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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Apr 06. 2023

신데렐라야!
너는 결혼하고 행복했니?

결혼은 해피엔딩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어릴 적 나는, 드레스 입고 공주 놀이를 즐기는 예쁨 뿜뿜 스타일의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치마보다 바지가 훨씬 편했고, 매년 교과목 성적 중에서 체육점수가 가장 우수했다. (하물며 체육 점수가 좋은 것에 매우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육체에도 여성의 호르몬은 흐르고 있었기에, 내 나름대로 즐겨 했던 공주 놀이가 있었다. 그건 바로   


‘동화 속 공주에게 내 감정 이입하기’       

   

왕자의 달콤한 키스로 사과의 독을 치료한 ‘백설공주’, 물레바늘에 찔려 마녀의 저주에 걸렸지만 왕자의 입맞춤으로(식상한 방법이다.) 풀려 난 ‘잠자는 숲속의 공주’, 그 외에도 동화 속에는 다양한 공주님들이 살고 계셨지만 유독 내 마음속에 깃든 공주님은 바로 ‘신데렐라’ 공주님이셨다.

          

나는 왜 하필 신데렐라에게 마음이 끌렸을까?          


일단 시작부터 이질감이 없다. 다른 공주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공주였다. 거기서부터 이미 나와 다른 존재들이다. 태생이 금수저인 공주들에게 내 공감대가 형성될 리 없다. 반면, 신데렐라는 일반인 흙수저 출신이다. 거기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받으며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착한 여성이다. 내가 구박받으며 살았던 건 아니지만, 몸과 마음의 고됨은 신데렐라와 다를 바 없었던 삶이었기에. 이런 포인트에 공명이 되어 신데렐라에게 훨씬 마음이 갔다.     


그리고, 신데렐라 동화가 마음에 드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건 바로, 왕자님이 유리구두 한 짝을 들고 전국 방방곡곡 그녀를 찾아다녔다는 점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응당 힘겨운 고비와 어려움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는 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신데렐라 동화 속 왕자님은 큰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확고한 목적의식과 사랑에 대한 저돌적인 면이 매우 마음에 든다. 공주에게 한눈에 반해 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녀를 하염없이 찾아다니는 성격이 내 취향을 저격했다. 왕년에 내 이상형이 주구장창 영심이만 바라보는 왕경태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신데렐라의 운명 같은 사랑은 이루어졌고, 그렇게 왕자와 공주는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동화 끝.

          


이렇게 해피엔딩의 결말을 확인하고 책장을 덮었을 때의 기분은 꿀맛 같았다. 내가 마치 신데렐라가 된 듯 마음이 좋고 행복했다. 왕자를 만나서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니까. 우리 여자들의 무의식 속에 새겨진 결혼 로망의 시작은 아니, 결혼 착각의 시작은 아마 아주 아주 어릴 적 신데렐라 동화책 때문이 아니었을까?     


당연히 나의 삶도 신데렐라의 인생 수순을 밟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만 하면 그때부터 행복한 날들이 저절로 시작되는 줄 알았다. 허나, 삶은 해피엔딩이 정해져 있는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었다. 현실 그 자체였다. 내가 꿈꿨던 결혼은 이런 게 아니었다. 평생 궁금하지 않았던 신데렐라 결혼 후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건 바로 결혼 이후부터였다.               


- 신데렐라는 왕자님에게 반했다고 되어있지 않았는데 걔는 왜 결혼했을까? 왕자라서 안 할 이유 없으니까? 자기 마음은 상관없고 그냥 날 사랑해 주는 사람만 만나면 되니까?

- 살아온 라이프스타일이 다른데 스스로 청소하던 일꾼의 습성과 어쨌든 모든 걸 하인에게 맡기는 주인의 습성이 부딪히는 날은 없었을까?

- 친정 식구들한테 구박받고 살았는데 거기서 오는 결핍감은 없었을까? 결혼해서도 친정에서 하는 말들 따르느라 힘들고 왕자에게 눈치 보이지 않았을까?

- 왕자님이시라 결혼 전에 멋진 모습만 보다가 ‘이 사람도 평범한 인간일 뿐이구나.’ 싶은 로망 와장창 깨지는 순간은 없었을까?     


이런 잡스러운 의심과 불신이 내 머릿속에서 피어올랐다. 아직도 기억나는 동화책의 마지막 그림 뒷페이지에 자꾸 다른 그림이 그려졌다. 어쨌든 신데렐라 뒷이야기의 진실은 알 수 없으나 결혼은 365일 행복한 날만 있을 수 없음을 확신한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가 되어 산다는 건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려움 중 top of top이 아닐런지...  행복의 담보가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결혼은 내가 정신적, 정서적으로 얼마나 바닥을 찍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고통의 담보가 되었다. 사소한 스트레스부터 큰 스트레스까지 곳곳에서 나를 흔들어놓는 일들이 벌어졌다.      


결혼은 하기만 하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마법 하이패스권이 아니다. 저절로 행복해지기는커녕, 오히려 환경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길을 스스로 개척해서 걸어가는 진흙밭 길 여정이다. 하지만 흙길을 맨발로 걸어 본 사람은 안다. 운동화 신고 아스팔트 걷는 것보다 불편하고 아프지만, 그 순간순간 내 몸은 훨씬 건강해지고 있다.     

우리는 결혼 생활 속에서 찾아오는 힘듦과 어려움에만 초점을 두고 살아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면서 버티지만, 그것이 지나가면 저것이 온다. 흙길과 아픈 발에 집중하는 것보다 내가 그 길에서 얻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 영혼이 건강해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편이 이롭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걷는 동안 보이는 파란 하늘, 산들바람과 푸르른 나무,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려보는 것이다.     


삶은 동화처럼 해피엔딩의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내 결혼 동화는 내 힘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만 올려도 '그렇게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을 얻었던 신데렐라가 부럽긴 하지만 그 대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와 그 남자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내 동화를 끝맺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결혼 속에서 행복이란 녀석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느끼고, 직접 만들어 가야 한다.     

혹시 내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하지 않다면

오늘부터 결심을 하자.          


나는 이 결혼, 기필코 해피엔딩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수동적인 신데렐라보다 주체적인 우리가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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