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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열등생의 뒤늦은 오답 풀이

결혼의 정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by 밝음

오랜만에 육아 동지들과 점심을 먹었다. 엄마들이 모이면 오디오가 1초도 비지 않는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래 엄마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면 아이 이야기부터 배우자, 더 나아가 시댁 이야기까지 가정생활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이 총망라된다. 결혼 생활에서 겪는 이런저런 고충과 푸념을 약간의 투사와 잘 버무려 브런치와 함께 먹었다.


“사람들이 결혼을 왜 하는지 아냐?”

“무지(無知)해서 하는 거야. 무지해서. 결혼이 뭔지 진짜 알면, 못해~.”

'이렇게 힘든 일인데 우린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순간, 한 언니가 결혼 무지 이론을 펼쳤다. 그 말을 들은 나머지 셋은 눈만 뻐끔대며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공감되어서 더 이상 붙일 말도 없었다. 결혼 후 겪을 고난과 역경을 모두 알았더라면 결혼은 선뜻 선택하기 힘든 사회제도다. 내일 어떤 일이 올지 모르니까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결혼도 앞일을 몰라서 하게 되는 것이다.


언니의 말이 맞았다. 모든 기혼자는 무지해서 용감했다. 우리의 지난 행보를 반추해 보면, 혈기를 가진 청춘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잘 품으며 사랑에 빠지면 용감해진다. 동시에 환상은 판단력을 흐리고, 뜨거워진 사랑 호르몬은 메타인지력을 떨어트린다. 제대로 못 보고 미화하게 된다. 사랑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무지했기에 용감하게 결정할 수 있었고, 무지해서 힘들었다. 결혼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잘 대처해보려는 요량이라도 부려볼 수 있었을 텐데 행복만 꿈꾸고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간 결혼이라는 문 뒤는 거센 폭풍이 불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무지한 덕분에 결혼할 수 있었다. 사십 대가 넘어가면 아는 게 많아지고 안목은 높아진다. 결혼 선택이 어려워진다. 사랑에 대한 정의도 달라지고 감각도 바뀐다. 못 보고 몰라야 할 수 있는데 그 나이쯤 되면 결혼 후 내 삶이 빤히 그려지는 능력치가 생겨서 선뜻 못한다.


함께 밥을 먹던 엄마들은 아직 유아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었다. 결혼과 육아, 부부와 엄마 그 외 전반적인 결혼 생활에서 아직 새 삶을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채 허둥대는 상태였다. 그냥 같이 있다 보니 같이 살고 싶어졌고, 그렇게 그냥 같이 살아보기로 했고, 그냥 이래저래 살아내는 중이었다. 결혼이 뭔지, 결혼이라는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삶인지, 무엇이 중요한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만 살았다. 내가 왜 뛰려고 하는지, 어떻게 뛰는 게 올바른 자세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냅다 앞만 보고 뛰고 있는데 다리는 아프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부닥쳐있는 셈이었다.




우리는 자라오면서 학업에 대한 압박을 받으며 산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먹고 사는 일에 뛰어나기 위해 공부에 목숨을 건다. 그런데 결혼에 관한 공부는 아무도 강조하지 않는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선배도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걸어 들어가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열심히 학교 공부를 하는 이유도 결국은 모두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정작 실제로 잘 먹고 잘살러 들어가는 결혼 앞에서는 그 방법을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230404_100951.png 결혼 후 나타날 수 있는 부부의 마음 상태


출발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결혼에 대해 들여다보고 노력하면 A로 가지만, 그냥 살면 B로 갈 확률이 높아진다. 저 인간이랑 몸은 붙어 살지만, 마음의 거리는 멀어져간다. 막대의 사이는 서로를 향한 사랑의 온기로 채워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붙지는 않는다. 완전한 합체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사이에 사랑의 온기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잘 사는 길이다.


결혼 십 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결혼 생활은 B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온기라고는 느껴지지도 않고 넓디넓은 마음의 거리 사이로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가장 큰 꿈이기도 했던 내겐 절망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결혼만 하면 저절로 행복한 가정이 될 거로 생각했던 착각 때문이었다. 결혼이 행복을 가져다 주기 바랐지, 결혼이라는 골문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을 만들어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리라는 사람과 우리의 행복은 제외된 채 결혼 생활만 남아있었다. 결혼의 이유였던 우리는 옅어지고 전쟁 같은 결혼만 남겨졌다.




십 년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혼을 독학했다. 일 년을 한 페이지라고 가정하고 그 페이지 안에 365문제가 들어있다고 한다면 나는 페이지당 300문제를 틀리며 살아온 것 같다.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틀린 문제를 또 틀리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십 년 만에 결혼 공부의 가장 큰 핵심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사람'이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었다. 결혼 생활에만 애를 쓰고 결혼한 사람이라는 핵심을 빠트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을 결정한 ’나‘라는 사람과 결혼의 이유였던 ’너‘라는 사람을 찾아냈더니 다시 문제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늦은 때는 없다. 결혼 햇수에 상관없이 지금이라도 내 결혼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 대해, 관심 가지기 시작하면 된다. 수동적인 신데렐라보다 주체적인 내가 되어 스스로 내 결혼의 해피엔딩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결심을 했다면 이미 충분하다. 그것이 결혼 행복의 시작이자 끝이다. 두 사람의 합일된 단단한 마음만 있으면 문제없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정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정해진 게 없고, 정답이 없다. 나는 어떤 관계를 바라고,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지 가려내는 게 중요하다. 이제라도 어떤 결혼 생활을 만들어 갈 것인지 결정하고 그 모양을 하나하나씩 채워가는 나다운 결혼생활을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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