 비집고 나오는 청혼의 말.      


"너거 인자 결혼해라. 그렇게 투닥거리며 싸우는 거 연애 너무 오래 해서 그렇다. 결혼할 때 됐다. 내년 봄에 해라. 알았제?"     

”아... 네...“     


당황스럽긴 했지만, 연애를 오래해서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님의 프러포즈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우리가 이제 결혼할 때가 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28살이었으니 슬슬 결혼에 대한 고민도 무의식에서 있었던 것 같다. 늘 생각보다 행동이 어렵다. 마음은 있지만 실제로 그것을 결정하고 현실화 하는 건, 더군다나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결정하는 건 엄청난 어려움이었다. 어머님의 프로포즈는 그런 나의 내적고민과 혼란을 상쇄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어머님과의 독대를 끝내고 남편에게 이런 사실을 전달했다. 남편도 나의 마음과 같은 뉘앙스였다. 결혼이라는 큰 대사를 우리 스스로 결정 내릴 타이밍을 잡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어머님의 대추차 프러포즈 덕분에(?) '언제 결혼을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중대한 고민과 골치 아픈 갈등을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우리 마음 안에도 결혼을 이젠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 제의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 제의를 어머님이 하셨다는 게 좀 씁쓸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우리의 제2의 인생준비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정식 프러포즈는 남편 스스로 준비해서 소극장에서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었기에 이 사건이 부부싸움 거리는 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시근(경상도 사투리로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줄 아는 힘을 일컬음)이 들자. 대추차 프러포즈에 이미 나의 미래가 다 예언되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들을 붙잡고 해야 할 이야기를 아들에게 의논도 없이 여자친구를 따로 불러서 직접 하다니... '엄마 생각은 이런 것 같아 그럴 수도 있어'도 아니고 '그냥 해'였다.     


그때 그런 식으로 우리의 결혼시기를 결정했던 것이 아쉽다. 우리의 마음 안에서 정말 이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 게 정말 맞는지, 심사숙고해보는 기간을 가졌어야 했다.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는 밑거름이 된다. 왜냐하면 내 안에 이유가 확고해지고, 내가 숙고해서 한 선택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내 안에 책임의식이 커진다. 우리는 결혼적령기라는 시기적인 두려움을 내 결혼이라는 진지한 고찰보다 더 우선시 해버렸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청첩장을 돌리고 사회에서 일컫는 '그때'가 되었는데 '나 언제쯤 결혼하지?'라는 마음만 있었던 것이다. 내 결혼을 사회풍토에 맡겼고, 대추차와 어머니에게 맡겼다. 내 결혼은 오직 나에게 맡겨야 하는 일이었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묘하게 괘씸한 마음이 올라왔던 대추차 팔던 카페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내 인생의 행보를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쩌면 묘하게 괘씸한 나의 이 마음은 그 시간 때문도, 어머님 때문도 아닌, 줏대 없이 물러터진 젊은 날의 나에 대한 답답함일지도 모르겠다.     


대추차나 맛있게 마시고 해맑게 웃으면서     

"네!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결혼은 저희 알아서 할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아드님이랑 하시는 게 좋겠어요." 라고 말할걸.     


후회는 아니고 소회다.     

초밥, 다음은 대추차.     

괜히 애꿎은 먹거리들만 자꾸 미워지게 만드는 결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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